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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韓·中·日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자살(自殺)

Bawoo 2017. 4. 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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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日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자살(自殺)

 

이경미**

 

 

<목 차>

1. 들어가며
2. 한중일 고전문학 속 여성의 자살유형 분석
  1) 이드(Id)형 자살
  2) 에고(Ego)형 자살
  3) 슈퍼에고(Super-Ego)형 자살
3. 나가며

 

 

1. 들어가며

 

“대왕이시여. 이 페드라는 대왕의 아들로 인하여 오늘 이렇듯 잠옷을 갈가리 찢기는 능욕을 당하여 세상을 하직합니다.”1)

 

서양문화와 문학의 근원인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페드라가 자살전 남편에게 남긴 유서의 내용이다.

전처의 아들 히폴리토스를 연모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하자, 남편 앞으로 자신을 범하려 했다는 거짓 유서를 보내고 자결하여 결국 히폴리토스마저 저주로 죽게 만든다.

구애를 거절당한 여성의 수치심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게 하고, 결국 모두 파국을 맞는다는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다. 이후 페드라의 사랑은 그리스 고전희극작가들에 의해서 ‘불륜’, ‘근친상간’이라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혔고, 자살의 동기가 비록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하였다 하더라도 결코 동정 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문화가 주류문화로 자리한 중세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정도가 더욱 깊어졌다. 5세기 초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신국론≫2)에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은 누구나 명백한 살인자다. 유다는 비록 죄 때문에 자살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을 죽임으로 또 다른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라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며, 자살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어서 토마스 아퀴나스도 자살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그의 저서 ≪신학대전≫3)에서 조목조목 언급하며 이를 금하였다.4) 이처럼 자살한 자들은 ‘신을 거역한’ 종교적 이유에서뿐 아니라 법과 권리를 행사하는 군주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형법상의 범죄로도 간주되어 교회묘소에 묻히지 못하며, 공개적 시체처벌5) 등의 형벌이 가해졌다.

이처럼 범죄로서의 자살에 대한 징계와 함께 자살이라는 행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 문화권에서 ‘자살’을 흉악한 범죄 행위로 간주하던 것처럼 고대 한중일 봉건 유교 사회에서도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효사상에 기초하여 자살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주된 사회적 의식이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효사상에 기초하여 부모를 위하여 과감히 자신의 몸을 희생하거나, 열과 충 같은 숭고한 사회윤리적 기준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의 용감하고 의로운 행위로 여겨, ‘의로움’과 ‘삶’이 양립하지 못할 때 가차 없이 ‘삶’을 포기하는 태도를 긍정하였기 때문이다.6)

 

초나라 애국시인 굴원도 멱라강에 몸을 던짐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지켰으며, 춘추전국시대 영웅 오자서도 자신이 도와 왕위에 오른 부차가 중상모략으로 자신의 충성을 의심하자, 분노의 표현으로 자살한다. 금나라에 대항하여 싸웠던 애국장수 악비도 자결로 그의 억울함과 분노를 나타냈다.
위와 같은 자살에 대한 다소 이중적인 인식들은 한중일 고전문학속의 여성들에게도 동일하게 투영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조선 후기 ≪열녀홍씨전≫의 홍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결백을 온 천하에 증명하였으며, ≪심청전≫의 심청은 스스로 제물이 되어 인당수에 몸을 던짐으로 아버지의 눈도 뜨며, 자신도 왕후가 된다. 한편 중국 ≪聊齋志異≫의 상삼관도 스스로 목을 매어 아버지의 복수를 완성하며, 일본의 ≪소네쟈키신주(會根岐心中)≫의 오하쓰는 연인과의 동반자살을 통하여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냈다.

이처럼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서 여성들의 자살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여성들의 자살이 ‘효녀’, ‘열녀’의 이미지와 연결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환영받고 때로는 권장되는 기형적인 현상으로까지 변하기도 하였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서 여성의 자살을 주제로 혹은 이를 중요한 모티브로 삼는 작품들을 텍스트로 하여 여성의 자살의 심리와 그 속에 반영된 여성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열녀홍씨전≫, ≪운영전≫을 중국의 경우에는 ≪三言≫, ≪聊齋志異≫등을 주된 텍스트로 하였고, 일본의 경우에는 ≪소네쟈키신주(會根岐心中)≫, ≪好色五人女≫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검토함으로써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고전문학 속에 나타난 여성의 자살에 관하여 심도 있게 고찰해 보고자 한다.

 

* 이 논문은 2013년도 동서대학교 학술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동서대학교 중국어학과 부교수 (leejingmei@gdsu.dongseo.ac.kr)
1) 그리스 신화.

2) 총 22권으로 이루어진 아우구스티누스 후기 주요 저작으로, 세계가 창조된 이후의 역사를 지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라는 두 개의 역사로 구별하여 서술하였다. 410년의 고트족에 의한 로마 함락을 기회로 분출한 기독교에 대한 비난에 대응하기 위하여 저술했다.
3) ≪신학대전≫은 중세의 스콜라 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표적 저서이다.
‘대전’(숨마)이라는 명칭은 12세기의 스콜라 용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제시할 목적으로 편찬된 여러 학설의 전체적·체계적 집대성을 말한다. 성 빅토르의 후고에 의한 숨마가 최초의 전형이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은 가장 완성된 대표적 작품이다.
4) “인간은 사회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사회에 속한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사회에 부당한 짓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에게서 생명을 선물로 받았고 오직 신만이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등
5) 중세시대 프랑스 소녀 마리 자겔렝의 장례를 치른 후 그녀의 사인이 음독자살로 밝혀지자 사람들은 매장한 그녀의 시체를 다시 꺼내 거적에 둘둘 말아 온 마을을 질질 끌고 다녔다고 한다.

6) 황수연, <자결을 통해 본 욕망의 문제>,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16, (2008), 424쪽.

 

 

2. 한중일 고전문학 속 여성의 자살유형 분석

 

한중일 고전 문학 작품 속에 다양한 형태로 묘사되고 있는 여성의 자살의 모습을 유형별로 분석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자살의 원인을 인간내면의 문제로 보는 정신의학적·심리학적 연구방법론을 기본 토대로 하작품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종전 자살을 연구한 본격적인 과학적, 실증적 선행연구들이 주로 남성위주로 이루어지거나, 제도와 시대의 변화 등 보다 ‘거대담론’(metanarrative)에 치중되어 있었다면 이러한 방법론으로는 문학작품 속의 여성의 자살을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되는 바, 보다 섬세한 작업을 위해서는 ‘미세담화’가 필요한 것인데, 이는 여성의 자살이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7) 이에 필자는 자살의 동기를 여성 내부의 미묘한 감정변화에서 찾는 프로이드적 분석틀을 활용하고자 한다. 정신의학적·심리학적 분석방법의 핵심적인 주제는 ‘프로이드’가 말하는 ‘죽음의 본능’8)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고 이러한 본능이 특수한 상황에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고는 ‘죽음의 본능’과 그의 대표적 이론 ‘인간의 세 가지의 주요성격체계’인 ‘이드’, ‘에고’, ‘슈퍼에고’를 분석틀로 하여, 한중일 고전문학작품들을 위 세 유형과 연결지어 작품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9)

다만, 여성의 자살유형 중에도 그 원인이 외부적, 환경적문제로 분석되어야 하는 영역에서는 에밀 뒤르켐의 사회학적 연구방법론10)도 차용하여 작품분석이 보다 다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도하고자 한다.

 

7) 근대 ‘자살연구’에 대한 흐름을 간략하게 고찰해보면 크게 프로이드나 융으로 대표되는 정신의학적·심리학적 자살연구와 쇼펜하우어, 키케고르, 니체 등으로 대표되는 철학적 관점에서의 자살연구, 괴테 등과 같이 문학작품으로 통해 자살을 바라보는 문학적 관점에서의 자살연구, 에밀 뒤르켐과 같이 사회학적 관점으로서의 자살연구 등이 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8) 프로이드(Sigmund Freud,1856~1939)는 인간에게는 삶을 즐기고자 하는 쾌락의 본능과 죽음과 고통에 대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프로이드는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인 ‘괘락원칙’이 성적인 욕구와 충동에 의존되어 있다고 보고, 이러한 쾌락원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즉, 본래의 무기물로 돌아가려는 욕구)를 죽음본능이라고 불렀다.

