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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역사]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 중국- 천년전쟁

Bawoo 2017. 6. 6. 11:33

천년전쟁 

[베트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라다. 1960년 중반에 우리 국군이 처음으로 해외파병을 나가 전투를 치룬 당사국이고 지금은 이 나라 가난한 집안의 꽃다운 여성들이 우리나라로 시집을 와서 살고 있다. 그 이유가 비록 적대적인 입장이긴 했어도 우리 국군과 민간 기술자들이 베트남에 가서 지냈던 탓에 친근감이 일요인으로 작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베트남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은 아마 돌아가신 부친이 파월기술자로 근무하면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애쓰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책중에 역사 관련 책을 유달리 좋아하는 면도 작용했을 터이고.


그동안 베트남에 관하여 읽은 몇 권 안되는 책 중에는 "10,000일의 전쟁"이란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7년이 넘는 긴 세월을 프랑스, 미국을 상대로 싸워 독립을 쟁취한 기록인데  이것만 가지고도 베트남 민중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했었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헛되이 죽어갔을까를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었다. 태어나 먹고살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민중들에게 나라란 존재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 "천년전쟁"을 통해서 베트남은 중국 왕조가 바뀔 때마다 중국의 침략을 당했고 이를 격퇴하기 위해 피나는 항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민지배를 당했음은 물론이고 이는 현대 프랑스에게 당한 기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길었다는 사실도.


간추린 배트남 역사라고 볼 이 책에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우리 한반도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으로부터 침략당한 기록을 보면 한반도의 고려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송나라조차도 베트남을 침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 한반도가  중국에게 피침당한 역사를 보면 중국 왕조가 바뀔 때마다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침략의 이유도 완전 복속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일종의 견제용 정도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함부로 까불지 말고 얌전하게 있으면 건드리지 않겠다는 정도. 물론 이의 주된 이유는 만주와 티벳지역등에 있는 이민족 세력이 워낙 강성한 탓에 그들의 침략을 막는데도 힘이 벅찬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족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진 국가는 고대 한나라 외에는 한반도를 침공한 일이 없다. 당나라의 경우 창업주 이연, 이세민 부자가 한족이 아니라는 설도 있거니와 신라를 도와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선에서 끝났고 신라를 멸망시켜 한반도 전체를 중국에 복속시키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이의 주된 이유가 한반도와 중국 중심지역 사이에

강력한 이민족-여진, 거란, 몽골, 흉노 등-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 이민족이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반도를 침공하여 병자, 정묘호란을 일으킨 청나라의 경우도 명나라를 치기 위한 전제 작업의 성격이 짙었다. 그들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았다면 침공을 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한 것이다. 몽골족(원나라)의 경우가 예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들의 전성기 국력은 유럽은 물론 일본까지 침공할 정도로  가공할만한 것이었으니 에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역대 왕조가 우리 한반도와는 달리 베트남을 왕조가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침공했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이점을 생각했는데 이유는 두 가지일 것으로 결론내렸다.

첫째는 베트남 지역은, 더 이상 나갈 곳이 없는 한반도와 달리 베트남을 복속할 경우 다른 지역까지 넘볼 수 있다는 점.

둘째는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우리 한반도처럼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완충 역할을 해주는 강력한 이민족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지정적으로 볼 때 우리 한반도보다 훨씬  비극적인 위치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베트남 국경이 처음부터 형성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니라라 삼국시대 이전처럼 여러국가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다.


베트남의 대 중국 항쟁 중에 가장 특이한 점은 몽골의 침략도 격퇴했다는 기록이다. 몽골이 패퇴한 기록은 이집트 침공시 맘무크 왕조와의 전투,  일본 원정 정도인데 이 모두 몽골의 힘이 약해서는 아니었다. 대 맘무크전은 총력전이 아니었고 일본 침공은 자연의 방해-태풍-때문에 실패한 것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은 총력전임에도 실패한 것으로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몽골족의 세계 침공사가 새로 쓰여져야 할 기록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총체적인 소감은 책 내용은 베트남에 대한 약사여서 베트남 역사 입문서에 지나지 않지만 베트남사를 깊이 들어갈 이유가 없는 교양 수준의 내용을 알기에는 최적의 책이라는 점,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을 얻기 위해 다툼을 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나라와 관계없이 다 추악하다는 점, 이런 와중에 태어나 살다가 죽는 평범한 민중의 삶을 그저 고단하기만 하다는 점등이었다.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민중들보다는 그래도 한반도에서 태어나 살다 간 민중들이 좀 더 나은 삶이 아니었을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베트남 민중보다는 식민통치나 전쟁의 참화를 덜 겪었다는 점에서...


