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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음악]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

Bawoo 2017. 1. 29. 23:03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


역사의 움직임이 탄생시킨 명곡들, 그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

클래식은 발전해 온 기간이 길어 그 역사를 되짚다보면 세계사가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는 종교개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에 어김없이 등장한 클래식 음악의 탄생 비화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정치적 역학 관계, 왕후·귀족간의 알력 관계, 국가의 경제상황, 혁명과 전쟁 등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수많은 명곡에 숨겨진 진실의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 : 니시하라 미노루
저자 니시하라 미노루는 1962년 일본 야마가타 현에서 태어났다. 음악사회사를 전공했으며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토호가쿠엔 대학 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음악가와 음악 작품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독일 낭만파 음악, 브람스의 생애와 작품, 슈만의 피아노 작품 연구 등에 관심이 있다.

역자 : 정향재
역자 정향재는 한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일본 세이케이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과 주변 예술에 주목하였다. 번역서로는 『잠자는 미녀』, 『연인들』이 있다.

목차

제1장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시대 1550~1650
제2장 꽃피는 궁정 문화와 절대왕정 1650~1730
제3장 바흐의 작품에 숨겨진 세계사 1650~1730
제4장 흔들리는 궁정 지배 1730~1790
제5장 모차르트 작품에 감추어진 세계사 1730~1790
제6장 프랑스 혁명에서 빈 체제로 1790~1830
제7장 베토벤의 작품에 숨겨진 세계사
제8장 1830년 7월 혁명과 음악 1830~1850
제9장 빈 체제의 종언 1830~1850
제10장 유대인의 도시, 베를린 1830~1850
제11장 유럽 재편의 시대 1850~1890
제12장 저물어 가는 유럽 1890~1914
제13장 제1차 세계대전과 음악 1914~1920

우아한 클래식 선율 뒤에 숨은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비하인드 스토리
비발디는 황제에게 협주곡과 ‘기밀 정보’를 함께 제공했을까?
베토벤의 후견인 편력과 국제 정치의 관계는?


클래식은 발전해 온 기간이 길어 그 역사를 되짚다보면 세계사가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권력이 생기면서 사람간의 계층이 생기고 상위계층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우월함을 여유로운 시간에 즐기는 문화생활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전문음악인을 양성하고, 좀 더 고급스러운 음악을 지향했다. 마음에 드는 음악가를 후원하고 후원을 받은 음악가는 후원인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들이 만든 음악은 종교적, 정치적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집단이 공동행위를 하거나 그 뜻을 펼치려할 때 쓰이기도 했다. 종교개혁 때 루터가 새로운 종교 체제 정비를 위해서 찬송가를 새로 작곡하거나 정비한 것에서도, 합스부르크가의 번영을 위해 꼭 필요했던, 결혼 정책에 쓰인 화려한 기악 연주와 오페라 등에서도, 프리메이슨의 자유·평등·박애 사상을 의식한 모차르트가 그 정신을 징슈필 「마술피리」에서 드러낸 것에서도, 우리는 클래식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다.

음악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사의 일부이다.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는 종교개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에 어김없이 등장한 클래식 음악의 탄생 비화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잘 알려진 음악 작품이 세계 역사상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탄생했는지를 시작으로, 음악사에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그래서인지 음악사에서 크게 다루어지고 있는 이탈리아 오페라나 가장 프랑스적이라고 손꼽히는 음악가 드뷔시 등에 관한 기술이 적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의 음악가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읽다보면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바그너 등의 음악이 만들어지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각 작품이 만들어진 이유와 음악가들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는데 그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경우 유복한 후원자들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그의 후원자 리스트를 살펴보면 시기별로 합스부르크가와 당시 유럽역사가 깊이 관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시기별로 보헤미아와 헝가리, 러시아 등에 광대한 영지를 가진 귀족이나, 오스트리아의 실업가, 은행가 등에게 후원을 받다가 오스트리아가 전쟁과 경제 공황으로 힘들어지자 그 외 유럽국가에서 정치에 깊이 관여한 인물들을 후원자로 두었다. 베토벤뿐만 아니다. 많은 음악가들이 귀족들이 꾸민 살롱에 출입하며 각각 작품을 헌정함으로써 상당액의 헌정료를 받거나 다른 형태로 혜택을 입었다. 피아노 제작자도, 악보출판업자도 음악가들처럼 경제 활동이 원활하고 사회의 부가 집중되는 곳으로 옮겨 다녔다.

