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戰後 출생 작가

【한국명작소설 오디오북】 강물의 대화 ː 정다일

Bawoo 2017. 8. 14. 00:52


【한국명작소설 오디오북】


 강물의 대화 ː 정다일

강물의 대화



개자리를 찾아가는 밤길은 온통 어둠뿐이다.먹빛을 겹쳐 바르고 곧 쏟아져 내릴 듯 낮게 가라앉은 하늘,그 사이로 우쑥우쑥 솟은 산줄기들이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좁은 산길을 에워싸고 있다.길로 뿌려지는 차 불빛이 어둠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다가 이내 끊어지고 만다.몇 걸음 달려가면 이내 길은먹빛의 산자락 속으로 사라졌다.실로 오랜만에 나는 어두운세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백미러는 무엇 하나 반사해내지못했다.어둠만을 담아내는 검은 거울.간혹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어느 막다른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이 일었다.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어둠 속에 20여 년 세월 저쪽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역시 밤길에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그토록 철저하게 잊으려 했던 그곳을 찾아가 무엇을 할 것인가,생각해 보면 막막할 뿐이었다.막막하기로는 여행이 될 수 없는 이 번 여정 내내 그랬다.그저 발길 닿는 대로 흐르다,한번쯤은 길 위에 선 나에게 나의 길을 묻고 싶었다.

서해안에서 시작된 여정은 남해안을 지나 동해안으로 이어졌다.포항에서부터 바닷물에 철썩이며 이어지는 7번 국도에 올라섰을 때도 나는 이번 여정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행이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서울을 떠난 지 9일이 지나고 있었다.하루가 남았다.아내는 미련 없이 이 땅을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여기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어요.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진부령을 넘어 서울로 돌아가면 아내와 약속한 열흘 안에 집에 도착할 것이다.그리고 이튿날 차를 가지러 온 처제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를 타면아내의 말대로 만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삼척항 뒤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는데,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부르르 떤다.아내였다.어디예요? 삼척? 당신,하루밖에 안 남았다는 거 알고 있죠.내일 밤 12시까지는 도착해야 되는 거 잊지 말아요.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당신,괜히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말아요.우리가 당신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해요.아내가 집어낸 엉뚱한 곳은 마하의 개자리다.아내는우리라고 말했다.나나도 더 이상 아빠를 기다리지 않아요,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아내는 항상 우리와 당신으로 나누었다.

나는 식당 문을 열다말고 되돌아선다.차문을 열자 억눌러두었던 멀미가 울컥 올라온다.길에 서서 바닷바람을 마셔본다.겨울바람에 언 비린내가 묻어있다.속이 다시 출렁인다.7번국도를 타면 통일전망대까지 바다에 젖으며 가야 한다.바닷물처럼 출렁여 흔들리며 갈 자신이 없었다.나는 삼척에서 7번 국도를 버렸다.

42번 국도를 타고 백복령을 넘었다.정선 여량에서 잠시 길을 멈추었다.오래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었다.송천과골지천이 어우러진다는 아우라지.우리는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자고 했다.강변의 민박집에서 나는 아내에게 개자리에서의 내 어린 시절과 홀로 강물에 사무쳐 울던 어머니를 이야기했다.지루한 아내는 잠을 청하며 말했다.피곤해,옛날은옛날이지 뭐.나는 밤새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뒤척였다.나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우리는 어우러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새벽을 맞았다.아우라지 강물은 그 때와 변함 없이 흐르고 있었다.아내와 나의 두 물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로 뒤섞이며 흘러보지 못했다.나는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내 기억들을 모두 털어 버리듯 마하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마하까지 이어지던 포장도로가 끊어졌다.이제부터 동강까지는 개울을 따라 자갈밭 위로 덜컹거리며 가야 한다.옛날 미탄 양조장에서 막걸리 배달차가 드나들던 길이다.하얀 고무 막걸리 통은 창리천과 동강의 합수머리인 진탄나루에서배에 실려 강 건너 마을로 배달됐다.진탄나루 뾰족바위로 올라서자 상류에서 바람이 밀려온다.차가운 강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대며 하류 쪽으로 휩쓸려 간다.상류 쪽 강가로는 아까부터 반딧불이 만한 불빛 하나가 기우뚱거리며 강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그러고 보니 진탄나루에서 문희마을쪽으로 희미한 비포장도로가 나 있다.예전엔 사람 하나 다닐만한 토끼길이 고작이었다.

