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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본]일본군의 패인

Bawoo 2017. 5. 17. 23:13

일본군의 패인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게 진 이유는? 

물량과 과학에서 뒤진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일본과 미, 영의 국력 차이는 철강 생산량으로만 국한하여 비교해봐도 700만톤대 7500만톤, 1200만톤이었다고 한다.(1941년 기준) 

과학 분야는 레이더, 소나, 2000마력급의 항공기 엔진 그리고 핵병기의 보유 여부이고(작가 후기 참조).

그러나 작가는  일본 패전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일본이라는 사회, 일본군이란 집단의 미성숙에 있다고

이 책에서 다양한 내용을 제시하여 결론내리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지루한 내용도 있지만 일본이 대외팽창 정책을 취한 이유가 자국 영토가 외침에 의해 전장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는 내용은 처음으로 접한 것이어서 좀 놀라웠다. 섬나라는 국력이 강해지면 필연적으로 대외팽창 정책을  취하게 마련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영국이 좋은 예일 것 같다-자국의 방어수단이라니 좀 이해가 안 됐다,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한 것이 자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은 분명 아니었지 않은가. 중국 명왕조나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이 임진전쟁과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자국 영토가 전장화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은 인정이 되지만...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국력이 급신장됨에 따라 청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 이기면서 대동아공영이란 야욕이 생겼고 이 때문에 중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었던가.

아무튼 이 책을 읽다보면 온갖 고생 끝에 메이지유신에 성공하여 부국의 기틀을 마련한 유신 초기 세력들이 세상을 떠나자 그 과실만 챙긴  후손(2대)들의 과욕이 일본 국민을 전쟁의 수렁에 밀어넣은 것이 틀림없다. 군인 174만여명, 민간인 39만 여명을희생시키고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 짓을 말이다.


[아래는 출판사의 이 책 소개 글]


태평양전쟁의 패배로 이르는 과정을 추적한다!

일관성과 계획성을 결여한 국가의 전쟁목적은 전투의 패배와 무익한 인명의 손실로 이어졌다. 국민의 보호라는 기본 사명을 망각한 군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여 국민의 안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비정한 집단이 되었다. 여기에 무장집단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군의 고급지휘관들은 조직의 관리에 실패했고, 엘리트 참모들은 하극상으로 달려갔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사회로부터 소외되기에 이른 군은 스스로의 체질 개선을 통한 사회와의 융화를 거부하고 정치에 개입하여 국가와 사회 그 자체를 변혁시켜 나가려 했다. 근거를 알 수 없는 독선은 이러한 운동의 에너지가 되었다. 확립된 사상과 진정한 신앙심이 결여된 일본 사회의 결함은 이러한 왜곡된 심리 상태의 기반이 되었다.

미성숙한 국가와 사회에서 태어난 군은 근본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고, 이는 대일본제국을 장대한 파국으로 이끌었다. 이 책은 그 실상을 분석하여 패전의 원인을 밝히고 있다.


저자소개

역자 : 최종호1984년 강원도 강릉 출생.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시험(제54회)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제44기)을 수료.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 역서로 참모본부와 육군대학교(논형, 2015)가 있음.

목차

일러두기/ 서문
1장 목적의식을 상실한 체질

최초의 전쟁목적은 자존자위/ 포인트는 남방자원의 본토수송/ 개전의 이유가 된 연료사정/ 탱커를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해군의 자세/ 무너진 절대국방권의 중앙부/ 국체호지와 황토보위/ 적을 지치게 한다는 전략/ 최종국면에서의 전쟁목적/ 망각한 국가로서의 목표/ 연합국의 의도와 일본의 목적/ 신념과 슬로건/ 교섭의 상식을 모르는 일본인/ 국가가 확정해야 하는 이익선/ 미성숙한 일본 사회/ 기능집단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일본군/ 의사擬似가족적 색채의 제국육해군