역사의 움직임이 탄생시킨 명곡들
이 책은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꽃피는 궁정문화와 절대왕정,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의 작품에 숨겨진 세계사, 유럽 재편을 넘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400여년의 시간동안 음악가들이 작품을 통해 세상과 어떻게 직면해 왔는지 보여준다. 클래식과 세계사, 어렵고 지루한 느낌으로는 박빙인 두 장르가 모였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가?『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는 위대한 작곡가의 일생과 고급스러운 음악의 탄생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 익숙하지만 한없이 낯선 클래식에서 결국, 쉽지 않은 우리들의 삶을 비춰볼 수 있다. 이 책이 사람 냄새가 나는 음악으로 클래식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의 현실과는 크게 다를 바 없는 세계사의 면면이 클래식 음악을 뒤흔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책속으로

▶ 16세기 이후 종교적 대립과 항쟁을 경험한 작곡가들, 특히 19세기의 유럽 작곡가에게 있어서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프랑스 칼뱅파인 위그노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위그너 교도들」의 제재가 되었고, 영국의 칼뱅파인 청교도와 왕당파의 종교대립은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의 제재로 사용되었다. -p.25

▶ 쉬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신성교향곡」은 덴마크 황태자에게 헌정되었는데, 이는 당시 작센 궁정의 인척 관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쉬츠는 빈번하게 덴마크를 여행했고, 한때 덴마크 궁정 악장을 맡기도 했다. 쉬츠와 이 작품의 헌정에는 어떤 세계사적 사건이 숨어 있을까?
-p.42

▶ 황제는 비발디에게 거액의 금전과 황금 메달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비발디는 황제에게 열두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했다. 그러나 이때의 면회는 단순히 음악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이 회견에 대해 꽁띠는 “황제가 대신들과 2년간 말씀하신 것보다도 비발디와 2주일 동안에 말씀하신 것이 더 많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p.69

▶ 륄리는 자신이 가진 여러 독점권을 통해 코미디 발레와 같이 단순한 발레를 뛰어넘는 다양한 장르의 종합을 실현하고, 오페라, 발레, 코미디 발레, 가곡, 기악 작품의 장르를 망라했다. 그가 이러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예술적 재능뿐 아니라 각각의 장르에서 왕의 허가를 독점한 것이 큰 요인이었다. -p.76

▶ 막대한 군대 정비비 및 전쟁 비용의 조달을 위해 오스트리아는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긴축 재정을 해야 했다. 유럽에 군림하는 위대한 왕가 합스부르크가는 궁정 악단과 궁정가극장의 규모를 전쟁 때마다 축소해야만 했고, 이전의 화려한 궁정 문화는 과거의 것이 되었다. -p.130

▶ 「피가로의 결혼」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그리고 모차르트가 오페라화한 이후 오스트리아 사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을까? (중략) 가장 두드러진 상연 금지 통보는 1783년 아르투아 백작이 자신의 집에서 「피가로의 결혼」 을 사적으로 상연하려고 했을 때, 국왕이 즉각 금지를 명한 것이다.
-p.151

▶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처형되었다. 이 처형은 혁명의 절정으로 고세크는 이 처형을 축하하는 식전을 위하여 「공화국의 승리」를 작곡해 처형 직후인 1월 27일에 오페라극장에서 상연했다. 이 축전극은 국왕의 처형식에 대한 청중의 흥분에 휩싸여 큰 갈채를 받았다. -p.178

▶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혁명이 발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재난을 피하기 위해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학사원 건물로 들이닥쳤다. 탄환이 바리케이드로 단단히 막은 문을 넘어 날아오고, 포탄이 정면 입구를 뒤흔들었다. "총성과 포탄이 작렬하는 속에서 나는 오로지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포탄은 지붕을 넘어 방사선을 그리며 내 방 맞은편 외벽에 맞았다. 29일이 되어서야 마침내 곡을 완성했다." -p.219

▶ 하인리히는 폐쇄적인 북부 독일에서 탈출을 결심하고 우선 아들 카를을 스위스로 출국시켰다. 카를은 파리, 런던을 경유하여 1849년 6월 미국에 도착했다. 그 이듬해 하인리히도 남은 자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인리히 일가는 자유로 운 경제활동과 시민권이 보장된 미국에서 슈타인베크라는 이름을 영어식인 '스타인웨이'로 바꾸고, 새롭게 피아노 제조업을 시작했다.
-p.249

▶ 제1차 세계대전은 생각지 않은 곳에서 영국 음악계를 곤혹에 빠뜨렸다. 전쟁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제작된 뛰어난 피아노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피아노 제조업계는 철골 프레임과 교차장현交差張弦의 도입 여부를 놓고 회사의 방침이 크게 나뉘었다. 적극적으로 이것을 도입한 미국의 스타인웨이와 독일의 베이슈타인, 도입을 거부한 프랑스의 에랄과 영국의 브로드우드가 대립하고 있었다. -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