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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화 속 클래식] 스콧 힉스 감독 `샤인`

Bawoo 2014. 1. 20. 16:57

[영화 속 클래식]

스콧 힉스 감독

샤인

아민 뮬러-스탈(피터 역), 노아 테일러(청년 데이비드 역), 제프리 러쉬(성인 데이비드 역)

<샤인>은 실존 인물인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성장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난공불락의 고지와 같은 것이다. 피아노 음악의 대가인 쇼팽이나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 역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니스트로서 라흐마니노프를 거론할 때 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있다. 바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큰 그의 ‘솥뚜껑만 한 손’에 관한 얘기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체구가 아주 컸으며, 이에 걸맞게 손도 아주 컸다. 손가락을 쭉 펼치면 거의 13도까지 닿았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렇게 손이 크다는 것은 피아니스트로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피아니스트가 라흐마니노프와 같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연주하기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곡 중에 보통 사람들이 아무리 손을 활짝 펴도 짚을 수 없는 화음들이 무수히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대 사이즈의 손을 가진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손을 기준으로 작곡한 곡을 라지나 미디엄 사이즈로 연주하려니 힘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게는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엄청난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연주하는 데에 석탄 100톤을 삽으로 퍼 나르는 것과 같은 에너지가 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이다. 그렇게 노동집약적인 곡이 바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연주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연주 효과가 아주 좋은 편이다. 달콤하고 낭만적인 멜로디 사이사이에 구사되는 눈부신 테크닉, 점진적인 감정의 고양을 거쳐 화산처럼 폭발하는 클라이맥스, 기관차처럼 숨 가쁘게 휘몰아가는 피날레. 그리고 마침내 단칼처럼 내려치는 격정적인 코다. 그렇게 음악이 끝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피아니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기 위해 피아니스트는 몇 번 더 무대로 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에게 작별을 고한다. 또 다른 무대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그런데 바로 이 순간,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이 있다. 음악을 연주하면서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소진하고 그냥 쓰러져버린 사람. 영화 <샤인>의 주인공 데이비드 헬프갓이다. 데이비드 헬프갓은 호주로 건너온 폴란드 계 유태인 가정의 외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나치 치하에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는 불행을 겪었는데, 그래서 가족이 헤어지는 것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음악가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다행히 데이비드는 피아노에 남다른 소질을 갖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각종 피아노 콩쿠르를 휩쓸며 천재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유럽 최고의 음악학교인 영국의 왕립음악학교로부터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는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아버지가 격렬하게 반대한다. 가족이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아들의 성공을 원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가족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을 만한 거리 안에서의 성공이었다. 아들이 멀리 떠나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행을 감행하고, 이런 데이비드에게 아버지는 “지금 가면 다시는 못 볼 줄 알아라”라는 말을 비수처럼 꽂는다.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을 통해 이루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강압적인 요구는 결국 아들에게 정신적 강박관념을 가지게 한다.

영국 왕립음악학교에 들어간 데이비드는 세실 팍스 교수의 제자가 된다. 팍스 교수는 뇌일혈로 인해 왼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 데이비드에게서 진정한 천재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열정적으로 그를 가르친다. 영화에서 세실 팍스 교수와 데이비드가 오른손과 왼손을 나누어서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 사이에 긴밀한 유대감과 음악적인 교류가 싹트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영국 런던의 왕립음악학교 옆에는 로열 앨버트 홀이라는 유서 깊은 공연장이 있다. 데이비드는 이 로열 앨버트 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한다. 그가 준비한 오디션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어릴 때부터 언젠가는 정복해야 할 거대한 산처럼 동경해 왔던 곡이다. 데이비드가 이 곡을 결승곡으로 택했다고 하자 세실 팍스 교수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하고, 이 말에 데이비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충분히 미쳤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왼쪽] 팍스 교수는 데이비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열정적으로 그를 가르치며, 둘 사이에 음악적 유대감을 갖게 된다. [오른쪽] 영국 런던에 있는 로열 앨버트 홀은 1871년에 개관된 콘서트 홀로 다양한 문화 공연으로 ‘영국 문화의 심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마 이 곡을 연습하면서 데이비드의 신경에 손상이 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 함께 서서히 미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파국이 찾아왔다. 오디션 무대에서 온몸의 열정을 쏟아 이 곡을 연주한 후 데이비드는 그만 무대 위에서 쓰러지고 만다. 데이비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마친 후 기절해버린다.