내심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강을 만나면 이내 돌아서게 될것이라 짐작했다.이쯤에서 길을 접고 뒤돌아서면 늘 가슴 한켠에서 펄럭이던 그곳에 대한 회오리도 멎으리라 여겼다.그리고 개자리에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하지만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작은 불빛이 위안이 된다.상류 저 멀리로 기우뚱대며 가물거리던 불빛이 산모롱이를 돌았고,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문득 강물에 깃드는 불빛의 여운.어둠 속의 손짓처럼 희미하다.

길은 얼어 있었다.바퀴 밑에서 얼음이 버적버적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나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황새여울의 자갈밭을지난다.바퀴 밑에선 쟈그랑쟈그랑 잔자갈 부딪치는 소리가요란하다.황새여울을 지나자 협곡 사이의 무당소가 언뜻언뜻 드러난다.길에 선다는 것은 매순간 어디로 갈 것인지를,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갈등의 시간이다.회사에서 밀려나 명예퇴직을 할 때도,아내에 등 떠밀려 이민서류를 앞에 놓았을 때도,이것도 그저 일상이려니 했다.갈등의 시간 앞에 온전히 앉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불빛에 놀라 깨어난 어둠들이 뭉텅뭉텅 잘려 차창을 스치며뒤로 밀려난다.갑자기 차가 헛바퀴질을 해대며 소리를 지른다.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백운산 자락이 움찔움찔 놀란다.무당소 앞 자갈밭에 빠져 얼마쯤이나 왕왕거리며 헛바퀴질을 해댔던가.랜턴 불빛이 둔덕에서 어둠을 휘휘 내저으며 다가오고 있다.

“급할수록 조바심을 놓아야지요.”

남자가 파헤쳐진 모래밭에 마른 쑥대를 깐다.조용한 말소리와는 달리 익숙한 손놀림을 하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차에서 내린다.발을 디디자 살짝 언 모래밭 밑으로 물컹,하는 감촉이 전해온다.무당소 앞까지 가보겠다고 드문드문 자갈이 박힌 모래밭으로 차를 들이민 게 잘못이었다.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북극성을 찾아본다.북극성은 바다나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과 세상의 지루하고 번잡한 길을 떠도는 자들이 길을묻는 별이다.옆자리에 펼쳐놓은 책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남자가 그 글귀를 읽었을까? 헛바퀴질을 몇 번 해대던 차는쑥대를 짓이기며 자갈밭을 나온다.남자가 차안에서 손짓을한다.남자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자연스레 그의 손님이 될준비를 마친 느낌이다.

“여긴 막다른 길입니다.여기서 하룻밤 묵어 가시겠습니까?”나는 고개를 끄덕인다.강가 둔덕의 밭 사이로 길이 나 있다.밭은 묵정밭처럼 쑥대가 우거졌고,두어 채의 집들은 빈집인듯 불빛이 훑고 지나가기가 무섭게 깜깜해진다.

“겨울이면 민박을 치던 이들도 다 떠나고 개자리는 빈 동네가 됩니다.”

나는 그가 개자리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개자리,하고 중얼거린다.남자가 흘끔 나를 쳐다본다.빈집에서 튀어나온들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산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흐릿하다.습기가 어린 차창이 뿌옇다.개자리는 이 강줄기에서 가장 살기 좋은 텃자리다.내가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어머니는 가장 따뜻한집에서 한 세월을 보냈다.한겨울에도 개가 해바라기를 하며팔자 좋게 엎드려 낮잠을 즐긴다는 개자리에서.

“저도 민박이랍시고 명함을 걸어두었더니,사람들이 저더러개자리민박집 문씨라 부르더군요.”