9) 인간의 심리구조를 분류한 것으로 프로이드 이론의 핵심이다. 이드(Id)란 한마디로 욕망이다. 즉 원시적, 동물적, 본능적 요소로서 쾌락원칙에 지배되어 즉각적인 욕구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본능적 에너지다.

에고(Ego)는 “사회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슈퍼에고(Super-Ego)는 현실의 세계에서 추구할 수 없는 이상을 쫓는 무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은 원시적 이드의 상태에서 사회적 에고의 상태를 겪으면서 이상과 도덕, 윤리, 상식 등에 의해 제한을 받는데, 그 억압의 체계가 내면화된 것이 바로 슈퍼에고인 것이다.
10) 에밀 뒤르켐 (David Émile Durkheim, 1858~1917)은 자살학의 고전인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먼저, 사회통합이 강하여 집단 규범이 개인에게 강하게 작용하면 ‘이타적 자살’ 이 많이 발생하며, 반대로 사회적 통합력이 약화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면 ‘이기적 자살’이 증가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불충분할 때 ‘아노미적 자살’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1) 이드(Id)형 자살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에게 있어 ‘이드’는 도덕과 사회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가장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욕구로서, 주로 성욕과 공격 욕구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드’는 본능적인 충동과 관련된, 무서운 힘을 가진 저장소처럼 가마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물과 같은 것, 화산 밑에서 이글거리는 마그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드는 열정적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 충동적이며 공격적인,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이드’의 표출이 여성을 자살로 몰고 가는 형태를 한중일 고전문학 작품 속에서 찾아본다면, ①여성의 사랑받고 싶은 욕구의 극단적인 추구나, 반대로 그 사랑을 얻지 못했을 때의 ②분노와 질투 나아가 ③공격, 파괴까지 서슴지 않는 자살유형이 여기에 해당된다.

 

(1) 사랑의 욕구분출로서의 자살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보다 더 강렬한 정서적 욕구가 있을까?

더욱이 가정과 혼인이 삶의 영역의 전부인 고대 한중일 여성들에게는 남편과 연인의 사랑은 전부이자, 목숨을 걸고 지켜내고자 하는 원칙이었다. 고전문학 작품 속 여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들은 현세에서 생명을 걸고 사랑을 지켜냈다면, 죽어서도 그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즉, 한중일 고전문학 작품 속 여성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사랑의 완성과 내세에서의 지속’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민간설화 ≪梁山伯與祝英臺≫는 ‘동양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며 청춘남녀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다. 축영대가 남장을 하고 서원에 가서 공부하다 동문수학하던 양산백과 서로 사랑하게 된다.

나중에 부모께 결혼 승낙을 청하였으나 축씨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딸을 정혼시킨 뒤였다.

후에 산백은 마음의 병으로 죽고, 영대가 시집가던 날, 묘소 인근을 지날 때 바람과 파도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산백의 묘 때문임을 알게 된 영대는 뭍에 올라 통곡하자, 갑자기 땅이 갈라졌고 영대도 갈라진 땅으로 뛰어 들어가는 자살로 끝나고 있다. 그리고, 무덤 속에서 두 마리의 원앙새 혹은 판본에 따라 두 마리의 나비가 날아오름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영혼이 원앙 또는 나비로의 변형을 통해서 사랑과 영혼불멸의 환상적 정서를 보여 주고 있다.


중국 ≪맹강녀설화≫에서도 만리장성의 축조로 남편을 잃은 맹강녀가 만리장성에서 통곡하자, 만리장성이 무너지고, 진시황의 청혼을 거부하여 물에 몸을 던지자, 그녀의 몸이 은빛 물고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搜神記≫의 ‘한빙(韓憑)부부’ 이야기에서도 강왕이 한빙처의 미모에 반해 강제로 첩을 삼고 한빙을 감옥에 가둔다. 후에 남편 한빙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남편을 따라 누대에서 몸을 던진다.

이윽고 둘을 합장한 무덤에서 나온 나무는 뿌리가 서로 엉겨 붙고 위에서는 나뭇가지들이 서로 얽히는 연리지가 되고, 그 위에 한 쌍의 원앙새가 앉아 서로 목을 놓아 슬피 울었다고 한다. 이것은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자살을 아름답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혐오스러운 구렁이나 늑대가 아닌 아름다운 나비, 은빛 물고기, 연리지, 원앙등으로 변한 것은 이들 여성들의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는 자살’ 을 아름답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후기 작자미상 한문소설 ≪운영전≫은 안평대군의 궁녀 운영과 김진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고 있으며, 궁녀의 신분을 뛰어넘어 ‘사랑’을 추구하지만 사회적, 관습적 제약으로 사랑이 좌절되자 ‘기도하고 지성으로 소원을 빌어 삼생의 연분을 후세에 다시 잇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다음 생애를 기약하며 자살을 택한다. 그녀의 죽음이 표면적으로는 궁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수치심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망감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넘어 다음 생애에는 연분을 이루는 기약을 위한 자살로도 볼 수 있다.


내세에까지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는 유형으로 일본 17,18세기에 크게 유행하였던 정사(情死) 사건, ‘신주(心中)11)’ (사랑하는 연인들의 동반자살) 현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현상은 문학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내세에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불교의 내세사상의 영향으로 그러한 작품들이 크게 인기를 얻게 된다.12)

당시 죽음은 이 세상과의 단절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신주’를 통해 내세에서는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13)

이 유형의 대표작품으로 가부키(歌舞伎), 노(能), 죠루리(淨瑠璃)등의 다양한 장르로 변형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오사카 소네자키 숲에서 실제로 일어난 신주사건을 작가 지카마스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이 극화한 ≪소네쟈키신주(會根岐心中)≫이다.

이 작품의 상연 이후로 2년 남짓하는 기간 동안 30건이 넘는 정사(情死)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는 사실은 그의 영향력을 입증하고 있다.14)

연인 오하쓰를 둔 간장가게 종업원 도쿠베가 자신을 조카딸과 결혼시키려는 가게 주인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믿었던 친구에게도 배신당하고 사기꾼이라는 누명마저 쓰고 결국 애인 오하쓰와 소네자키 숲을 찾아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겠다는 신념으로 동반자살을 하게 된다.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없을 때는 이 세상에서만의 약속인가요?

세상에서 맺어진 경우도 있으므로 하다하다 안 되면 죽어버리면 그뿐이에요."15)

 

현세에서 이루지 못했던 부부의 연을 내세에서나마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을 나타내고 있다. 유곽을 탈출한 오하쓰와 도쿠베가 서로 마주보며 죽으러 가는 것이 기쁘다고 하는 장면, 최후의 장소를 정하고 죽음의 직전에 있는 장면에서도 두려움 대신 기쁨으로 죽음을 긍정하고 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아 기쁘구나.”라며 죽으러 가는 자신들의 처지 를 기뻐하는 모습은 애절하고 비참하다. … “만약 도중에 추격자에게 잡혀 헤어지게 된다 하여도 사랑을 위해 죽었다는 평판은 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면도칼을 준비하였는데 소원대로 함께 죽을 수있는 이 기쁨이여!”16)

 

이처럼 한중일 고전 문학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죽음으로 육체의 생명은 단절되었지만, 그 영혼들은 새로운 생명체인 원앙, 나비, 연리지등으로 환생한다던지 혹은 내세를 기약하고 있다.

이것은 죽음을 파국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는 또한 고대 여성들이 ‘자살’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자신들의 사랑을 영원히 보호받고자 하였던 열망으로도 볼 수 있다.17)

 

11) ‘신주’란 죽음에 이를 정도의 순수한 남녀간의 정사(情死)를 이르는 말로, 한때는 일종의 숭상까지 받는 정도의 자살방법으로 일본전역에 유행처럼 번져 정부에서 금지령까지 내린 일본 특유의 미학적인 색채가 농후한 죽음이다.
12) 일본 에도시대 1704년에 출판된 <신주대감 (心中大鑑)>에 의하면 당시의 ‘정사(情死) 현상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신주대감은 교토와 오사카, 그리고 인근지역에서 일어나 정사사건을 취재하여 수록한 일종의 르포집 같은 것으로 총 5책에 걸쳐 21화의 정사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오늘도 신주, 내일도 신주, 아스카강 강변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로 당시의 신주 열풍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김난주,<정사, 사랑과 죽음의 환상>, ≪에로티시즘으로 읽는 일본 문화≫(서울: 제이엔씨, 2013), 252쪽)
13) 박미림, ≪소네자키 신주에 나타난 근세 일본인의 사생관≫, 전남대학교 석사논문, 2009, 59쪽.