[참고] 이 책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국가로 전락(1884년 6월 갑신조약)하기 전까지만 다루고 있다.




[아래는 이 책에 대한 전문적인 소개 글]

 


『베트남, 중국 천년전쟁』에서 만나는 베트남의 역사는 흡사 진흙 속에 묻혀있던 보석처럼 화려하고 흥미진진하다. 진시황 이후 중국을 통일한 역대 왕조들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이로 인해 1천 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서기 938년 불타는 바익당강 위에서 독립을 쟁취했고, 다시 1천 년간 중국과 간단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강대한 외적에 맞서기 위해 베트남은 매번 민족의 모든 역량을 결집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빛나는 지혜와 지도력, 현란한 전략전술, 희생과 배신과 고뇌와 환희는 인간사의 모든 면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저자 : 오정환
저자 오정환은 전북 옥구군 성산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꿈이 고개 너머 먼짓길을

육중하게 달리던 시외버스의 차장이었으니 상상도 못했던 넓은 세상에 나와 많은 것을 보고 산 셈이다. 군산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에서 공부했다.
MBC에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편집부 정보과학부 국제부 등에서 근무했고, ‘시사매거진 2580’ 제작에도 참여했다. 해외연수자로 선발돼 유럽방송연합이 만든 스위스 I.A.B.에서 1년간 수학했다. 2007년 방콕특파원으로 부임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오세아니아 각국의 취재와 보도를 맡았다. 2011년 귀국해 100분토론 담당 부장과 보도국 사회1부장 뉴스데스크편집부장 편집1센터장 취재센터장을 거쳐 MBC 보도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글

1. 바익당강에서 끊은 천년의 사슬
1) 국가의 태동
2) 통합과 새로운 발전
3) 베트남인의 나라
4) 압제에 맞선 영웅들
5) 천년 만에 쟁취한 독립

2. 송(宋)의 거듭된 침략
1) 최초의 황제 딘보린
2) 거친 레호안과 1차 대송전쟁
(1) 레(黎) 왕조의 승리
(2)야만스럽게 보이고 싶었던 황제
3) 충직한 리트엉끼엣과 2차 대송전쟁
(1) 조심스러웠던 리(李) 왕조
(2) 중국을 침략하다
4) 크메르의 무익한 침공
5) 피가 강을 이룬 왕조교체

3. 몽골을 이기다
1) 몰려오는 전쟁의 먹구름
2) 몽골의 1차 침입, 인내의 승리
3) 몽골의 2차 침입, 기사회생
4) 몽골의 3차 침입, 대역사의 완성

4. 명(明)의 지배와 해방
1) 무너지는 왕국
2) 호(胡) 왕조의 창업과 허무한 멸망
3) 후쩐(後陳) 왕조 봉기가 실패한 이유
4) 유격전의 설계자 레러이
(!) 1차 봉기
(2) 2차 봉기
(3) 3차 봉기와 휴전협정
(4) 4차 봉기와 전국 제패
(5) 기적의 ?동-쭉동 전투
(6) 유승의 10만 대군 격퇴
(7) 지난했던 전쟁의 끝
(8) 성종(聖宗)의 황금시대

5. 청(淸)과의 전쟁
1) 남북 분열과 혼란
(1) 후레(後黎) 왕조의 몰락
(2) 막(莫) 왕조의 어둡고 짧은 역사
(3) 찡 쭈어 정권의 수립
(4) 남북의 재분열
(5) 찡 쭈어의 발전과 쇠락
(6) 응우옌 쭈어의 남진
(7)응우옌 쭈어 백성들의 고달픈 삶
2) 응우옌후에, 가난한 자의 왕
(1) 떠이썬의 청년장군
(2) 태국을 격퇴한 소아이뭇 전투
(3) 응우옌후에 왕이 되다
(4) 전격전, 청(淸)을 몰아내다

6. 힘겹게 버텼던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
1) 돌아온 지배자 응우옌푹아잉
2) 최후의 승리
3) 축복받지 못한 왕조
4) 대외 팽창
5) 막을 수 있었던 프랑스의 침략
6) 제국의 막을 내리다

7. 역사의 긴 그림자
1) 메콩델타와 캄보디아의 한(恨)
2)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중월전쟁

맺는 말




[출판사 서평]


『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중국 천년전쟁』
- 베트남 대(對) 중국 천년 항쟁의 역사를 만나다!
- 삼국지보다 재미있다!


