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글씨 마당]♣/- 글씨(書)

5/18, 목

Bawoo 2017. 5. 18. 22:06



[

서쪽 시내 남은 비는 아직도 보슬보슬

저녁 해에 처마를 두른 단풍 그늘

늦여름에 바둑 두며 속수 생각

맑은 바람에 베개 기대고 도잠 생각

시원한 샘물 소리 옛집의 난간에 가득하고

산 빛깔의 푸름은 새 서재 발에 떨어지고

저녁 내내 옷을 풀고 단정히 앉았으니

세상에 무더위 있는 줄도 모르리.


김창집 (金昌集, 1648년(인조 26년) ∼ 1722년 5월 2일(경종 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작가이다.

자(字)는 여성(汝成), 호는 몽와(夢窩), 시호(諡號)는 충헌(忠獻)이며, 본관은 (신) 안동(安東)이다.

김창집은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다.
숙종 말년의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소론이 세자인 윤(경종)을 지지하자, 그는 노론으로서 연잉군(영조)을 지지했다. 결국 경종이 즉위했으나 경종이 자식이 없고 허약하자 이건명, 이이명, 조태채 등과 함께 노론 4대신으로서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울 것을 주장했다. 1721년(경종 1) 8월에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자, 10월에는 다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상소했다. 경종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명했다가 환수하기를 반복했고, 그에 따라 노론과 소론의 대립은 날카로워져 갔다. 같은 해에 김일경 등 소론에게 '왕권교체를 기도한 역모'를 꾸몄다고 탄핵을 받았다. 신임사화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노론의 권력기반은 무너지고, 그는 거제도로 유배되었다가 1722년 성주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1724년 영조 즉위 후 관작이 복구되었다



[미완성]





[한글 서예를 일단 중단하고 그림을 더 그리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리 중. 서예는 집중을 요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아 언제 다시 뇌건강에 지장을 줄지 모른다. 더군다나 주력해야 할 분야는 그림 쪽이다.]

'♣[그림, 글씨 마당]♣ > - 글씨(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5/22, 월   (0) 2017.05.22
5/19, 20(금, 토)  (0) 2017.05.20
5/17, 수  (0) 2017.05.17
5/16, 화  (0) 2017.05.16
5/15, 월  (0) 2017.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