14) 김난주, <정사, 사랑과 죽음의 환상>, ≪에로티시즘으로 읽는 일본문화≫,서울: 제이엔씨, 2013, 261쪽.
15) 逢ふに逢はれぬその時は、この世ばかりの約束か。さうした例のないではなし。(森修・鳥越文蔵 外『近松門左衛門集1四十三』, 小学館、1979)
16)顔を見合わせ、アヽ嬉しと、死にに行く身を喜びし。あはれさ、つらさ、あさましさ。 … もしも道にて追手のかゝり、われへになるとても。浮名は捨てじと心がけ、剃刀用意いたせしが。望みのとおり、一所で死ぬるこの嬉しさ。(森修・鳥越文蔵 外『近松門左衛門集1四十三』, 小学館, 1979)

17) 선정규, <중국문학에 나타난 죽음과 소생>, ≪중국어문논총≫42, 2009, 72쪽.

 

 

(2) 분노의 욕구분출로서의 자살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욕구가 강할수록 그 진심이 짓밟혔을 때는 그 사랑의 감정이 지독한 분노와 증오로 변한다. 여성이 죽음까지 불사하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은 무엇일까?

심지어 타인을 공격하고 자신까지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분노의 감정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인 ‘질투’에서 종종 발견된다. 여성의 견딜 수 없는 ‘질투’의 감정이 분노로 표출되고, 또 그 모습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치닫는다.

심리학자 Clanton과 Smith18)에 의하면 질투상황에 남자들은 폭음을 하거나 폭력으로 반응하는 반면, 여자들은 울거나, 잠을 자지 못하는 방식으로 각각 다르게 반응한다고 한다.

남자들은 상대와 경쟁자 둘 다를 비난하지만, 여자들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어 의존적이고 자기처벌적인 방식으로도 반응한다고 한다. 이처럼 남성이 질투심을 느낄 경우 ‘살인’ 과 같은 극한 폭력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여성은 내부에서 억압되지 못한 질투가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향하게 하여 그 복잡한 감정은 극도의 혼란스러움을 가져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의 자살은 일종의 ‘파멸적인 내면 심정과 회생에 대한 비원(悲願)’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19)20)

 

중국 당(唐)나라 단성식의 ≪酉陽雜俎·諾皋記上≫에 나오는 유백옥의 처는 중국인들이 최고로 꼽는 투부(妬婦)로 남편이 ≪洛神賦≫ 속에 나오는 낙수의 여신을 사모하자 “서방님, 어찌 물귀신을 추켜세우고 나를 업신여기는 겁니까? 나도 죽으면 물귀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라며 극도로 흥분, 분노하여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그리고 물귀신이 되어 남편의 꿈에 나타나 자신도 낙수의 여신처럼 사랑해 달라고 한.21)


일본의 아사이료이(浅井了意)의 ≪오토기보코(伽婢子)≫제10권 제2화에 등장하는 오카노야시키부(岡谷式部)의 아내도 평소 질투심이 심하여,부부싸움 끝에 분노에 가득 찬 ‘머리는 산발이 되고 입은 검붉게 찢어지고, 눈은 심하게 핏발이 선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뛰어나가는’ 모습으로 우지강에 투신자살한다.

그리고 죽은 뒤 수신(水神)이 되어 우지교(宇治橋)를 건너 시집가는 새색시들을 질투해서 못생긴 새색시가 탄 배는 무사히 강을 건너게 했지만, 예쁜 새색시가 탄 배가 지나가면 풍랑을 일으켜 시샘했다고 한다.22)23)


이처럼 여성들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본연의 질투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통제불능의 분노의 발산은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한다. 가부장적 일부다처제하에서 현모양처의 도리를 벗어나 애욕과 질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죄악’으로 여겨지고 있던 시대상황 속에 이러한 자살은 죽어서도 결코 아름답게 보고 있지 않았다.

여성 본연의 감정인 질투를 악덕한 것이라는 ‘초월적 규정짓기’(transcend identification)와 ‘자살’ 이라는 비극적 파국은 여성의 질투, 분노를 그리는 당시 보편적인 남성작가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생각이었을 것이다.24)

 

18) Gordon Clanton, Lynn G. Smith, ≪Jealousy≫, Prentice Hall , 1977.
19) 馬場あき子, ≪鬼の硏究≫, 東京: 三一書房, 1971, 220쪽.

20) 졸고,〈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질투〉, ≪중국학≫41, 2012,66쪽.
21) 易中天, ≪中國的男人和女人≫, 上海: 上海文藝出版社, 2003, 151쪽.
22) 松田修校注, ≪新日本古典文学大系75·伽婢子≫, 日本: 岩波書店, 2001,286~289쪽.
23) 졸고,〈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남장〉, ≪중국학≫44, 2013, 65쪽.
24) 졸고, 위의 책, 66쪽.

 

 

(3) 공격, 파괴 욕구의 분출로서의 자살

 

프로이드는 ≪애도와 우울≫25)이라는 논문에서 자살을 ‘반전살인(death as retroflexed murder)’으로 설명하였다. 자살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공격성의 결과로서 나타나며, 타인에게 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살인적인 분노가 반전되어 상대방을 자신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여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상대방을 죽이는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이다.프로이드는 자살이 자신이 동일시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무의식적 공격이라 하였다.

여성들의 애증(愛憎)을 바탕으로 한 절망과 분노의 자살에서 한층 더 나아가 때때로 그 영향력이 사후세계에까지 파급되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파괴적인 힘으로 승화되고, 자신과 타인 모두를 공격, 파멸케 하는 무시무시하고 처참한 결과를 보여 주기도 한다.


중국 당전기 ≪霍小玉傳≫의 이익(李益)은 진사과거에 급제하고 대과급제를 위해 상경하여, 곽왕의 총비에게서 난 딸 소옥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소옥이 비첩의 소생이라는 천한 신분 때문에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랑 결혼하자 ‘밤낮으로 울면서 침식을 완전히 잊는’ 태도로 삶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생과 마지막 만남을 가지고 그 앞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나는 여자로 태어나 박명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고 그대는 대장부이기에 배반하는 마음이 이와 같습니다. …… 내 죽은 뒤에 반드시 모진 원귀가 되어 그대의 처첩들을 하루 종일 편치 못하게 할 것입니다.”26)

 

이윽고 소옥은 죽어서 원귀가 되어 이익의 결혼생활을 온통 질투와 의처증으로 물들이고 결국 파탄으로 이끈다.


또한 한국 설화 ≪조월천과 상사뱀에 대한 전설≫에서도 여성의 애증이 자살로 치닫고 그 집념이 사후 뱀으로 변신하여 상대방을 공격, 파괴하는 내용이다.

조월천에게 구애를 거절당한 월이가 절망으로 자살하고 그 원혼은 뱀으로 변하여 조월천을 뒤따라오자 그의 스승이 뱀을 붓뚜껑에 넣어 월천에게 주면서 형제들에게도 절대 보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월천의 동생이 그것을 빼앗아 열었더니 뱀이 나와 집안의 사람들을 해치게 된다. 안동향사에 모셔져 있는 월천의 영정은 항시 뱀이 감고 있다고 한다.27) 사랑에 거부당한 처녀의 분노한 원혼은 자살로 이어지고 그 후 무시무시한 뱀으로 변하여 남자집안 전체를 파괴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뱀이 월천의 신위를 감고 있다는 것은 원혼의 집요한 공격적 의지를 대변해 주고 있다.28)


일본 上田秋成 (우에다 아키나리)의 ≪雨月物語≫(우게쓰 모노가타리)에 수록된〈吉備津の釜〉(기비쓰의 솥)은 여성이 사랑과 믿음에 배신당하자 무서운 복수의 집념에 불타는 무시무시한 怨靈으로 변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내어 ≪雨月物語≫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공포와 음산한 분위기로 일본 괴담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고 있다.29)

믿었던 남편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한 여성이 삶을 포기하고 후에 원령으로 변하여 남편과 그의 정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남편이 기녀 소데와 눈이 맞아 같이 살림을 차리지만, 이소라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 애쓴다.