개자리집은 옛날 그대로였다.호박돌로 쌓아올린 키 높은 봉당이며 울퉁불퉁한 마루며 내가 쓰던 문간방의 아궁이며.마당 한켠에 서 있던 대추나무 자리에 민박 손님을 받기 위해가건물을 들어앉힌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어머니와 살던옛날 어느 시간처럼 문간방과 안방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활활 타고 있었다.저 불 속에 사라져버린 나를 던져버릴 수있다면….내가 짜왔던 삶의 무늬 위에 엎질러진 얼룩들을 골라낼 수 있을까.겨울밤 어머니와 화롯가에 앉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감자 껍질을 까고,감자 한 개를 다 먹을 때마다손바닥을 탁탁 마주치며 미련을 털어 내던 어린 나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까?낮은 문설주에 머리를 숙이며 들어간 안방도 그대로다.군불에 익을 대로 익어 누렇게 변해버린 아랫목 장판도 옛날의그것처럼 눈에 익었다.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순간 나는 어머니가 밤참을 만드시는가 하는 헛생각에 웃음을 흘린다.벽에 걸린 투박한 괘종시계가 막 열두 시를 치기 시작하자 갑자기 낯설어져 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

“올창묵이나 차려봤는데,입에 안 맞으면 옥수수막걸리나 한 사발 하시지요.”

“조금 전에 들어오신 모양이죠?”나는 진탄나루에서 상류로 올라가던 불빛을 생각하며 묻는다.

“그랬습니다.한잔하시고 문간방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빈방에도 불을 지펴두는 모양입니다?”“가끔,봉두난발의 어수선한 마음으로 천리 먼길 헤집어 오는 손이 있지요.”

살얼음이 동동 뜨는 옥수수막걸리는 새큼하면서도 텁텁한 맛이 시원스럽게 퍼진다.그는 숟가락 가득 뜬 올챙이묵을 후르륵거리며 맛있게 먹는다.심심해서 엊그제 만들어봤는데,옛날 맛은 아닌데요.후르륵거리는 소리에 잘려나가는 그의 말은쥐어짜면 금세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처럼 젖어 있다.

여름철 옥수수가 누릿누릿 익어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올챙이묵을 쑤었다.옥수수 국수인 셈인 올챙이묵을 어머니도 올창묵이라 불렀다.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옥수수 알을 따서 맷돌에 곱게 갈았다.이어 고운 체에 밭아서 가라앉힌 앙금을 얻을 때면 허리를 펴고 등허리를 투덕이며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솥에 넣고 된죽을 쑤느라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을때까지 강물 바라보기는 그칠 줄 모른다.찬물을 그득하니 받아놓은 함지박에 구멍 숭숭 뚫린 묵틀을 걸어놓고 나서야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은 조금 가신다.야야,올창묵 먹자.니라두 실컷 먹었음 좋겠구나.느 아부진 올창묵이라믄 자다가두 벌떡 일어났다야.찰기가 거의 없는 올챙이묵은 찬물에 떨어져뚝뚝 끊어지며 올챙이가 유영하듯 가닥가닥 흔들렸다.호박나물이며 잘게 썬 김치를 소로 얹고 양념간장을 쳐도 내 그릇에서는 올챙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아버지 생각으로만드는 어머니의 올챙이묵이 나는 싫었다.올창묵은 야,그저한 숟갈 가뜩 떠 넣어도 어데 우물거릴 새가 있는 줄 아나.후르륵,후르륵 하민서 올창묵을 목구멍에 넘기구 난 다음참에 찾아드는 덤더무리한 맛을 알어야 올창묵 맛을 제대루다아는 거여.니가,언제쯤이믄 이 덤더무리한 맛을 알까.

어머니로부터 개자리집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늘 달 밝은 밤이었다.마당 한켠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대추나무에 걸린 달 그늘이 덮은 마루는 어둠침침했다.무릎을 세워턱을 고이면 어린 내 등은 새우처럼 휘었고,이미 할머니처럼 늙어버린 어머니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그런 날이면 처마밑까지 내려온 산자락은 한여름에도 겨울에나 어울릴 법한바람을 쌩쌩 날려보냈고,그바람에 물푸레나무 이파리들이 묵정밭 쑥대처럼 서걱이며 마구 흔들렸다.그런 밤이면 나는 왠지 모를 무섬증에 떨며 어머니의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따사로웠다.

“개자리….지낼만하신 가요?”“어디서 꼭 한번은 만났던 분처럼 낯이 익군요.”

가부좌로 앉은 민박집 문씨는 엉뚱한 한마디를 던져놓고는말이 없다.그는 몇 번 허허 웃었고,고개를 몇 번 갸웃거린다.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내가,이것도 괜한 질문이 되는 모양입니다,하고 겸연쩍어하자 슬몃 말꼬리를 잡는다.

