宴城東莊(연성동장)-崔敏童
一年又過 一年春(일년우과일년춘)한 해가 가면 다시 한 해 봄이 오는데
百歲會無百歲人(백세회무백세인)인생 백년이라지만 백년 산 사람 없다네
能向花前幾回醉(능향화전기회취)꽃 가운데서 취할 수 있는 때가 얼마나 있겠는가
十千沽酒莫辭貧(십천고주막사빈)가난을 핑계말고 만금 술이라도 마시세
영설(嶺雪)-양만리(楊萬里)
好山幸自綠嶄嶄(호산행자녹참참) : 좋은 산은 저절로 푸르고도 높아
須把輕雲護深嵐(수파경운호심람) : 구름으로 깊은 골짝 기운 살짝 메워야 겠네
天女似憐山骨瘦(천녀사련산골수) : 여신이 산등성이 앙상함을 가련히 여겨
爲縫霧縠作春衫(위봉무곡작춘삼) : 구름 비단 꿰매어 봄 적삼 만들어 입혔구나
양만리 (楊萬里, Yang Wanli)
중국 남송시대의 시인. (병). Yang Wanli. (웨). Yang Wanli. | 자는 정수, 호는 성재. 장시 성[江西省] 지수이[吉水] 출신이다. 소흥연간(1131~62)에 진사가 되었고, 일찍이 비서감을 지냈다. 성품이 강직하여 금(金)나라에 항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재상 한탁주를 위한 〈남원기 南園記〉를 지으라는 명을 거절하여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시인으로 육유·범성대·우무와 함께 '남송4대가'라고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다작 시인으로 유명한 그는 평생 동안 2만 수의 시를 지었는데 지금은 4,200여 수만이 남아 있다. 초년에 그는 강서시파를 배웠으나 중년에는 왕안석(王安石)과 만당의 시를 배웠다. 그의 시는 변화가 다채롭고 구상과 구성이 기발했으며, '대자연을 본보기로 삼는다'는 원칙으로 성재체라는 독특한 문체를 만들었다. 생기있고 자연스러운 시어를 사용했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참신하고도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풍경의 특성과 변화를 잘 포착했으며, 해학과 유머가 가득하여 당시 사람들은 '살아 있는 필치'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한때 그는 국사와 민생문제에 관한 시를 쓴 적이 있으며, 산문과 사부에도 뛰어났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천려책 千慮策〉·〈오계부 浯溪賦〉 등이 있고, 그밖에 〈성재집 誠齋集〉이 전한다.[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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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있는 아들한테 다녀오느라 월,화,수 3일은 작업 중단.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갈라진 붓으로 써보려는 노력(?). 그림은 시도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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