성심성의를 다했지만 쇼타로는 이소라의 진심을 두 번이나 저버리고 소데와 멀리 도망가 버린다. 이소라는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기만당한 사실을 알고 마음의 병으로 ‘온종일 드러누워 죽 한 모금도 들이키지 않고’ 죽어 간다. 이윽고 이소라는 무시무시한 원령이 되어 소데를 갑작스러운 발작 증세로 죽게 만들고 무정한 남편은 시체도 남기지 않고 데려간다. ‘피묻은 벽’, ‘처마끝에 매달려 있는 상투’ 등의 마지막 장면 남편 쇼타로의 죽음의 묘사는 믿었던 남편에 대한 배신과 절망에 비례했던 그녀의 자살이 가져온 엄청난 파괴력과 공격적인 힘을 보여 주고 있다.


중국의 곽소옥과 한국의 월이, 그리고 일본의 이소라처럼 살아서는 봉건 사회의 도덕적 가치관의 잣대 아래서 순종하고 인내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본성을 누르다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초현실세계에서는 이전의 모든 유가적 도덕윤리와 규율의 속박을 일체 무시하고 내재해있던 인간 본연의 애증(愛憎)으로 인한 질투와 원망의 모습을 무서운 ‘분노’로 드러내며, 나아가 상대방을 철저히 공격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의 자살의 동기가 애증이 기반인 경우, 때때로 그 분노는 막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승화되고, 자신과 타인 모두를 공격, 파괴하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30)


이처럼 여성의 ‘이드형 자살’의 세부적인 분류로 사랑, 분노, 공격과 파괴의 욕구를 한중일 고전작품들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결국 ‘이드형 자살’은 그 시대에 억압된 여성의 본능적인 욕구들이 분출, 해소되는 ‘마지막 출구’였음을 알 수 있다.

 

25) 1917년에 발표된 ≪애도와 우울증≫은 프로이트 전집 중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 중 하나이다. 우울증 환자가 주로 여성인 것을 문제시하며 애도(슬픔)와 우울증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26) “我爲女子,薄命如斯!君是丈夫負心若此!…… 我死之後,必爲厲鬼,使君妻妾,終日不安!” (김종군(편역), ≪중국전기소설선≫, 서울: 박이정, 2005)

27) ≪한국구비문학대계≫7-1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740~749쪽.
28) 강진옥, <상사뱀설화의 몸바꾸기를 통해 본 욕망과 규범의 문제>, ≪고전문학연구≫18, 2000, 129쪽.
29) 中寸幸彦, ≪日本古典文学大系56·上田秋成集≫, 日本: 岩波書店, 1959,13~14쪽.

30) 졸고,〈고전문학 속 여성들의 해원으로서의 변이에 관하여〉, ≪석당논총≫ 43, 2009, 145쪽.

 

 

2) 에고(Ego)형 자살

 

프로이드에 의하면 자아(에고)는 원초적, 본능적, 충동적인 이드와는 달리 현실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이성과 신중을 지향한다고 한다. ‘이드형 자살’이 주변환경과 도덕에 연연하지 않고 본능에 의한 사랑과 분노, 공격의 분출이라면, 한편 ‘슈퍼에고형 자살’은 당시의 시대적인 가치관에 근거하여 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드와 슈퍼에고의 중간과정인 ‘에고형 자살’은 환경의 제약을 인정하고,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현실의 장애를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독자적인 자살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하고, 사회적으로도 그 지위가 낮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죽음만이 현실에 순응, 타협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가부장사회하에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는 자유가 없던 여성들에게 죽음을 결정할 권리는 어느 정도 허용되었던 것이다.

 

(1) 소극적 현실 순응의 자살

 

조선 후기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의 사씨는 자신이 호의를 가지고 맞이했던 첩 교씨로부터 모해를 받아 가정으로부터 억울하게 축출되면서 인생 험로를 걷게 된다. 가정 안에서만 생활하던 여성이 가정 밖으로 쫓겨나고 유랑의 길에 오르며 가까스로 겁탈 위기를 모면한 뒤 자살하려고 회사정(懷沙亭)에 오른다.

그러나 사씨는 바로 혼절하고 꿈속에서 아황(娥皇)과 여영(女英)31)의 초대를 받고, 반첩여(班婕妤)32) 등 자
신이 존경하고 흠모하던 역사상의 인물을 만나 그들의 ‘인정’을 받고, 살아야 할 이유를 확인하고는 다시 돌아와 누명을 벗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가정 안에서만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았던 당시 여성에게 가정과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는 여성에게는 죽음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갈 곳 없는, 받아줄 곳 하나 없는 사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살’ 뿐이었다.

 

단지 순리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한 불안과 원망, 역사의 비정함에 대한 회한등은 꿈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양반의 아내로 강하게 눌러 왔던 두려움과 원망 등의 본능적 이드적 감정들이 꿈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결국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현실에 순응하고 있다.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장화홍련전≫의 홍련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언니 장화를 따라 삶의 의지를 포기하고 물에 뛰어든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계모의 구박아래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언니의 죽음은 철저히 가정으로부터 소외되어 홀로 남았다는 혼란스러움을 주고, 가정에서 더 이상 아무런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녀는 자살로서 현실에순응하고 있다.


당시 여성에게 유일한 공간인 가정과 가족으로부터의 소외는 여성에게는 죽음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갈 곳 없는, 받아줄 곳 하나 없는 그녀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살’ 뿐이었다. 그녀들의 자살은 ‘분노’ 와 ‘충동’의 자살도 아니며, 한편 ‘효’와 ‘열’이라는 위대한 가치관을 완성하는 자살도 아닌 ‘현실에 순응하는 자살’이었다. 한편 이 유형의 자살에서는 여성에게 가족과 가정이 절대적 위치임을 강조하고, 소외되거나 축출된 경우는 ‘죽음’이라는 파국만이 기다린다는 것을 다시 한 번주지시키고 있다.

 

31) 아황(娥皇)은 여영(女英)과 자매로 순임금의 왕비였다. 요(堯) 임금이 그의 두 딸 아황(娥黃)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주어서 사위를 삼고 임금 자리를 물려주었다. 아울러 자신의 아들 아홉 명을 순과 함께 생활하도록 하였다. 우순(虞舜) 임금이 남방 지역을 순시(巡視) 할 때 병으로 창오(倉梧)에서 죽자, 소상강가에서 슬픔에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32) 漢나라 성제의 후궁이며 유명한 여류 시인이다. 초기에는 매우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으나, 젊고 아름다운 조비연(趙飛燕)과 그 여동생이 후비로 입궁하면서 점점 실총(失寵)하게 된다. 조비연 자매는 그녀와 허황후(許皇后)를 제거하기 위해 성제에게 허씨와 반씨가 후궁들과 성제를 저주하고 있다고 무고하였고 이 때문에 허황후는 폐위되었다. 반첩여도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결백을 주장하여 결국은 혐의가 풀리고 금까지 하사받았다

 

 

(2) 적극적 현실 순응의 자살

 

여성이 현실의 제약을 깨닫고 순응하지만 앞의 유형처럼 자포자기의 심정의 소극적인 순응이 아닌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에 순응 및 타협하는 자살의 유형이 있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나아가 자살을 통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에게 간접적으로 사회적·심리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

즉 죽음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평생 죄책감을 갖게 하는 정신적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다만, ‘이드적 자살’에서 보이는 분노분출과 욕구폭발형의 일시적 충동에 의한 자살이 아니라, 현실상황을 냉정히 인식하고 좌고우면하면서 지속적인 고려하에 이루어지는 자살이다.


명의 풍몽룡의 ≪警世通言≫ 第32卷 ≪杜十娘怒沉百寳箱≫ 속의 두십낭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배신한 이갑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서생 이갑은 장안 최고의 기생 두십낭에게 빠져 돈을 다 탕진하게 된다. 그리하여 기생어미는 두십낭에게 돈 없는 이갑을 쫓아버리지만 이갑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두십낭은 오히려 그를 위해 돈을 마련하여 주고, 같이 고향으로 내려가서 결혼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때 손부라는 부호가 두십낭에게 반하여 이갑을 감언이설로 꼬드겨 두십낭을 취하려 한다. 마침 화류계 출신의 며느리를 부모님께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이생은 돈을 받고 그녀를 팔기로 한다. 두십낭은 이를 알고, 이생도 알지 못하던 자신의 천만금의 보물을아무 미련 없이 강에 던지고, 그 자신도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그후 이갑은 미친병에 걸리고 손부도 충격으로 병에 걸려 죽고 만다.