“레러이는 지난 20년간 베트남을 식민 지배해 온 명나라 군을 하노이성 안으로 몰아넣었다. 무려 세 번이나 완전히 진압했다고 믿었던 레러이에게 오히려 절명의 위기에 놓인 명나라 군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러이는 지금까지 싸워온 베트남 반란군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먼 훗날 북베트남이 미국과 싸울 때 전범으로 삼았던 게릴라전의 창시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종전까지는 아직 큰 고비가 남아 있었다. 명나라 당대 최고 명장인 유승(柳升)이 15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다는 보고가 빗발쳤다. 레러이는 힘든 선택을 해야 했다. 하노이의 명나라 군을 먼저 공격할 것인가? 그러다 성 함락 전에 유승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역 포위를 당하게 된다. 아니면 북쪽으로 올라가 유승의 지원군을 먼저 상대할 것인가? 그러다 하노이의 명나라 군이 북상해 자신의 배후를 공격하면 패배는 불을 보듯 하였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신간『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중국 천년전쟁』에서 만나는 베트남의 역사는 흡사 진흙 속에 묻혀있던 보석처럼 화려하고 흥미진진하다. 진시황 이후 중국을 통일한 역대 왕조들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이로 인해 1천 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서기 938년 불타는 바익당강 위에서 독립을 쟁취했고, 다시 1천 년간 중국과 간단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강대한 외적에 맞서기 위해 베트남은 매번 민족의 모든 역량을 결집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빛나는 지혜와 지도력, 현란한 전략전술, 희생과 배신과 고뇌와 환희는 인간사의 모든 면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수많은 외세 침략을 극복해 온 우리의 역사도 베트남과 맥이 닿아 공감도를 높인다. 한나라와 몽골 청나라 등 우리와 싸웠던 중국 왕조들의 군대가 남쪽으로 내려가 국경을 넘을 때 베트남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비교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베트남 역사의 장대함과 높은 문명 수준을 깨닫고 혹시라도 현재의 경제 격차 때문에 가졌을 편견을 깨게 된다.
저자인 오정환 MBC 보도본부장은 베트남의 역사 가운데 전쟁사에 집중했다. 전쟁은 막아야할 비극이지만, 축적된 갈등의 결과이자 종국적인 변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역사를 살피는 것은 어느 사회의 발전 궤적을 이해하는 지름길 중 하나이다. 또한 저자는 전쟁의 역사를 숫자와 지명의 나열에서 탈피해 생생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되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승패의 결과를 넘어 그 원인을 하나하나 따졌고, 전장에 섰던 사람들의 신념과 지략 그리고 공포와 용기까지 돌아보았다.


MBC 동남아시아 특파원 출신인 저자는 베트남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본격적인 저술에만 5년 넘게 걸린 방대한 자료수집으로 서술의 정확성을 기했다. 또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는 2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해 온 경륜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저자는 수만 대군의 생사를 맡은 장군들의 피 말리는 고민을 목도하고 병사들의 함성, 칼 부딪는 소리, 말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현장에 선 종군기자의 마음으로 사건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철학을 전공하고 독학으로 이탈리아사(史)를 공부한 시오노 나나미처럼 홀로 베트남의 역사에 천착한 한 기자의 생동감 넘치는 저서가 우리 출판계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할지 독자들의 반응이 기다려진다.

『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 - 중국 천년전쟁』
중국이 압박할 때 어떻게 할까?


베트남은 작년 10월 미국 군함 두 척의 캄란 항 정박을 허용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41년 만에 미군이 다시 베트남 땅에 돌아온 것이다. 그전에 대한민국의 베트남전 참전 중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을 일부 언론들이 재조명했을 때 베트남 정부는 조용히 여론 확산을 막았다. 왜 그랬을까?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해 수십 년을 싸웠던 베트남 정부가 갑자기 외세 추종적이 된 것일까?