“지낼만 하다 안 하다 그런 구분을 버렸습니다.그저 내 마지막 정처(定處)이려니 하는 거지요.한 십 년이 돼 가나요.처음엔 묵정밭에 흑염소를 치며 그럭저럭 살았습니다.이젠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다하는 게 옳겠지요.그동안 내대화상대라는 것이 강물이거나 그 물결이거나 그 아래 조약돌이거나 그 사이 물고기들이었으니….”

나도 이곳에서 강물과 대화하던 시절이 있었다.어둑어둑 산줄기와 물줄기를 덮어먹는 어둠이 밀려드는 저녁이면 나는강으로 내려갔다.그곳에서 어린 나는 밤새 내 곁을 스치며흘러가는 강물을,몇날 며칠 강물에 씻겨도 사라지지 않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을,그리고 쿨럭쿨럭 마른기침에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는 강의 새벽을,그것들에 홀로 사무쳐 밤을 새워울어야 하는 소쩍이의 서러움 따위를 생각했다.

매일 저녁 강에 나가 새롭게 흘러온 강물을 만났다.나는 그저녁 무렵을 좋아했다.저 강 양편의 산줄기 밑자락으로 거뭇거뭇 이내가 밀려들고,강 수면으로 하루살이가 발버둥을 치고,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시간.나는 그 시간이면 늘 어딘 가로 떠나고 싶어 강에 나가 종이배를 띄우고는 했다.어떤 날은 내 고무신까지 띄워 보냈기에 어머니가 미탄 장에 가서사온 신발을 내 발에 억지로 꿰어맞출 때까지 나는 맨발이었다.그 무렵 나는 눈치챘다.이내가 곧 어둠이 되어 강을 덮어먹는 먹장구름처럼 밀려들 때면 이 강의 저녁을 견디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한 짓이라는 것을.그 날,그러니까 어머니 곁에서 아예 사라지겠다고 처음으로 훌쩍 강을 등지던 시간도저녁쯤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어머니는 이 개자리집이 마지막거처였습니다.”

술잔을 들다 우뚝 멈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는 개자리집에서 젊은 시절부터 강을 오르내리는 뗏꾼들을 상대로 주막을 열었다.뗏목은 아우라지를 지나 조양강을 거쳐 밤이나 낮이나 떠내려왔다.뗏꾼들은 험한 황새여울을 지나가기 위해 무당소에 이르면 강변에 뗏목을 댔고,개자리주막으로 올라와 술을 청했다.좋은 시절이었다.강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마루 밑의 개도 낮술에 취해 어슬렁거리다잠들었다 했을 정도로 흥청거렸다.

뗏목의 끝물이었다.궁궐떼는 물론이고 서까래떼도 보기 어려웠던 뗏목 막바지였다.하루종일 지켜봐야 겨우 부동떼나 화목떼 서너 바닥 내려가면 그만이었다.그동안 나귀에 봇짐을싣고 부지런히 강마을을 찾아 강을 오르내리던 한 남정네가그 어름에 이 짓도 마지막이라며 개자리주막을 스쳐갔다.칠족령을 넘어 상류의 강마을 찾아간다는 그 남정네는 이튿날믿지 못할 강바람 같은 기약 하나를 떨구고 갔다.이번에는기어코 이 강의 최상류 오대산 우통수까지 다녀오겠다고 했다.그리고 한세월 개자리에서 등 붙이고 살겠다고 했다.하지만,아무리 먼 길이라 해도 한 달포면 우통수를 돌았을 터이고,또 한 달이면 강을 되짚어 내려왔을 시간이 흘렀건만 코끝도 보이지 않았다.남정네는 징용 끌려가 감감무소식인 남정네들만큼이나 돌아올 줄 몰랐다.그렇게 1년이 지나고,2년이 지났다.강에는 날마다 남정네의 소식을 묻는 물푸레나무나뭇잎배가 띄워졌다.

