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途中 -李晬光

Bawoo 2017. 2. 22. 19:47

                                            

途中

                                                         -李晬光


岸柳迎人舞(안류영인무)강기슭 버들가지 사람 맞아 하늘거리고
林鶯和客吟(임앵화객음)숲속 꾀꼬리 손님 맞아 노래하네
雨晴山活態(우청산활태)비 개인 산은 활기 넘쳐 흐르고
風暖草生心(풍난초생심)바람은 따뜻하여 풀에 생기 돋는다
景入詩中畵(경입시중화)경치는 시 속의 그림이요
泉鳴譜外琴(천명보외금)시냇물 소리는 거문고 가락이라
路長行不盡(노장행부진) 길은 멀고 멀어 가도가도 끝 없는데

西日破遙岑(서일파요잠)저녁놀은  먼 산 봉우리에 붉게 타고 있구나



                                                                                                           [서예 습작]

수광(李睟, 1563년 ~ 1628년 12월 26일)은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 문신이자 성리학자, 실학자, 외교관이다. 그는 실학의 1세대라 할 수 있으며, 남인실학의 토대이기도 하다.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이다.


이수광뛰어난 외교력과 문장능력을 인정받아 28세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35세 때 진위사로 명나라 파견되었으며, 49세 때인 1611년에도 중국을 다녀왔다. 당시의 선진국 중국에서 그 문화를 보고 배우는 한편, 세 차례의 사행 기간 중에 안남(安南, 베트남)·유구(琉球, 류큐)·섬라(暹羅, 시암) 사신들과 교유하면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이수광에 대한 실록의 졸기(卒記)에는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안남·유구·섬라의 사신들이 그의 시문을 구해보고 그 시를 자기 나라에 유포시키려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이수광이 당대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2]


실학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이수광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고 국가 증흥을 위한 사회,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천, 실용의 학문에 힘썼다. 무실을 강조하면서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섭렵하고 정리했다. 선현들의 사적을 모으는 한편 이를 현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고민했다. "지봉"이라는 호를 딴 《지봉유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3]

아들인 이민구(李敏求)의 문하생은 남인의 거두이자 청남의 영수였던 백호 윤휴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서울 출신.[위키백과 -이수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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