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1860년 ~1880년]

[스페인-1916년 독일 잠수함 공격으로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여 사망]]Enrique Granados[엔리크 그라나도스 ]

Bawoo 2017. 8. 9. 23:02


Enrique Granados


Enrique Granados Campiña


(27 July 1867 – 24 March 1916) was a Spanish pianist and composer of classical music.[1]

His music is in a uniquely Spanish style and, as such, is representative of musical nationalism.




16세 때 피아니스트로 첫 무대에 섰으며,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민족음악의 아버지인 펠리페 페드렐에게 작곡을 배웠다. 1887년 파리에서 피아노를 공부했다.

188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일류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가 작곡한 12개의 〈스페인 춤곡 Danzas españolas〉

큰 인기를 끌었다. 1898년 그의 7개 오페라 중 첫번째 작품인 〈마리아 델 카르멘 María del Carmen〉이 발표되었다. 1900년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을 창설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피아노 학교를 세워 뛰어난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고대풍으로' 작곡한 가곡집 〈토나디야스 Tonadillas〉에는 18세기에 대한 그의 관심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토나디야). 낭만주의 양식의 피아노곡을 많이 작곡했지만, 약간 장황하고 산만한 것이 흠이었다. 걸작인 〈고예스카스 Goyescas〉(1911~13)는 고야의 그림에 대한 감상을 표현한 작품이며, 이 곡은 오페라로 개작되어 1916년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이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그가 탄 '서섹스호'가 독일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침몰하여 죽었다.[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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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알베니스, 파야와 함께 스페인 민족음악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엔리크 그라나도스는 1867년 스페인 레리다에서 출생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알베니스, 말라츠, 비디엘라 등을 배출한 바르셀로나 최고의 피아노 교사 푸욜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십 대부터 피아니스트로 일했다. 골든 라이온 극장의 후원자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한 달에 100페세타를 받았는데, 그 돈은 10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생활비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병원에 있는 카페에서 자원봉사자나 후원자들의 노래에 피아노 반주를 했으며, 엘 실료 백화점의 주인인 에두아르드 콘데의 자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1887년, 20살이던 그라나도스는 음악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재능을 높이 산 백화점 주인 콘데가 아무 조건 없이 그를 후원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콘데는 직접 그를 데리고 파리로 가서 체류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지원했다.


애초의 목적은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장티푸스에 걸리는 바람에 입학 시험을 보지 못했다. 입학 시기를 놓친 그라나도스는 음악원 교수 베리오트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다. 음악원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으나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학교 커리큘럼이나 강의 스케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리오트 교수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 내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것은 훗날 그라나도스가 자신만의 독특한 페달 기법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베리오트 밑에서 그라나도스의 연주 실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파리에서 음악가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 그라나도스는 1889년 파리 생활을 정리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4월에 리리코 극장에서 귀국 독주회를 갖고 바르셀로나에 널리 이름을 알렸다. 이때부터 전문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카탈루냐 지방은 물론, 멀리 마드리드까지 스페인 전역을 돌며 연주회를 가졌다. 1892년에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스페인 초연에 참여했으며, 1896년부터 1897년까지 벨기에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마티유 크릭붐을 비롯해 파블로 카잘스, 자크 티보, 에밀 폰 사우어, 카미유 생상스 같은 당대의 대가들과 함께 실내악을 연주했다.


1901년, 그라나도스는 피아노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이 들어오면 그동안 길들여진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학생들은 그라나도스가 이만하면 워밍업이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손가락 연습을 지겹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무조건 권위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매우 합리적인 성격의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라나도스의 피아노 아카데미는 훌륭한 피아노 학교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아카데미를 통해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많이 배출되었다.


1911년, 그라나도스는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이를 바탕으로 〈고예스카스(Goyescas)〉

라는 피아노 모음곡을 작곡했다. 이 작품이 호평을 받자 그라나도스는 3년 후 같은 제목으로 3막짜리 오페라를 만들었다. 고야의 그림에서 받은 인상을 오페라로 옮겨 놓았다는 특이한 탄생 배경 덕분에 오페라 〈고예스카스〉는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본래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될 예정이었지만, 불행히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초연이 취소되고 말았다.