3년으로 접어들던 어느 보름달 밝은 밤이었다.마루 밑 누렁이가 달을 베어 물고 컹컹 짖어댔다.한 사내가 절퉁절퉁 몸을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마루에 털푸석주저앉은 사내가 다짜고짜 청했던 물 한 대접을 들이붓고는엉금엉금 기다시피 문지방을 넘었다.사내야 그 남정네가 맞건만 그 좋던 풍채는 다 어디에 떼어먹히고,머리는 쑥대머리요,걸친 것이라곤 어느 집 똥수세미요,다리 한 짝은 뒤틀린싸릿가지 모양으로 배배 꼬였다.반딧불에 글을 읽어도 좋았을 눈빛이었건만 꾸물꾸물 진물이 배어나는 눈자위엔 쉬파리만 닝닝대며 꼬여들었다.이 강의 시원이 우통수가 아닌 검용소란 말이여? 밤낮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정성이 지극했음인지,남정네는 일년을 반 토막낸 그 여름에 훠이훠이 강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그런 그가 가을 무청을 엮어 뒤꼍 바람벽에 주렁주렁 시래기를 매달아놓고는 또 길을 나서겠다고 말했다.고향 청풍에 다녀오겠다는남정네의 말은 아직 색깔 하나 변하지 않았던 무청처럼 시퍼렇게 당찬 것이 믿을 만했다.

내 맘에는 그래도 느이 아부지가 첨부텀 끝까정 애오라지 내 남정네였다야.니는 느이 아부지를 그래 빼다박았으면서두성정은 으째 그리두 다른지….어머니의 이야기는 늘 그 사람을 내 아버지로 오금박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어머니는그 남정네와의 언약을 무당소 깊은 강 밑에 갈무리해두었다.하지만 그뿐이었다.강바람을 타고 오르내린 소식 몇 점이 무당소를 회오리쳐대다가는 떠내려갔을 뿐이다.

한 뗏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소 앞에서 굿을 하던 무당이 굿판에 도취되어 스스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렸다는 무당소.어머니는 밤을 낮 삼아 무당소 기슭에 넋을 놓고 주질러앉았고,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었다.강물은 어머니의 돌팔매질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한바탕회오리바람 같은 푸념이 지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뗏목아라리를 부르며 강을 쓰다듬었고 자신을 위로했다.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금전으로 사귄 정은 잠시 잠깐이라네.우리 맺은 언약이 강물에 흘러갔나니.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나를 보세요,함께 갑시다.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무당소 황새여울에 떼를 띄워놓았네.무당소 개자리집아 술상 차려 놓게나.

내가 흥얼거리던 뗏목아라리를 따라 부르던 그의 눈빛이 먹먹해져 있다.

“충주댐 아랫마을에 살았던 때가 있었지요.저녁이면 버릇처럼 충주호에 낚싯대를 담궜습니다.간혹 낚시를 따라온 어머니가 이 아라리를 불렀지요.아버지가 부르던 소리라며.호수에 수장된 어머니와 나의 고향이 낚싯바늘을 물어줄 리도 없었건만,우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흘러간 뗏목아라리를 부르곤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나는 끔찍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의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은 뱀장어였다.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강에는 뱀장어가 많이 살았다.하지만 고향 남태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충주호에 갇힌 뱀장어는 사람 팔뚝만큼이나 살이 뒤룩뒤룩 올라 있었다.그 날,그는 낚싯대를꺾어버렸다.그 뒤부터 밤이면 지붕 위 허공 어디에선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그곳에선 살찐 뱀장어가 뒤척였다.

강에서 살던 뱀장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무려 3,000㎞나떨어진,자신이 태어났던 태평양 먼바다로 헤엄쳐 가야 한다.뱀장어는 자신의 알이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하기 위해서 칠흑의 어두운 그믐날에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최후를 맞이한다.다시 태어난 뱀장어 치어 댓닢뱀장어는 바다 물결에 실려 한반도까지 오며 실뱀장어로 바뀌어 봄이면서해와 남해로 흘러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이것이뱀장어가 가고 싶은 길이다.하지만 이 땅의 강은 이미 뱀장어의 강이 아니다.하구둑이나 수중보가 가로막고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빈 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인다.술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빈 주전자에 옥수수 막걸리를 가득 채워 들어온다.오래도록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던그가 입을 연다.

“이 강물에 어머니를 잃고,나는 정처 없는 떠돌이가 되었지요.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잃는 일입니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길을 잃을 때 길의 본질을 만나게 됩니다.나는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백척간두의 순간에 머무르고자 했습니다.잃어버린 길을 잇기 위해 동강으로 들어왔다고하면 그대의 궁금증이 조금 풀릴런지요.”