정신분열증에 걸린 데이비드는 그 후 세상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된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방치된 채 거의 12년 동안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거의 천재를 우연히 발견한 베릴이라는 여성의 도움으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 후 데이비드는 예전의 실력을 살려 한 카페의 피아니스트로 일한다. 12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며 무의식 속에 남아 있던 손가락의 기억을 되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며 데이비드는 비로소 세상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법을 배운다.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데이비드이지만 현란한 피아노 실력으로 카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가 데이비드를 찾아온다. 잊혀진 피아노의 천재가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찾아온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기의 질문에 언제나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던 아들이 이제는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을 놓는다. 그리고는 비에 젖은 거리를 걸어 쓸쓸하게 돌아간다. 그런 아버지의 등 뒤에 데이비드는 혼잣말로 작별인사를 한다. 데이비드의 아버지는 끝내 그가 재기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는 혁신적이거나 독창적인 작곡가는 아니었다. 스크랴빈, 라벨, 버르토크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으면서도 그의 음악에는 20세기 초 유행처럼 번졌던 전통의 파괴 같은 혁신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1873년, 러시아의 오네그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과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큰 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작곡에도 흥미를 보여 17살 때부터 피아노 협주곡을 쓰기 시작했으며, 1892년에는 푸시킨의 <집시들>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 <알레코>를 교내 콩쿠르에 출품해 심사위원인 차이콥스키로부터 극찬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발표한 교향곡 1번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곡을 쓰지 못하다가 1901년,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그 후 그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자신이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그의 중요 작품은 피아노에 집중되어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끊임없는 힘과 열정, 속도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요구한다. 영화에 나오는 피아노 협주곡 3번도 그런 작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 헌정했는데, 호로비츠는 이 곡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협주곡”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러시아에 붉은 혁명이 일어났다. 대지주 출신인 라흐마니노프의 가족은 재산을 몰수당해 당장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때 마침 스웨덴 왕자가 그를 초청했다. 1917년 12월, 그는 가족과 함께 러시아를 떠나 스웨덴으로 갔다. 그리고 이듬해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1919년 말부터 4개월 동안 총 40회의 연주를 했으며, 이후 미국 땅에 정착했다.

비록 미국에 정착했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죽을 때까지 러시아인으로 살았다. 러시아 비서, 러시아 요리사, 러시아 기사를 두고 러시아 정교를 굳게 믿었다. 흔히 미국은 여러 민족의 용광로라고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미국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비록 몸은 러시아를 떠났지만 영혼은 그대로 러시아에 두고 온 것이다. 그 때문인지 미국에 있는 동안 라흐마니노프는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했다. 1927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발표했지만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그의 팬들은 불같은 열정의 새로운 협주곡을 원했지만 고향을 떠나 영혼의 힘을 잃어버린 라흐마니노프는 더 이상 그런 곡을 쓸 수 없었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그가 고향을 떠나기 전 작곡가로서 창작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에 쓴 것이다. 영화에서 팍스 교수는 이 곡을 “미치지 않고서는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고 했으며, 데이비드는 충분히 미쳐 있었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시작되고 곧 그가 피아노로 1악장의 낭만적인 주제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낭만적인 주제 선율에 그토록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점점 표현의 강도를 높여 간다. 그러다가 드디어 카덴차 부분에서 화산과 같은 열정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사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 열정에 너무나 가슴이 벅차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듣는 사람이 이 정도니 직접 연주하는 사람은 어떨까. 이 곡을 연주하면서 데이비드는 어쩌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청춘의 힘과 정열을 모두 소진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약간의 휴지가 끝나고 데이비드가 3악장의 도입부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마 이때부터 그의 신경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기 시작한 것 같다. 그의 나약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그 과도한 열정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3악장을 연주하는 동안 데이비드는 그만 정상적인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리고 만다. 손가락이 미친 듯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고 있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곧 완벽한 정적이 찾아온다. 들리는 것은 온전한 세상과 마지막으로 소통하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뿐. 이 짧은 정적은 곧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르며 폭발할 3악장의 피날레를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데이비드를 정신분열증으로 몰고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볼 때, 이 장면에서 이 곡을 연주하도록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격렬하게 몰아치는 최후의 코다를 듣고 있으면, 그 엄청난 에너지의 공급 과잉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피아노를 사랑하도록 해 봐. 피아노를 길들여. 아니면 피아노는 괴물로 변해버리지. 피아노를 길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자네가 피아노에 리드 당하게 돼.” 이 곡을 연습하면서 팍스 교수가 한 말이다. 이 말처럼 데이비드는 결국 피아노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2011년 5월 독일 베를린에서 영화 <샤인>의 실제 주인공인 호주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과 그의 아내 길리언의 모습.

미쳐버린 데이비드는 그 후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그에게는 행복한 인생의 2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나온 그는 15년 연상의 길리언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피아니스트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데이비드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영화의 감동을 연주로 재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오래전에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헬프갓의 피아노 연주회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무대 위의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매우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의 인생의 해피엔딩을 예감했다.

 

진회숙(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영화 속 클래식 2013.07.29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32637

 

Boris Giltburg - Rachmaninov Concerto No.3 in D minor Op.30

Boris Giltburg, piano

Marin Alsop, conductor

National Orchestra of Belgium

Queen Elisabeth Competition 2013

러시아의 보리스 길트부르크(1984~ )가 2013 퀸 엘리사베스 콩쿠르(Queen Elisabeth Competition)에서 우승할 때의 연주입니다. 퀸 엘리사베스 콩쿠르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이며, 벨기에 여왕 엘리사베스(1876-1965, 재위 1909-1934)을 기념하여 매해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개최됩니다.

출처 : 클래식 사랑방
글쓴이 : 라라와복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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