1915년, 셀링이라는 기획자가 오페라 〈고예스카스〉의 뉴욕 공연을 추진했다. 그라나도스는 이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그해 11월 아내와 함께 배를 타고 뉴욕으로 갔다. 오페라 〈고예스카스〉의 뉴욕 공연은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피아니스트로서 그라나도스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 백악관의 초대를 받아 윌슨 대통령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녹음하기도 했다.

1916년 3월, 그라나도스 부부는 미국을 떠나 영국에 도착했으며, 여기서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프랑스 국영철도회사 소속인 서식스 호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넜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였는데, 불행하게도 그가 탄 배가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 이 사고로 그라나도스 부부는 물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에 참여한 스페인 성악가들이 모두 사망했다.


초기에 그라나도스는 낭만주의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슈만과 쇼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나중에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에도 심취해 섬세하고 미묘하며 그림같이 색채감이 뛰어난 작품을 썼다. 단순히 스페인 민속음악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 시적인 서정성과 섬세함을 가미해 스페인 피아노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라나도스는 작곡가로서 화성법이나 오케스트레이션에는 그다지 뛰어난 기량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피아노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 자신이 피아니스트였던 관계로 중요 작품이 대부분이 피아노곡인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1911년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한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이다. '고예스카스'란 '고야풍'이라는 뜻이다. 제1곡 〈사랑의 말〉은 듣기 좋은 연인의 말, 일종의 아첨과 같은 것이다. 제2곡 〈창가의 대화〉는 비극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제3곡 〈등불의 판당고〉에서 판당고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정열적인 춤곡으로 여기에 고야풍의 터치를 살짝 가미해 세련미와 우아함을 갖춘 춤곡이 되었다. 제4곡 〈슬픔, 또는 마하와 나이팅게일〉은 로맨틱하고 정열적인 느낌을 주는 일종의 야상곡과 같은 곡이다. 마지막에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트릴과 유동적인 아르페지오가 나온다. 제5곡 〈사랑과 죽음〉은 제목 그대로 죽을 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사무치게 그린 곡이다. 악보에 '고통 속에서 느끼는 행복을 절실하게 표현하라'라는 작곡가의 지시가 쓰여 있다. 제6곡 〈유령의 세레나데〉는 다소 빠른 곡으로, 유령이 기타 가락에 맞추어 사라지는 것을 그렸다.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가 큰 성공을 거두자 그라나도스는 여기에 힘입어 1914년 같은 제목으로 3막짜리 오페라를 만들었다. 내용은 투우사와의 결투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 애인의 품에 안겨 죽는다는 것이다. 음악은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의 유명한 멜로디를 색채적인 관현악으로 바꾸고, 활기찬 스페인 민요와 민속춤곡을 첨가해 완성했다. 이 중 〈간주곡〉이 특히 유명한데, 이 곡은 오페라가 공연되기 열흘 전에 작곡한 것이다. 스페인 춤곡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미뉴에트로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춤곡을 기품 있게 스페인풍으로 바꾸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은 첼로 독주곡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다.


〈고예스카스〉와 쌍벽을 이루는 그라나도스의 작품은 스페인 각 지방의 춤곡을 모아 놓은 《12개의 스페인 무곡집》이다. 1892년에 작곡을 시작해 1900년에 완성했다. 〈미뉴에트〉, 〈오리엔탈〉, 〈사라반드〉, 〈빌랴네스카〉, 〈안달루시아〉, 〈호타〉, 〈발렌시아나〉, 〈아스투리아나〉, 〈마주르카〉, 〈단짜 트리스테〉, 〈삼브라〉, 〈아라베스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안달루시아 지방의 춤곡이 네 곡이나 된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남부 지방을 말하며, 이 지방에서 추는 집시춤곡을 관능적인 피아노곡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 밖의 작품으로 오페라 〈마리아 델 카르멘〉, 피아노곡 〈시적인 정경〉, 교향시 〈단테〉, 성악곡 〈토냐딜랴〉 등이 있다.[출처:진회숙:음악사를 움직인 1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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