그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그 낭떠러지의 허공이 가난하게 떠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여백이 되는지를,그 여백은 정처를정하면 충만해지는지를.하지만 나는 말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내 어린 시절의 강에는 뱀장어보다 열목어(熱目魚)가 많았습니다.”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더 찬 상류로 상류로 올라가야만 하는 물고기.어린 내 친구들은 그 물고기를 엿메기라 불렀다.우리는 싸리나무 낚싯대로 고등어 만한 열목어를 낚아 올리고는 했다.그 엿메기를 잡는 날은 최고의낚시꾼이 되었다.개울 한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열목어를 낚아채다 보면 낭창낭창한 싸리나무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했고,물고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 속으로 풍덩 빠지기도 했다.그래서 물고기를 잡다가 열목어도 잡지 못하고 물에 빠지면 엿메기를 잡았냐며 놀려대기도 했다.어린 내가 어찌 열목어의 열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살다 보면 세상에는 열을올려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그래서 저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나는 이 강의개자리집에 돌아와서야 내 눈에 식혀야 할 열이 참으로 많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의 바짓가랑이에 휩쓸려온 바람에는 저 먼 북태평양베링해의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연어를 만나기 위해 남대천에 가본 적이 있는지요.10월의 남대천에는 베링해를 떠나온연어가 산란절식(産卵節食)으로 상류로 거슬러 오릅니다.섬세한 지도를 그릴 줄 아는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떠올리고,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해 낸답니다.그대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이곳까지 왔는지,그대는 어느 시절 어느 세월을 휘돌아 여기까지 거슬러 왔는지,묻지 않을 수없습니다.”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어쩌면 내 대답을 듣기 위해 청한물음이 아닐 수 있다.나는 길을 나서기 전,나침반으로 동서남북을 가늠해보고 지도를 펼쳐 길의 처음과 끝을 짚어보며준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어디서 휘어져 산모롱이를 돌아나가고 어디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하는지를 살피지 못했다.길에 서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낯선 길에서깃들 곳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가를,얼마나 서러운가를….

한강 하류에 사는 동안 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 해저녁이나 밤이면 집으로 돌아왔으며,일요일이면 밀린 빚을청산하듯 하루종일 잠을 잤으며,우리 가족은 살강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대로 지낼 만한 사이였다.그 도시에서의 20여 년은 그렇게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 즐거움과 적당한 상실감으로 흘려보낸 보낸 시간들이었다.그 시간이 얼마나 밍밍한 시간,아니 세월이었는지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이곳 개자리로부터 나는 철저히 도망치려 했으며 깨끗이 잊고 싶어했다.아내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다.아내가 딸 나나의 교육을 위해 불현듯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베링해의 물결은 지금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아내는 5년 전 캐나다로 떠난 처형네를 찾아갈 것이다.처형네 세탁소에서 한 3년 다림질을 하다 보면 이 땅에서의 기억은 다 증발될 것이다.아내는 나의 옛날을 다 증발시키고 싶어한다.나나를 위해 내일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수는 없는 거야? 아내는 나의 정처를 모른다.아내는 지금 나에게 연락할 수 없다.이곳은 핸드폰 불통 지역이다.

“어딜 가나 적응하려 애쓰는 건 정신보다 몸이 먼저지요.하지만 상처를 만나 먼저 시름에 겨워하는 것은 정신이 아닐런지요.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강물처럼 소리소문 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더군요.”

어머니는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얻은 자식 때문이었는지 멍울은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뗏목이 사라지고,남정네가 사라진 강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산자락 비탈밭을 일구기 시작했다.이 일대 밭은 모두 어머니가 화전으로 일구어냈다.밤이면 산비탈에선 파란 도깨비불이 일었다.큰물이 지는 여름이면무당소에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새 꾸르릉 꾸르릉 이무기 우는 소리가 강을 흔들어댔다.한낮에도 산그늘이 지는 무당소 뼝대에서는 뻐꾸기가 무섭다며 뻐버꾸 뻐꾹 울어댔다.뻐꾸기가 우는 여름이면 어머니는 말했다.세월처럼 무서븐 게없다드니 참말이네.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어머니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밭은 하나둘 묵정밭으로 변해갔고,개자리집에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산다는 소문으로 흉흉했다.아랫마을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밤이면 승냥이처럼 울어대는 어머니의 곡성이 강을 타고 내려가 아랫마을을 하얗게 흔들어 깨우곤 했다.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더 먼 곳으로 떠났고,어머니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당소로 걸어 들어갔다.