두십낭은 돈 욕심 때문에 자신을 저버린 연인 이갑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지만 한편, 화류계 출신의 자신에 대한 사회적 제약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엄청난 보물을 보여 준 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자신의 헛된 꿈과 함께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오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자를 열어 보인 것은 서방님에게 천금이란 재물이 별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지요. 첩의 함 속에는 옥이 있었지만, 한스럽게도 서방님의 눈 속에는 눈동자가 없는 거지요.
제가 박복하여, 창기 생활로 극히 고달팠는데, 이제 막 그 생활에서 벗어났는데 또 버림받는군요.

지금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모두 사실을 증명해줄 거예요.

첩이 서방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서방님께서 저를 배신한 것이에요!”33)

33) “今日當衆目之前,開箱出視,使郎君知區區千金,未爲難事. 妾櫝中有玉,恨郎眼內無珠.

命之不辰,風塵困瘁,甫得脱離,又遭棄捐.

今衆人各有耳目,共作證明,

妾不負郎君,郎君自負妾耳!”(≪警世通言≫第32卷, 三秦出版社, 1993)

 

그리고 이갑은 두십낭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 이후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마음의 병을 얻어 결국 죽게 된다.


풍몽룡의 ≪三言·王嬌鸞百年長恨≫의 왕교란도 자신의 사랑이 배신당하자, 관부에 혼약서를 보내고, 자신의 억울함을 자결로서 증명한다.

주정장(周廷章)은 재색을 탐하여 왕교란과의 혼인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여인과 정혼한다. 이로 인해 절망한 왕교란은 상대의 변심에 복수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나 왕교란은 명문가의 규수로서 재색을 갖추었으니, 만약 이대로 조용히 죽는다면 그 박정한 사람만 좋게 하는 것이다.”34)

34) “我嬌鸞名門愛女, 美貌多才. 若嘿嘿而死, 却便宜了薄情之人.” (≪警世通言≫卷36, 三秦出版社, 1993)

 

그리고 관부에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읊은 시와 함께 증거가 되는 혼약서를 관부에 보내고 목숨을 끊는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연인의 ‘결혼 약속’파기가 한 여성의 인생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연인의 배신이 한 사람에게 미친 불행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설득력있게 보여 주고자 하였다.35)

두십낭과 왕교란의 자살은 저항할 수 없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순응이었지만, 한편 소외되고 배제된 여성들을 위한 적극적 항변이며 저항이기도 하였다.36)


앞장의 ‘이드형 자살’이 분노와 증오로 충동적이며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여 파괴시키는 자살이라면, ‘에고형 자살’은 여성 자신이 절망에 처한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면서 죽음으로 순응하기도 하며, 한편 일정한 경우에는 냉정한 판단과 사고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당시 가부장제도의 사회하에서 오직 ‘죽음’으로서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힘없고 여린 여성들의 아픔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35) 오문희, ≪삼언의 복수고사 연구≫, 명지대학교 석사논문, 2010, 153쪽.
36) 천대진, ≪삼언의 비극작품 시론≫, 경상대학교 석사논문, 2011, 20쪽.

 

 

3) 슈퍼에고(Super-Ego)형 자살

 

프로이드에 의하면 초자아(슈퍼에고)는 양심과 긍지의 저장소이면서 도덕적 제약을 의미한다고 한다. 초자아는 본능인 이드의 충동을 억제, 금지시키며, 사회적 가치관을 중시여기며 이상을 추구한다.

즉, 개인이 사회로부터 가치관, 도덕 등을 내면화한 개인적 가치의 총합체이다. 이처럼 자살의 동기를 여성 내부에서 끌어내어 사회의 규범과 개인의 가치관과 연결시키고 있는 점에서 볼 때 자살의 동기를 사회에서 찾는 사회학적 이론과도 연관성을 간과할 수 없다.

사회학적 자살 연구의 고전인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중 사회통합이 강하여 집단규범이 개인에게 강하게 작용하여 발생한다는 ‘이타적 자살’과 ‘슈퍼에고형 자살’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여성의 자살을 사회적, 관습적, 도덕적 이념을 내면화하는 결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이를 사회·윤리적 자살이라고도 부르고자 한다. 당시 가부장 제도의 봉건사회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 윤리적 규범인 효와 열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효(孝)의 완성을 위한 자살

 

유가에서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37)이라 하며, 한편 불교에서는 ‘부모의 은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육체를 모두 다 함께 바치라.’38)라고 명시하듯이 효(孝)는 한중일 고대 사회 남녀모두에게 부과되는 절대적 가치였다. 이러한 유불교 문화에 근간을 둔 한중일 고대 문학 작품 속에는 지극한 효(孝)를 완성하는 길로 자살을 선택하는 여주인공들이 있었다.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심청천≫의 심청이는 지극한 효의 완성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되기를 자청하고 인당수에 몸을 던졌으며, 그러한 그녀의 희생(자살)은 하늘을 감동시켜,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뜨고 자신도 왕후가 되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청초 포송령의 ≪聊齋誌異·商三官≫편의 상삼관(商三官)은 작가가 중국역사상 최고의 자객이었던 예양(豫讓)39), 형가(荊軻)40)와 비교하여 높이 칭송하였고 심지어 삼국시대의 관우에까지 비교하기에 이른 여주인공이다. 17, 8세의 연약한 소녀 상삼관(商三官)은 아버지가 토호의 비위를 거슬러 몰매를 맞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자 자신의 혼인을 보류하며,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홀로 복수의 길로 나선다.
먼저 원수를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신중히 모색하다 남장을 하고 극단에 들어간다. 그리고 원수의 생일 연회에 남장배우로 나타나서는 웃음과 교태로 상대의 경계심을 풀게 하고는 단 칼에 복수를 완성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 자리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다.

관가에서 시신을 조사하던 중 상삼관(商三官)임이 밝혀지고 관가에서는 그녀의 효심을 기특히 여겨 시체를 두 오라비에게 내어 주고 아울러 ‘토호의 집안은 이 일로 다시 그녀의 두 오빠에게 복수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린다. 상삼관(商三官)이 남장배우의 모습 그대로 자살하는 것은 자신의 살인죄가 가족들에게까지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갸륵한 희생정신으로도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희생적 자살은 관부를 감동시켜 더 이상의 피의 복수를 부르지는 않게 된다. 부모의 복수를 대신하는 효심과 갸륵한 희생적 죽음에 대해서 작가 포송령은 그녀와 무능했던 두 오빠를 비교하고 있다.

 

“집안에 여자 예양(豫讓)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두 오라비가 어떤 사내였는지 알만도 하다.

하지만 삼관의 인품은 길게 노래를 읊조리며 쓸쓸히 역수(易水)를 건너간 형가(荊軻)에 비겨도 무방할 것이다. 강물도 그녀에게는 부끄러워 더 이상 흐르려 들지 않을 판인데, 멍청하게 세속을 따라 부침하는 저 무능한 인간들임에랴!

원컨대 온 천하의 여자들이 색실을 사 삼관의 초상을 수놓아 받들게 한다면, 그 공덕은 필시 관우를 모시는 것에 덜하지 않을 것이다.”41)

41)異史氏曰:“家有女豫讓而不知,則兄之爲丈夫者可知矣。

然三官之爲人,即蕭蕭易水,

亦將羞而不流,況碌碌與 世浮沉者耶!

願天下閨中人,買絲繡之,其功德當不減於奉壯繆也.” (김혜경(역), ≪요재지이․상삼관≫, 민음사, 2002)

 

상삼관(商三官)을 용기와 의리의 화신으로 보고 있는 관우와 비교하는 것은 당시의 가부장사회로서는 아주 드문 평가로 그녀의 복수행위와 자살의 동기가 효(孝)에 기초하고 있기에 가능한 평가가 아닌가 한다.42)

 

37) ≪孝經≫
38) ≪心地觀經≫

39) 진나라 사람으로 그의 주군 지백이 양자에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결심하였으나 실패하자 옻으로 몸을 칠하고 숯을 삼켜 문둥이와 벙어리로 변해 다시 복수의 기회를 노리나 또 다시 실패하자 자결한다.
40) 태자단이 진시황을 죽이려고 보낸 자객으로 실패하고 죽음을 맞는다.