2장 잃어버린 전투집단의 기본

부상병을 버리는 군대/ 사기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소련군과 미 해병대/ 대군을 버린 절대국방권/ 끔찍한 2개의 전례/
구체화된 육해군통합/ 육해군 상호 불신의 이유/ 통합의 마인드가 나타나지 못한 이유/ 상반된 의식의 존재와 발현/ 이입문화와 국수주의의 혼합/ 조직을 바라보는 미크로한 시각/ 3명을 최소단위로 하는 무장집단/ 소부대의 지휘를 체험하지 못한 장교

3장 군집화된 집단의 공포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었던 참극/ 남경공략전의 배경/ 사람의 마음 속에 병존하는 우애와 폭력/ 파리 코뮌/ 군집이 가지는 파멸적 성격/
군집화 될 수 밖에 없었던 항복한 일본군/ 항복적국요원으로 처우된 사례/ 포로수용소의 비참한 실태/ 군집화는 제2의 패배

4장 관리자가 없는 무장집단

장대하고 정치한 대륙에의 병참조직/ 말이 주체가 된 보급력/ 완전자동화를 달성한 미군/ 남방작전에 불가결한 자동차/ 버마 공격의 이유/ 연합군의 버마 반격/ 임팔 작전의 전체구상/ 보급선이 없는 최악의 전장/ 제31사단의 코히마 돌입/ 사토 사단장의 독단 퇴각/
고급인사의 대혼란/ 전선을 걷지 않는 일본의 장수/ 부대의 매니저로 철저한 자세/ 관리운영이라는 관념의 결여/ AGIL도식으로 보는 각종의 엘리트/ 장수는 경영자(적응형 엘리트)가 되어야 하는가

5장 독단전행과 하극상

홍콩공격에서의 와카바야시 중대장/ 대승의 그늘에서 행해진 징벌인사/ 레이테 돌입을 명령 받은 쿠리타 함대/ 정보가 공유되지 못한 결과/ 독단전행과 폭주의 경계/ 폭거, 장작림 폭살사건/ 남만주철도를 둘러싼 문제/ 봉칙명령 없는 해외출병/ 노몬한 사건의 하극상 3인방/ 철저하지 못했던 노몬한 사건의 사후처리/ 독단전행의 의미/ 러일전쟁부터 문제였던 막료들/ 일본육군의 스태프(막료) 조직/ 일본에는 없었던 공동책임의 관념/ 엘리트 막료에게서도 엿보이는 군집화/ 억압위양이 불러온 하극상

6장 혼란스러운 정군관계

일상적인 군인의 정치관여/ 군부대신 선임에 의한 정치개입/ 내각의 생사여탈권을 쥔 육해군/ 사회로부터 소외된 군대의 행방/ 자기 몸을 베어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육군/ 사회에 대한 반격을 준비한 사쿠라카이/ 육상 추천을 무기로 한 조각저지/ 총력전구상의 캠페인/
사회적 분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군부/ 직업군인이라는 말을 모욕적 표현으로 느끼는 심정/ 장교, 사관에 요구되는 것/ 군인봉급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대우/ 간성과 번병이라는 자부심/ 국군인가 황군인가

7장 사회에 대한 희박한 책임감

전후가 되어 강조된 ‘국민의 요청에 부응한다’/ 외정만을 위한 군대/ 존립의 기초가 되는 ‘기초집단’에 대한 경시/ 사이판에서 시작된 비극/ 철의 폭풍에 휩쓸린 오키나와현민/ 자국민 보호에 무관심했던 관동군/ 상상도 할 수 없는 본토결전시의 참상/ 확립된 사상을 공유하지 않는 집단/ 참된 의미의 신앙심을 지니지 못한 군대의 위험성/ 하사관이 주도했던 일본 육해군/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관료제

후기/ 역자후기/ 참고문헌/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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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책 소개 글]


'일본군의 패인'으로 보는 한국 군의 문제


다양한 패전원인을 종합적으로 분석, 한국군을 위한 교훈도 담겨...