“강이 꽝꽝 얼었어요.누치도 잡고,보고 싶다던 무당소 밑바닥도 실컷 봐요.…,먼저 나갑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밤새워 술 마신 티가 묻어 있지 않다.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이불 속으로 묻는다.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아내는 내가 돌아가지 않아도나나의 손을 잡고 예정된 시간에 공항으로 나갈 것이다.나는 이불 속에서 머리를 흔들어본다.머릿속은 끊임없이 윙윙 울리고 있다.겨울 하늘 높이 날아올라 팽팽하게 당겨진 연줄이 우는 소리 같다.

어젯밤 그는 말했다.밤새 강이 얼 것이며,날이 새면 누치를잡으러 가자고.요즘도 1월이면 무당소는 물론이고 1㎞ 상류까지 얼어붙는다고 했다.이 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누치는100마리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올 때도 있다.지난 겨울엔 강바닥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누치떼가 올라왔다.겨울이 되면 찬물에 산란하기 위해 상류로 올라오는 것이다.얼음썰매를 타고 누치를 찾아 강을 오르내리며 이마에땀이 배어날 시간이 흘러갈 즘이면 강바닥을 뒤집는 누치떼를 만날 수 있다.도끼와 작살을 움켜쥐고 얼음 위를 질주하며 누치떼를 쫓다보면 놈들은 숨을 헐떡이며 꼼짝도 못하고강바닥에 엎드려 있다.누치는 얼음짱 아래 찬물에서 쫌만 움직여도 곧바로 뼈 가운데로 얼음이 생겨 오래 달릴 수가 없어요.누치가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을 때 도끼로 얼음을 깨고,작살로 단방에 찔러야 합니다.

그리고,그는 또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그렇다,북진나루.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그는 마당에 없다.저 아래 무당소에서 움직이는 그가 조약돌처럼 작게 보인다.개자리에 앉은 내 몸도 이제는 보호색을 띠어 강변의 자갈밭을 닮아있지 않던가요.그의 말처럼 그는 개자리에 앉아 조약돌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어젯밤 그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그도 어쩌면 슬픔 하나를 갈무리해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고 말했다.충주댐이 막히면서 청풍의 절반쯤은 물에 잠겼지요.하지만 남한강 뱃길이 있던 시절엔 제천의 중심이었습니다.서울에서 올라온 돛단배들은 소금에 절인 바닷물고기며 온갖 물건들을 그득그득 싣고북진나루로 들어왔지요.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봇짐장수였던우리 아버지는 서울 물건들을 사서 나귀에 싣고 남한강 강마을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그 강물에 아버지를 빼앗겨버린우리 어머니…,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야 말했지요.동강에 한번 가보자.느 아부지 여즉 거서 잘 살고 있는지?강은 정말 꽝꽝 얼어붙었다.그는 누치를 찾아 상류로 더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군데군데 얼음구멍을 낸 흔적이 보인다.얼음은 유리처럼 맑아 무당소의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물고기의 비늘이 얼핏 물 밖의 햇살을 받아내며 반짝 물살을 뒤집는다.그 물고기는 어머니의 하얀 버선을 닮았다.그토록 보고 싶었던 무당소의 강바닥.하지만 어제의 그 강물은 이미 떠나고,얼음장 밑으로는 오늘 지금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거울처럼 맑은 강물 위에 내 얼굴을 댔다.어머니의 유품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나를 쫓아온 댓돌만한 거울이 그랬듯 얼음거울 역시 나를 다 비추지 못한다.하지만 나는 알고있다.아무리 비춰 보아도 내 안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어린시절의 내 강물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내 몸은 메말라 있다는 것을.

나는 몸을 뒤집어 무당소에 눕는다.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그곳에서 깨알같던 점 하나가 점점 커지며 검은 불덩이로 변해 무당소로 떨어지고 있었다.내 이마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다.내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간다.곤두박질치던 그것은 무당소 바위벼랑에 다다른 순간,다시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솟구친다.교미 중인 검독수리 한 쌍이다.어머니는 무당소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던 그 해겨울,내게 말했다.언제 청풍 북진나루에 가보거라.느이 아부지 거서 여적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비틀걸음으로 상류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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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정다일’ 당선소감

오랜 나날이 흘러갔습니다.아무리 꽉 움켜쥐어도 강물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그래서 부끄럽습니다.늘 늦어서야 도착하는 나의 느림.