42) 졸고,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복수>, ≪중국학≫38, 2011, 178쪽.

 

 

(2) 열(烈)의 추구를 위한 자살

 

봉건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덕목인 효(孝)가 남녀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되는 가치관이라면 열(烈)은 남녀관계에서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윤리규범이었다.43) 특히 한중일 고대사회는 정조관념의 경직화로 말미암아 정신적 순결보다 육체적 순결이 더 강조되어 여성의 육신을 남편의 종속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성은 육체적 정조를 순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가 되었기에 설령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순결을 더럽혔을 경우라 해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지나친 육체적 순결의 중시는 수많은 한중일 고대 여성들의 목숨을 아깝게 희생시켰다.44)

한편 가부장제의 유지를 위하여 제도적, 사회적으로 뒷받침된 열녀숭상 분위기는 대량의 열녀들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나아가 국가가 주도한 다양한 ≪열녀전≫텍스트의 대량 생산과 보급은 유교적 가부장제도의 질서 유지를 위한 여성상 수립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여성의 자살의 동기가 이러한 열(烈)에 연결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칭송, 권장되는 측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45)

 

43) 이인경, ≪열녀설화의 재해석≫, 서울: 월인출판사, 2006, 14쪽.
44) 신혜경, ≪삼언을 통해 본 명대혼인양상연구≫, 숙명여대석사학위논문,2011, 79쪽.

45)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조. 전여강 지음, 이정재 옮김, ≪공자의 이름으로 죽은 여인들≫, 서울: 예문서원, 1999년.

 

 

가. 남편의 입신양명

 

삼국시대 일연의 ≪三國遺事≫에 실려 있는 ≪김현감호(金現感虎)≫설화 속에서도 낭군을 위하여 희생하는 호녀(虎女)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탑돌이를 하다가 발견한 아름다운 호녀의 집까지 따라온 김현은 그녀의 오라비들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다. 그 때 하늘은 오라비들이 남의 생명을 빼앗기 좋아한다는 죄목으로 그들 중 한 명을 죽여 악행을 징계하고자 한다. 그러자 호녀는 그들의 죄를 대속하여 죽고자 하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김현에게 출세의 기회를 주고자 한다. 자신이 도성에 들어가 사람들을 해치면 나라에서는 벼슬을 내걸고 호랑이를 잡는 사람을 구할 것이니, 그때 자신을 잡아 벼슬을 얻으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다음 날 호녀는 ‘김현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한다. 그녀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오라비들의 생명을 구하고 동시에 김현에게 출세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의 자살은 오라비들을 위한 의리의 실천이며, 동시에 사랑하는 임을 위한 희생이라는 의미를 띤다. 후에 김현이 호랑이를 처치하고 나라로부터 상금과 벼슬을 얻게 되고 김현은 절을 지어 자기를 위하여 희생한 호랑이 처녀의 명복을 빌어 준다.


일본의 ≪今昔物語集≫제14권 5화 ≪爲救野干死寫法花人語(여우의 죽음을 구제하기 위해 法華經을 書寫한 사람의 이야기)≫에도 여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여 어느 무사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 정분을 버리지 못하여 남자 대신 목숨을 내어 놓은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무사는 여우가 죽은 이후 7일마다 법화경 한 부를 공양하여 바쳤고 그 공덕으로 여우는 극락왕생하게 된다.

암여우가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야기는 일본 설화 속에서도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여성들은 남편과 연인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희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죽음에는 ‘절을 지어 명복을 빌어주고’, ‘극락왕생하는’ 행복한 결말을 선사함으로 가부장적 가치관으로부터 칭송을 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

 

 

나. 정절보존

 

명왕조와 조선후기 대량으로 나온 ≪열녀전≫ 속의 열녀들은 가부장적 봉건주의 사고로 무장되어 순종과 희생만을 미덕으로만 여기던 여인들이었고 그들에게 정절은 죽음으로 지켜야 하는 중요한 가치였다.

특히 유학자들은 정조를 여성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라고 세뇌시켰다. ‘굶어 죽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정절을 잃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라는 논리로 여성들에게 강력한 족쇄를 채운다.

여성들에게 육체적 정조를 순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가 되었기에 정절보존은 무엇보다 중요한 여성의 덕목이며 목숨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었다. 그리고 훼절이 자의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더욱이 타의에 의해 순결을 더럽혔을 경우라 해도 가차 없이 죽음으로 처벌하고 있다.


≪金甁梅≫와 함께 성(性)을 주제로 다룬 중국 고전소설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명말청초 극작가 이어(李漁)의 ≪肉蒲團≫에서 명문가의 자제인 미앙생(未央生)은 유부녀나 과부등 가리지 않고 유혹하는 등의 엽색행각을 벌인다. 하지만 과다한 엽색행각 끝에 정기(精氣)를 빼앗긴 미앙생이 치료 차 경성(京城)의 한 기방에서 만난 이는 다름 아닌 명기(名妓)로 변한 그의 아내 옥향(玉香)이었다.

그가 집을 떠난 사이, 미앙생이 범한 유부녀의 남편이 그에게 복수하고자 의도적으로 외로운 옥향에게 접근하여 그녀를 유혹하고 나중에 기루에 팔아 넘겨 버렸던 것이다. 결국 아내 옥향은 수치심으로 목을 매 자살하고, 뒤늦게 과오를 깨우친 미앙생이 불문(佛門)에 귀의한다.


풍몽룡의 ≪三言·莊子休鼓盆成大道≫ 중 장자의 아내 전씨도 남편 사후 절대 개가하지 않겠다고 장담하지만, 갑작스러운 장자의 죽음 후 그 맹세는 물거품이 된다. 조문객 왕손(王孫)의 용모에 반해 그와 결혼하고, 그의 병을 고치려면 산 사람의 뇌를 먹어야 한다고 하자 전 남편 장자의 관을 쪼개 뇌를 꺼내려 한다.

그 순간 장자가 벌떡 일어나고, 남편에 대한 미안한 감정과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수치스러움에 목을 맨다.


일본 에도시대를 풍미했던 우키요조시(浮世草子)의 대표 작가 이하라사이카쿠(井原西鶴)의 ≪好色五人女≫46)에서도 남편에게 자신의 부정이 발각되자 자살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2권 ≪情を入し樽屋物語≫의 오센은 주인 쵸자에몬의 아내에게 심한 구박을 받는다. 주인의 실수로 떨어뜨린 그릇이 오센의 머리에 맞아 틀어 올린 머리가 풀어지자 이 모습을 보고 자기 남편과 정을 통했다고 생각하여 비난하자, 오센은 인내심을 잃고 욱하는 심정에 주인 쵸자에몬을 유혹하기로 한다. 그리고, 뜻밖에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지금까지 남편밖에 몰랐던 마음이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리고 곧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고, 몰래 미리 의논하여 언젠가 좋은 기회가 있으면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47)

 

그러나 불륜 현장이 남편에게 발각되자, 수치심에 자신은 톱으로 가슴을 찔러 자살한다. 작품 말미에서는 이에 대해서 ‘그런데, 여자라고 하는 것은 변덕스러운 것이라서 … 인간된 자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색(色)의 길이다’ 라고 하여 유부녀의 간통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고, ‘악한 짓을 하면 천벌을 피할 수 없는 무서운 세상이다.’라고 오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도록 끝을 맺고 있다.48)


≪肉蒲團≫의 옥향과 장자부인도 남편의 오랜 시간 부재 혹은 죽음후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 결국 훼절 혹은 신의를 저버린 행동을 한 여성들이다.

또 ≪好色五人女≫의 오센은 다른 여성의 지나친 질투심로 인한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가지고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여성들의 부정(不貞)의 원인을 제공한 남편 혹은 다른 여성들에 대하여는 아무 처벌도 하지 않고 위의 여성들만 ‘부정(不貞)한 여인’이라는 수치심으로 자결하게 만들고 있다.