일본군의 패인 
실패한 군대의 조직론

지은이 후지이 히사시(藤井非三四) 
옮긴이 최종호
분야 일본사 
ISBN 978-89-6357-426-4 94910
쪽수 272 
정가 20,000원
판형 신국판(152*225) 
발행 2016년 12월 15일

국가의 총력을 기울이고도 태평양전쟁에서 참패한 제국육해군이라는 조직, 나아가 일본 사회의 결함은 무엇이었는지 짚어보는 책이 나왔다.

츄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고쿠시칸国士舘 대학 정치학 연구과(전공: 한국전쟁사) 석사를 수료한 저자 후지이 히사시(藤井非三四)는
기존의 일본군의 패인을 작은 원인들에서 찾기보다는 큰 틀에서 복합적인 관계를 통해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日,사회의 미숙과 문민통제의 부재로 패전
저자는 군 조직의 다양한 문제점과 일본 사회의 미숙함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 결여와 시대적 상황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채 독선으로 국가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중일전쟁 해결의 방도를 찾지 못한 채 '자존자위(自存自衛)'와 '대동아신질서(大東亞新秩序)의 건설'을 목적으로 내걸고 태평양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의 출동 준비를 지시하는 대해령(大海令) 제1호에는 '자존자위'만이 기재되어 있고, '대동아신질서의 건설'이라는 표현은 없다.

이런 문제는 1942년 7월의 과달카날 전투에서 재앙으로 다가왔다. 계속된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제공권을 상실한 상황에서의 절망감에 빠지게 된 일본군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건투하고 있는 전우의 옥쇄(자살공격)를 수수방관하기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투가 개시되기 이전부터 아군을 버리는 일마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43년 9월 말 결정된 ‘절대국방권’ 구상이다.

연합군의 반격이 예상보다 1년 빨리 시작되자 과달카날 섬을 상실했고, 뉴기니에서도 방어로 전환하게 되었다. 여기서 전력을 절약하기 위해 라바울을 포함한 솔로몬 제도와 동부 뉴기니를 포기하여 방위선을 단축한다는 것이 절대국방권구상의 개략적인 내용이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은 오늘날 우리 군에서도 엿 볼수 있다. 국가 방위라는 전략 속에 육해공군의 통합군 개념이 자리잡아야 하지만, 각 군의 자군 이기주의의 틀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韓, 일본식 권위주의 모방이 역사 
전문가들은 우리군의 무기체계의 도입은 국가 전체의 전략이라는 틀 보다 자군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전차, 항공기, 함정 도입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각군의 자군 이기주의는 말단의 장병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면서 "조직 내 썩은 사과를 가려내기위해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병영문화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 군의 문제를 막연히 일본군의 잔재 혹은 그 영향이라고 말하지만 일본을 산업화 모델로 삼으면서 사회가 일본의 권위적인 모습을 닮아 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일본의 오늘을 만든 15년 일본의 전쟁사를 깊게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연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중인 역자 최종호(사법시험 54회)는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이래 70여 년간 계속되어온 안보상의 위기적 상황과 장기간 지속된 권위주의적 통치는 군에 대한 민간의 주도를 거부하는 주된 논거가 되었다"면서 "결국 오늘날까지도 정치권력은 문민통제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은 물론 그럴만한 역량조차 구비하지 못했다"며 우리 군이 일본군과 유사한 구조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역자는 "북한의 핵 보유와 이에 대한 방어수단인 사드THAAD 시스템의 배치 등 국가안보상의 쟁점에서 시작된 이른바 ‘방위사업비리’와 '각종 병영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국방과 군은 새로운 국민적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적 상황은 개별적·구체적 사안에서 다소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국가와 사회의 미성숙성에 기인한 대일본제국의 경우와 일말의 유사성이 있다"면서 "우리가 70여 년 전 대일본제국의 실패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captinm@fnnews.com 문형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