 
베트남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진시황 이후 중국을 통일한 역대 왕조들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이로 인해 1천 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서기 938년 불타는 바익당강 위에서 독립을 쟁취했고, 다시 1천 년간 중국과 간단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의 침략에 맞선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나라가 몽골이 그리고 명나라, 청나라가 대군을 보내 정복 야욕을 드러냈을 때 베트남은 민족의 모든 역량을 모아 맞섰다. 베트남은 살아남기 위해 전시는 물론 평화 시기에도 중국의 정세를 면밀히 살피고 항상 경계해야만 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베트남이 가장 위협을 느끼는 상대는 중국이다. 오죽하면 호치민 주석도 전황이 다급할 때조차 중국의 병력 파견 제안을 거절하며 “중국군은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우리는 최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호된 보복을 당하고 있다. 경제 협력으로 양국이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고 믿었던 우리는 놀라고 당황할 뿐이다. 중국의 실체는 무엇이고 강대국이 힘으로 우리를 옥죌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의 해답을 베트남의 오랜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은 중국의 왕조들을 적대시하지도 않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도 않았다. 중국과의 외교로 친선을 도모하고, 침략해 오면 항전하고, 종전 뒤에는 곧바로 관계 복원에 나서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신간 『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 - 중국 천년전쟁』은 그 같은 베트남의 치밀한 외교와 처절했던 항전들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듯 생생하게 되살려 내 보여준다. 저자인 오정환 MBC 보도본부장은 시간을 거슬러 가 베트남 지도자들의 민족 생존을 건 고뇌를 목도하고 병사들의 함성, 칼 부딪는 소리, 말들의 울부짖음이 가득한 전쟁터의 모습을 현장기자의 시각으로 냉철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스스로 전장에서 서서 몰려오는 적군을 바라보며 공포를 억누르는 병사들을 독려해 싸우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고비 고비 필요한 전략 전술을 고안해 이를 베트남 장군들의 실제 선택과 비교해 보는 워게임(war game)도 즐길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치열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과 교훈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힘들기로서니 몽골의 수십만 대군이 몰려오던 날 하노이 성벽 위에 선 쩐꾸옥뚜언 장군의 막막함만 하겠는가?


책속으로

본문 중에서

지금까지 장구한 베트남의 역사를 숨 가쁘게 내달리며 살펴봤다. 국가의 태동부터라면 2,700년이고 바익당강 전투에서 지긋지긋한 식민 지배를 끝낸 뒤 본격적인 대중 항쟁의 역사만도 1,000년이었다. 그 오랜 세월을 관통해 온 외적의 침략과 저항의 역사를 접하면서 또 다른 의문을 갖게 된다.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베트남을 정복하려 했으며, 국력의 차이로 보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전쟁에서 베트남은 어떻게 매번 승리할 수 있었는가?


수많은 외침을 겪어온 우리와 비교해도 베트남의 수난은 훨씬 더 깊고 잦았다. 중국에 통일 왕조가 들어서면 한반도 역시 즉시 위협에 노출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우리는 여러 번 사대교린 외교로 충돌을 피했고, 중국이 침략했을 때에도 관리들을 보내 직접 지배한 경우는 한나라 때 이후에는 없었다. 이는 우리와 베트남의 경제 및 지정학적 차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북부와 기후가 비슷한 한반도의 산물들은 대부분 중국 것과 별 차이가 없어 이를 힘들게 약탈해 수송할 필요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의 아열대 동식물과 이를 이용한 수공예품들은 중국인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호사품들이었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인 한반도는 격렬한 저항을 겪으며 직접 지배하느니 무력으로 굴복시켜 변방의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여겼지만, 중국에게 베트남은 남방으로 가는 통로이며 팽창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교두보였다. 베트남에 군대와 관리를 주둔시키면 당장 라오스와 캄보디아 참파까지 사실상 지배하에 둘 수 있고,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으로 나가는 발판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침략은 한 번의 패배로도 자칫 영구지배와 민족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위기였고, 그래서 베트남은 언제나 온 백성이 힘을 모아 기적과 같은 승리들을 일구어냈다.


예나 지금이나 베트남 사람들은 단결력이 좋다는 평을 받는다. 스스로 자신들의 민족성이 근면하고 인내하며 용감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필요할 때 공동체를 위한 희생정신으로 발현될 수 있는 미덕이다. 민족성이란 생래적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조건 속에서 형성되어 가는 것이며, 베트남 역시 그렇게 분석할 수 있다.
(...)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는 1979년 전쟁이후 상호 협력과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평화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양국 국민들의 서로에 대한 불신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며, 특히 남중국해의 황사(Ho?ng Sa, 중국어 시사 西沙, 영어 파라셀 Parace) 군도와 쯔엉사(Tr??ng Sa, 중국어 난사 南沙, 영어 스프래틀리 Spratly) 군도 등을 둘러싼 영토 분쟁은 언제라도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베트남은 강대한 중국에 맞서기 위해 가능하면 다른 적을 만들지 않고 나아가 우군으로 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십 년간 총부리를 맞대고 싸웠던 미국과 해군합동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사협력을 강화하는가 하면, 남베트남 편에서 참전했던 우리나라와도 돈독한 우호관계를 쌓아 왔다.

 
폐쇄적인 약소국으로 전락해서는 국가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감은 경제정책의 유연성으로도 나타났다. 1975년 통일 후 강력한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했던 베트남은 경제난과 심지어 아사 사태까지 벌어지자 집단농장을 철폐하고 사유재산 제도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근간으로 하는 도이모이정책을 도입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천년간 어떤 고난에도 무릎 꿇지 않고 승리를 일구어왔던 베트남이 또 어떤 모습으로 기적을 이루어낼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