≪肉蒲團≫의 미앙생처럼 유부녀를 유혹하여 모든 비극의 씨앗을 만든 그는 불가에 귀의하여 반성함으로 용서를 받았지만 한편 그와 함께 방종하였던 여성들은 용서받지 못하고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이처럼 동일한 죄에 대해서도 남성에겐 관대하고 여성에게는 가혹하였다.49)
남편의 오랜 부재, 타인의 부당한 처우, 사랑의 발견등의 요소들은 전혀 고려받지 못하고 오직 일부종사하지 못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성에게는 일말의 허용도 없이 자살이라는 파국을 맞아야 하는 가부장제도하의 여
성의 아픔을 잘 보여 주고 있다.

 

46) 編輯部, ≪新版 好色五人女 現代語譯付き≫, (東京:角川ソフィア文庫, 2008)
47) 各別のこころざし、ほどなく戀となり、しのびしのびに申しかはし、いつぞのしゆびをまちける。(井原西鶴, 校注 暉峻康隆, 東明雅『好色五人女』、『井原西鶴集1』, 小學館, 1996)
48) 이충호,〈호색오인녀의 여성관〉, ≪일본연구≫2, 2002, 65쪽.

49) 송진영, <얼폐전을 통해 본 악녀이미지연구>, ≪중국어문학지≫9, 2001, 534쪽.

 

 

(3) 효(孝)와 열(烈) 동시 추구를 위한 자살

 

고대 한중일 사회에서 남성이 부모와 자식에서 맺어지는 효(孝)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때때로 여성은 효(孝)와 열(烈)을 동시에 충족시킬 것을 요구받고 있었다. 나아가, 효(孝)의 측면에서도 남성의 효(孝)는 오로지 친부모와의 관계에 한정되는 것이었으나, 여성에게는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라는 새로운 효의 대상이 존재하게 되고 따라서 시부모에 대한 효 또한 윤리적 모티브로 설정하여, 일방적으로 무거운 윤리적인 의무를 지우고 있다.50)


조선 후기 ≪열녀홍씨전≫51)의 홍씨는 남편이 죽자 시아버지의 총애와 신뢰를 받으며 시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집안의 주도권과 재산에 욕심을 낸 시아버지의 첩과 시동생 내외의 정절 모함이 있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추관 앞에서 옷을 벗어 자신의 가슴과 배를 보여줌으로써 결백을 입증하고 자결하였다.

홍씨의 자결은 다른 열녀들처럼 남편 사후 절개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에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정절을 공인받기 위해 많은 사람 앞에 옷을 벗어 결국 아기를 낳은 흔적이 없음을 증명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소송은 인륜의 지극한 변고로, 만약 다른 허물과 관계된 것이라면 제가 비록 수만 번 찢겨 죽더라도 즐겨 죄를 받겠나이다. 어찌 감히 시아버님께 대항하여 스스로 억울함을 펴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여러 악인들이 쇠도 녹이는 입으로 시아버님의 마음을 속이고 그르쳐 망극한 말을 하여 저의 몸을 욕되게 하니 누명을 벗고 죽어 황천에서 불결한 귀신 됨을 면하기를 바라나이.52)"

52) “舅婦之訟 人倫極變 若係他累 妾雖萬萬磔死 甘心服罪 何敢抗舅自伸

 而此則群姦鑠金之口 詿誤舅心 爲言罔極 扜衊妾身 玆願一湔而死 免作泉下不潔之鬼.”

(이시선, <烈女洪氏傳>, ≪松月齊集≫)

 

자신의 정절을 의심하는 시아버지에 대해서 며느리가 소송하는 것은 당대의 절대적 규범인 ‘효’와 크게 상충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절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시적인 불효’와 벗은 몸으로 결백을 증명하는 ‘일시적인 훼절’을 감행한다. 그리고 효와 열을 동시에 범한 자신을 자결로써 처벌함으로 ‘영원한 효와 열’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홍씨가 자결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음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와 권리를 행사한 여성의 슬픈 결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열’의 범위는 때때로 확대되어 출가하지 않은 여성, 즉 남편이 없는 여성에게까지 확대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중일 고대사회에서는 유부녀에게는 남편을 위한 정절 보존을 요구하며, 또한 출가하지 않은 아가씨 혹은 남편이 없는 여성들에게도 가문의 체통과 가부장적 가치관을 수호하기 위하여 정조를 지키며 여성의 도리를 다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명의 풍몽룡의 ≪三言·蔡瑞虹忍辱報仇≫이야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채서홍이라는 여인이 오랜 세월 동안 수모를 참고 부모를 살해한 원수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부임지로 향하던 채서홍의 가족은 진효사(陈老四) 등 일곱 명의 선원에게 모두 살해되고, 자신은 강간당하고
버려진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채서홍은 변복(卞福)의 첩이 되어 그에게 복수를 부탁하지만, 오히려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팔아 버린다.
그 남자는 그녀를 다시 사창가에 팔아넘길 뿐만 아니라 주원(朱源)을 유혹해 사기를 치도록 한다. 하지만 주원의 훌륭한 덕행을 알아본 채서홍은 그에게 음모를 알려주고 함께 도망간다.

이후 진사에 합격해 부임지로 가던 주원은 배의 선원이 진효사인 것을 알게 되고, 채서홍의 가족을 살해했던 흉악범들을 모두 체포하여 사형판결을 받게 한다.

가슴깊이 사무친 부모의 원수를 갚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아 있었던 채서홍은 주원에게 유서를 남기고 가위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 그녀의 유서에서 부모의 원한을 갚기 위해 긴 세월동안 여러 남자를 거치는 모진 수모를 견뎌냈으며, 또한 여성으로서 정절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죽음을 택했음을 토로하고 있다.

 

“남자의 덕은 의리에 있고, 여자의 덕은 정절에 있나이다. 여자가 정절을 지키지 못하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나이까!

… 내가 (치욕을)참으면서 죽지 않은 것은 한 사람의 치욕은 작은 일이요, 가문의 원수를 갚는 것이 중대사이기 때문입니다.

… 첩은 원수를 갚고 뜻을 이루었나이다!

어찌 정절을 잃고 살기를 바라며, 가문에 치욕을 남기겠나이까, 첩은 곧 죽을 것입니다.”53)

53) “男德在義, 女德在節. 女而不節, 行禽何別!

…… 然而隱忍不死者, 以爲一人之廉耻小, 闔門之仇怨大.

…… 妾之仇已雪而志以遂矣!

失節貪生, 貽玷閥閱, 妾且就死.”

馮夢龍,<蔡瑞虹忍辱報仇>, ≪醒世恒言≫ 卷36, 三秦出版社, 1993, 721쪽.

 

그녀는 정절을 지키는 것을 여자의 덕목으로 보았고 부모의 복수를 위해서는 그 어떤 치욕도 감수할 수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채서홍은 강간을 당하고, 기루에 팔리기도 하고, 짐승 같은 자들에게 유린을 당하지만 마음속으로 오직 복수 하나만을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딘 것이다.

그녀는 여자로서의 정절은 잃었지만 작가는 그녀의 효성과 절개를 높이 평가하면서 고금에 비할 자가 없다고 칭송한다. 황제는 그녀를 위해 절효방(節孝坊)까지 세워주도록 한다.54)

그녀의 죽음에는 자신의 문란함이나 선택이 아닌 외부로부터의 어쩔 수 없는 공격이었을지라도, 순결을 잃은 여성은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혹은 죽음으로써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가부장적 봉건사상이 깔려있다.

너무나도 불행했던 여성이 원수를 처단함으로 부모님에 대한‘효’를 힘겹게 완성하지만, 또 다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열’이라는 한층 더 강력하고 무거운 의무였다. 결국 죽음이라는 파국을 맞게 된다.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조선 후기 안석경(安錫儆)의 ≪霅橋漫錄≫에 수록된 한문단편소설 ≪劍女≫의 주인집 아가씨와 여종은 멸문지화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남장을 하고 복수를 도와 줄 수 있는 검객을 찾아 무공을 익히고, 보검을 마련하는 등으로 주도면밀하게 복수를 준비하였다.

이윽고 부모님의 복수를 어렵게 완성하고 난 뒤 아가씨는 여종에게 유언을 남긴 뒤 자결을 한다. 여종에게는 스스로 좋은 배우자를 찾는 자주적인 삶을 살라고 당차게 당부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결한다.

