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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명작소설 오디오북】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ː 김연수 단편

Bawoo 2017. 9. 24. 22:30

한국명작소설 오디오북】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ː 김연수 단편  

김천 빵집에서 나고 자랐다는 작가가 김천 빵집과 점촌을 배경으로 하여 쓴 작품. 아마 작가의 체험이 녹아있는 작것이다.

[크리마스 이브에 빵집서 일하던 아가씨-게이코란 이름-가 사라진다. 케익을 판 돈을 훔쳐가지고. 주인은 아가씨가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여서 불쌍하게 생각해 데리고 있는 거로 나름 생각했다는데. 배신당한 기분인 것이다.  주인과 제빵사는 이 아가씨를 찾으러 아가씨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탄광촌으로 기차를 타고 간다. 승객기 없어 썰렁하기 그지없는 기차.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데 힘겹게 찾아간 집에는 아가씨가 사다 논 칼라테레비젼만 있을 뿐 아가씨는 없다. 제빵사는 아가씨가 미국으로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탄광일에서 쫒겨난 노인은 사택에서도 나가야 할 처지지만 갈 곳이 없다. 이를 외면하고 눈길을 헤치며 밥을 도와 가게로 향하는 주인과 제빵사는 힘이 겹다. 제빵사 어깨에는 노인 집에서 가져온 칼라테레비가 힘겹게 메워져있다. 꼭 가져와야했냐고 주인에게 계속 반문하는 모습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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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다. 이야기는 순행형으로 진행되지만 중간 중간 태식이 게이코와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부분이 나타난다. 나는 이 소설에서 게이코의 할아버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과점의 주인 김씨와 태식이 찾아 헤매는 게이코는 마지막까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게이코가 서울로 갔는지 미국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훌쩍 사라져버린 게이코가 마지막으로 찾아갔던 사람은 사택촌의 할아버지였다. 소설에서는 게이코의 할아버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외지고 외진 사택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외화가 나오는 컬러텔레비전과 단 둘이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울지 나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담담하게 사택에서도 나가라두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할아버지는 홀로 사택촌에서 얼마나 큰 외로움과 싸웠을지. 당장 장사할 밑천이 없는 김씨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꼭 그렇게 할아버지의 컬러텔레비전을 가지고 갔어야 했을까. 컬러텔레비전마저 없이 할아버지는 또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날들을 보낼까.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 없는 손녀가 종종 찾아오는 자신마저 없이 하루하루 보낼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사준 컬러텔레비전. 할아버지가 잘 모르는 외화만 자꾸 나오던 텔레비전. 소설은 김씨와 태식이 할아버지의 컬러텔레비전을 가지고 길을 떠나면서 끝이 나지만 나는 소설이 끝난 후 컬러텔레비전이 없는 할아버지의 하루가 너무나 걱정이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대목은 어릴 적 게이코가 모든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여겨 죽이려하는 까마귀를 구하던 대목이다. “(중략) 까아마귀들도 돌멩이에 맞아도 그냥 날아가요. 피가 흐르고 아파도 그래 날아가요.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유아 적에는.” (중략) “떨어진 까마귀를 밟으려고 몰려드는 아아들을 잡아당기면서 내가 말했어요. 그카지 마라. 죽이지 마라. 아아들을 잡아당겼어요. 아아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어요. 까마귀는 죽이는 것으로들 알았으니까. 그 까마귀를 가슴에 품고 산에 올라갔어요. 거기서 멀리 도망가라고,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소리쳤어요......” 게이코는 자신에게 안녕해라 이 가시나야, 안녕하라 안 카나. 가시나야, 안녕 안 카나. 엄마는 지금 간다. 안녕 안 카나.”하고 죽으러 가던 엄마에게 안녕이라고, 잘 가라고 말을 못했다는 상처가 있다. 그렇게 이유도 모르고 불쌍하게 죽은 엄마를 까마귀가 됐을 거라고 여긴다. 그래서 게이코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까마귀를 살리려했던 것이다. 안녕하라고 윽박지르는 엄마에게 놀라 안녕이라고 못해준 게이코. 마지막 가는 길에 딸의 안녕소리를 못 들은 게이코의 엄마. 그리고 게이코가 살려준 까마귀. 또 그 까마귀 얘기를 하며 엄마가 떠올라 엉엉 우는 게이코......이 모든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가슴 아프게 인상에 남는다. 소설에서 게이코의 외적 묘사는 거의 없지만 거의 죽은 까마귀를 가슴에 품고 산을 오르는 게이코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 까지 할 정도로 인상에 남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를 걷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당장 장사할 밑천을 잃은 채 게이코를 찾아 추운 겨울을 뚫고 다니는 김씨, 소원이 뭐냐고 묻는 게이코의 질문에 빨리 죽고 싶다고 답한 태식, 게이코도 게이코가 사준 컬러텔레비전도 없이 외로운 겨울을 날 할아버지, 그리고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 없는 게이코까지. 그들 모두가 외롭고 불쌍한 존재들이다. 모두 천애지각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게이코의 엄마처럼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 그 거칠고 외로운 인생길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저 세상으로 가기도 하지만 게이코도 김씨도 태식도 그저 간다. 아득하게 먼 그곳으로. 가는 길은 힘겹지만 이내 곧 눈송이가 그들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곳. 천애지각을 걷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천애고아는 아니지만 모두가 천애고아가 된 것처럼 외롭고 슬픈 그런 것이 우리내 인생이라고 말이다.

게이코가 어디로 갔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한편으로 바래본다. 천애지각 같은 인생이지만 게이코가 꿈을 찾아 갔으면 좋겠다고. 서울이든 미국이든 게이코가 편해질 수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게이코가 마저 쓰지 못한 ‘New Year’를 완성했으면 좋겠다. ‘Merry X-mas & Happy’는 남겨진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요. 그리고 행복해야 해요.’란 의미로. 나머지 게이코가 남겨두고 가지 못한 말 ‘New Year’는 오로지 게이코의 몫이 되었길 바란다. 멀리멀리 까마귀가 오지 않는 곳으로 가서 엄마와는 이제 정말로 안녕하고 게이코만의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길 바래본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게이코처럼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자살이라는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살지만 그 모든 것과 안녕하고 떠날 수 있는 용기. 그런 것이 자신의 환경이 자신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끊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나는 게이코가 분명 더 나은 삶을 향해 갔다고 믿는다. 김씨는 마지막 부분에서 게이코를 찾아가는 자신과 태식의 모습이 베들레헴 찾아가는 동방박사 같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향해 가는 동방박사처럼 그들은 게이코가 새롭게 살아갈 인생의 현장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게이코는 새롭게 탄생하는 아기 예수처럼, 자살한 엄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운수가 없었던 자신의 인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다. 그 인생길 역시 천애지각이라 해도 게이코의 의지대로, 게이코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나 역시 나만의 방식대로 또 나만의 뜻대로, 내가 걷는 길이 정말 아득히 멀고 먼 천애지각이라 할지라도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제목도, 등장인물들도 모두 참 외롭고 고달픈 느낌을 주지만 그 속에서 절대로 포기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와 힘을 느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