늘 떠나고 싶었습니다.길을 나서면 길은 참으로 많기도 했고,아득하니 하나도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들녘을 질주해보기도 했고,바짓가랑이 적시며 강을 건너기도 했습니다.도시를 떠나 산에 들어 마루금을 긋는 산줄기를 타기도 했으며,재넘이바람이 불어오는 재를 넘기도 했습니다.그곳에 닿아나는 진정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라 해야거짓이 없겠지요.

요즘도 나는 낯선 길에서 만난 떠나온 자들의 여정이 흥미롭습니다.사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길을 놓칠 때가많습니다.길의 갈피,사람살이의 갈피를 잘 읽어내지 못한 어두운 길눈 탓이겠지요.이제 길 하나 삐끔 트였으니,또 떠나야지요.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부끄러운 인사 올리고,무거운어깨 툭 쳐주시며 건넨 회초리 하나 들고 길을 나서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제 가슴의 갈피 열어 제 두발로 걸어가 닿을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의 마을’을 찾아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도 넣어두겠습니다.

내 어지러운 마음 늘 담아주는 아내여,내 두 빛돌이들아 창리천에 계신 어른들께 인사 여쭙고 먼저 동강 상류로 가보자꾸나.

◆약력

본명 정희일 1961년 강원도 평창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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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오른 작품 수는 9편이었는데,그 중4편을 제외한 나머지는 어쩌다 한 번쯤 써 본 듯한 조야한공작품들로 질적으로 현저하게 낮은 수준을 보였다.그래서우선 심사하기에는 편했지만,예심에서 탈락한 수백 편의 응모작들의 작품 수준이 그보다도 더 못했으리라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물론,이러한 현상은 요즈음 거의 모든 문예 현상모집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그렇지만,대학의 문예창작과가 대거 늘어나고,문화센터를 비롯한 많은 사설 단체들에 문예창작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등,십년전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게 일어나고 있는 문예 창작의붐을 생각하면,그 성과가 너무 빈약한 것에 실망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응모자들을 성별로 따져 보자면,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이것은 문학 창작의 붐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여자들이고,남자들은 여자세에 밀려 여성화 되고 있음을 뜻한다.물론 여성적 가치의 문학화·예술화는 여자뿐만 아니라,남자에게도 바람직하다.남자는 누구나 그 내면에 여성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특히 일상 속의 감성적 디테일을 즐겨 다루게 되는데,문제는 작품에 형상화된 감성들이 천박하고 값싸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이번에 응모한 작품들도 대부분 그러한 수준이어서안타깝다.예컨대 감성이 병든 젊은이들이 연출해내는 우울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적잖은데,너무 손쉬운 처리도 문제이지만,우선 그러한 소재의 선택 자체가 진부하고 도식적이다.소비향락 문화 속에서 마냥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저 젊은 군상 속에 그처럼 병든 자들이 있다면,무엇 때문인지 정당한해명을 위한 이성의 작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좀 과격한 이분법으로 말해서,감성과 일상의 미시 서사가 여성적인 것이라면,이성과 역사의 거시 서사는 남성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어느 한 쪽 문학만 존재하는 이러한 불구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남성적 가치들에 토대를문학이 한시 바삐 복권되어야 하겠다.

최종 후보로 오른 네 작품은 ‘쇼윈도’,‘달력’,‘여름나기’,‘강물의 대화’였다.‘쇼윈도’는 요즘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인 피어싱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다분히 엽기적이긴 하나 내용이 부실했고,치매를 앓고 있는 노파와 손녀가 한 방에 기거하며 겪는 갈등 관계를 그린 ‘달력’은 거칠어서 오히려 싱싱하고 구수한 입담이 좋았으나,이야기를 하다 만 것처럼 끝마무리가 무성의했고,‘여름나기’는 문체의 지적인 시도 자체는 격려할만 하나,지나친 언어 유희가 큰흠이었다.당선작으로 선정된 ‘강물의 대화’도 약점이 있긴 했지만,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무엇보다 자료를 별로 가공하지 않고 집어넣은 듯한 부분이 눈에 거슬렸다.그럼에도 불구하고,모태 귀환이라는 새롭지 않은 주제를 남한강의 뱃길따라 흘러 온 옛 서정과 성공적으로 어우러지게 하여 잔잔한 우수를 자아내게 하는 시적 역량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김원일·현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