 

“나는 아들이 아니어서 세상에 살아남더라도 끝내 대를 잇지는 못한다.

더구나 남장으로 8년 동안 천 리를 돌아다녔으니, 몸을 더럽히지는 않았지만 어찌 처녀의 도리라고 하겠느냐. 시집을 가고 싶어도 필시 갈 곳이 없을 터이고, 시집간들 마음에 맞는 장부를 만날 수 있겠느냐.

더구나 우리 집안은 대대로 독자여서 가까운 친척이 거의 없으니, 누가 혼주(婚主)가 되겠느냐.

나는 여기에서 스스로 목을 베어 죽으련다.”55)

55) “吾非吾親之男子, 雖生存於世, 終非嗣續之重,

而男裝八歲, 方行千里, 縱不汚身於人, 寧爲處子之道乎?

欲嫁必無所售 使得售 何得稱意之丈夫哉?

且吾家單孑, 絶無强近之親, 誰爲吾主婚者耶?

吾卽自刎而伏於此.”

(이우성 외 편역, ≪이조한문단편집·劍女≫, 서울: 일조각, 1996)

 

아가씨는 훼절도 아닌 단지 ‘남장’과 8년 동안 ‘떠돌아다닌’ 행위에 대해서도 양반집 처녀의 법도를 어겼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여성은 집안에서만 순결을 보장 받고 집 밖에서는 보장 받지 못한다는 당시의 사회 가치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여염집 규수로 일탈행위인 ‘남장’을 하고 사적 복수를 완성하는 과정은 비록 부모의 복수라는 윤리적 동기의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되는 행위이지만, 결국 다시는 전통사회로 돌아 올 수 없는 ‘죽음’으로 스스로 처벌하고 있다.56)


‘남존여비(男尊女卑)’, ‘부위부강(夫爲婦綱)’이 중요한 윤리적 기준으로 여겨지는 고대 한중일 가부장체제 사회에서 이러한 원칙들은 위로부터 아래로 철저하게 지켜져야 했다.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여성이야말로 성숙하고 옳은 여성이며, 나아가 사회가 원하는 ‘賢婦’,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문학 작품 속에서 칭송함으로써 ‘양보와 희생’을 여성의 미덕으로 내면화, 주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57)
때로는 자신보다 사회윤리와 가치관을 중시하는 ‘슈퍼에고형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하여 이러한 미덕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즉 한중일 고전 문학 모두 여성의 이러한 자살은 가부장적 봉건사회적 질서에 기능적이고, 유익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50) 졸고,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복수>, ≪중국학≫38, 2011, 176쪽.
51) 이시선, <烈女洪氏傳>, ≪松月齊集≫

54) 장연호,〈중한송사소설의 여성형상 비교연구〉, ≪Journal of Korean Culture≫19, 2006, 102쪽.

56) 졸고,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남장>, ≪중국학≫44, 2013,88쪽.
57) 졸고, <한중일 고전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과 질투>, ≪중국학≫41, 2012, 59쪽.

 

 

3. 나가며

 

이상으로 자살의 동기를 여성 내부에서 찾는 정신의학적·심리학적 분석의 틀을 활용하여 한중일 고전문학속의 여성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삼국의 고전문학 속 여성의 자살에 있어서 아래와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삼국 모두 유교의 영향으로 사회적, 관습적, 도덕적 이념을 내면화하는 ‘슈퍼에고형 자살’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하여 여성의 자살이 ‘효’와 ‘열’과 관련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측면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 유교와 더불어 또 다른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불교의 내세관으로 인하여 여성들은 ‘자살’을 삶의 마지막이라고 보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의 통과의식의 형태로 보고, ‘자살’을 통해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과 복수를 내세에서 완성할 수 있다는 의식도 지니고 있었다.

즉 봉건적 가부장체제하의 고대 여성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사랑의 완성과 내세에서의 지속’을 추구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한도 내에서 ‘질투’나 ‘분노’ 같은 사회적 금기들을 수동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 이외에도 삼국의 독특한 문화적, 지리적 배경으로 인하여 삼국은 자신만의 렌즈로 여성의 자살을 바라보고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중국과 한국은 강력한 유교의 영향으로 ‘효’와 ‘열’이 강조되고 위 두 가지를 동기로 한 여성의 자살은 칭송받기까지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유독, 중국과 한국의 고전문학 속에서 많은 열녀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를 재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와 남성중심주의의 구축을 위한 이데올로기적인 순응을 그 시대 여성들에게 내면화시킨 결과물이기도 하였다.

특히 명나라의 과열된 열녀숭상분위기와 조선시대 많은 전란을 거치면서 수많은 여성들이 정절을 지키고자 열녀대열에 합류하였던 점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에 비하여 일본은 유교적 사회윤리 가치관의 영향이 다소 느슨하였고, 더불어 중국과 한국에서 보이는 국가의 강력한 제도적 장치와 전쟁이라는 사회적 환경으로 인한 대량의 열녀출현 현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 강력한 불교의 영향으로 죽음에 대한 본능이 가장 강하게 드러남으로써 여성의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불교라는 종교 이외에도 섬으로 고립된 특수한 자연적 환경,신도(神道)를 중심으로 한 ‘신인동형(神人同形)’사상의 영향으로 죽음 이후 신이 된다는 독특한 정신세계가 문학작품에도 깊이 뿌리내린 것이 아닌가 한다. 또한 무사도의 영향으로 죽음을 다소 ‘가볍게’ 또는 ‘친숙하게’ 보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이를 미화하는 탐미적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정서가 그 뿌리에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대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정사(情死) 열풍에 기초한 ‘신주(心中)’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다.


이처럼 고대 한중일 삼국 모두 가부장적인 고대봉건사회구조로 인하여 자신의 욕망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의 방식과 유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던 여성들에게 ‘자살’이라는 것은 오로지 유일하게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권리이자 자유였다.

그들은 삶의 방식과 내용은 선택할 수 없었을지 모르나, 죽음만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의 고전문학 속에서 ‘죽음에 이를 권리’를 선택할 여성들은 그 시대의 눈으로 재단된 가치관의 희생자처럼
보일지 모르나, 자살을 선택한 여성, 그 자신의 심경(心鏡)으로 본다면 봉건사회의 틈을 통해 비쳤던 희미한 자유의 빛으로서의 ‘허용된 위험’ 이었으며, 그 당시 여성들이 가졌던 가장 사치스러운 이기심의 발로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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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部, ≪新版好色五人女 現代語譯付き≫, 東京: 角川ソフィア文庫, 2008.

 

 

<中文提要>

 

本论文主要以韩中日古代文学作品中出现的女性自杀现象为主题,分析 了女性决心自杀的动机、展开、以及结果。本文以弗洛伊德(Sigmund Freud)精神分析理论中的人类三种意识, 描述了古代韩中日文学作品中女性 自杀行为: 一, 本我型(Id),自我型(Ego),超我型(Super- Ego)。通过这 三种类型, 对女性的自杀行为进行了分析, 并对其内心反应出的社会的认识 和当时的女性观进行了剖析。

我们发现,三个国家古代文学中女性自杀的行为有以下共同点。三国古 代女性在‘女性自杀’的展开过程中, 如以社会共同认同的儒家伦理道德‘孝’ 和 ‘烈’为动机,就得到全社会的肯定和支持,而且受了佛教的‘轮回转生’、‘因果 报应’的观念,通过‘自杀行为’寄托她们的梦想和理想。

但是,因三个国家文化背景的不同,也存在一些差异性。韩国和中国, 特别到了明朝,李朝时期甚至带有国家鼓励‘女性自杀’的色彩。不同于中国 和韩国,日本尚死的文化又形成了日本人独特的生死观。而日本人独特的生 死观又促成了女性自杀情节。

结果,儒道佛家为思想背景的男尊女卑的韩中日旧社会里,以社会认同 的伦理动机为出口, ‘自杀行为’给女性留下了个人自由权利的余地,同时成 为唯一女性自已选择的权利。

 

 

关键词 : 女性, 自杀,韩中日, 古代文学, 比较文学, 弗洛伊德 (Sigmund Freud)

 

 

 

투 고 일 : 2014.2.22

심 사 일 : 2014.3.3~3.31

게재확정일 : 2014.4.20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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