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슈 만

Robert Schumann - Kreisleriana, Op. 16

Bawoo 2017. 12. 23. 23:03


Robert  Schumann

로베르트 슈만(1810~1856)

 Kreisleriana, Op. 16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환상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은 모두 8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피아노 음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슈만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다채로운 감정표현과 극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어, 슈만의 천재성이 가장 탁월하게 발현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슈만은 연인인 클라라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단숨에 음악을 써내려갔다. 겨우 나흘 만에 완성된 〈크라이슬레리아나〉는 슈만이 그 음악성을 높이 평가했던 쇼팽에게 헌정되었다.





광기어린 두 낭만주의자의 만남

〈크라이슬레리아나〉는 낭만주의 작가 호프만의 소설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에 등장하는 음악가인 요한 크라이슬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호프만은 그로테스크한 환상의 세계를 다룬 단편들로 유명한 작가로, 그의 소설은 광기와 풍자, 이중성 등의 주제를 충동적이고 급변하는 서사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 역시 조울증적인 광기를 지닌 이상적인 음악가 크라이슬러의 인생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와 뒤섞여 진행되는 이중적인 이야기구조와 변덕스러운 서사기법을 보여준다.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는 호프만의 이러한 문학적 특징을 절묘하게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형적인 성격소품 형식인 3부분 형식을 따르면서도, 대조적인 악곡의 교차와 세심한 다이내믹의 연출을 통해 호프만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E. T .A. 호프만


이중적인 자아의 투영

〈크라이슬레리아나〉가 그려내는 크라이슬러의 이야기에는 2개의 자아가 반영되어 있다. 이 작품이 그려내는 크라이슬러라는 인물은 호프만의 자아와 함께 슈만 자신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다. 자신의 내면에 두 가지 상반된 자아가 공존한다고 생각했던 슈만은, 그 두 가지 자아를 대변하는 2개의 필명을 사용했다. 슈만이 생각해낸 쾌활하고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시적이고 내향적인 오이제비우스의 성격은 조울증적인 이중성을 지닌 크라이슬러의 성격에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의 조성구조 역시 이 대조적인 두 자아를 반영하고 있다. 격렬한 광기를 보여주는 3곡, 5곡, 7곡은 g단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면, 서정적인 시정이 표현된 2곡, 4곡, 6곡은 밝은 B장조로 제시된다. 이를 통해 슈만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중적인 자아와 크라이슬러라는 인물의 환상적이면서도 광기어린 대조적 성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슈만의 피아노



작품 구성

1곡 ‘매우 빠르게(Äußerst bewegt)’

d단조의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듯한 선율로 시작되는 첫 곡은 격정적인 동경과 감미로운 환상의 세계가 교차되면서 슈만의 플로레스탄적인 열정과 오이제비우스적인 서정성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 이는 또한 예술적 격정과 환상을 오가는 크라이슬러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2곡 ‘정성을 다하여, 너무 빠르지 않게(Sehr innig und nicht zu rasch)’

〈크라이슬레리아나〉 중 가장 규모가 큰 곡으로, B장조의 행복하고 동경에 가득한 노래를 제시한다. 2개의 간주곡을 포함하는 론도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아르페지오와 당김음 리듬이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조용한 A부분에 이어지는 첫 번째 간주는 A부분의 선율을 대위법적으로 변형시킨 경쾌한 지그 풍의 음악을 펼친다. 두 번째 간주에서는 잦은 감정의 기복을 보여주면서 기이한 느낌을 자아낸다. 반음계로 하행하며 두 번째 간주가 마무리되고 다시 A부분으로 돌아온 뒤 음악을 끝맺는다.

3곡 ‘격렬하게 몰아치듯이(Sehr aufgerergt)’

g단조의 격렬한 음악이 충동적인 크라이슬러의 광기를 표현한다. 중간부분에서는 B장조로 전조되면서 황홀경에 빠진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 코데타 부분에서는 템포가 더욱 빨라지면서 광란의 장면을 연출한다.

4곡 ‘매우 느리게(Sehr langsam)’

마치 격동이 지나간 후의 체념한 상태를 표현하듯 B장조의 조용한 대위법적인 선율이 이어진다. 가장 짧은 곡이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시정을 보여준다.

5곡 ‘매우 생기 있게(Sehr lebhaft)’

g단조의 경쾌한 곡으로, 3개의 짧은 이야기가 나열되는 서사적 구성을 보여준다. 스타카토와 부점리듬이 생동감을 주면서 플로레스탄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6곡 ‘매우 느리게(Sehr langsam)’

B장조의 느린 12/8박자의 이 곡은 내성부에서 선율을 제시하면서 깊이 있는 호소력을 보여준다. 중간부분에서는 6/8박자로 변화되면서 보다 생기 있는 흐름을 보여주지만, 전반적으로 느리고 시적인 흐름으로 오이제비우스적인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7곡 ‘매우 빠르게(Sehr rasch)’

c단조의 격렬한 곡으로, 크라이슬러의 악마적인 광기를 표현하고 있다. 격정적인 16분음표의 아르페지오와 강하게 반복되는 으뜸화음이 광기를 드러내며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듯한 격렬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코다에서는 B장조의 장엄한 선율을 제시하며 기도하듯 곡을 마무리한다.

8곡 ‘빠르고 해학적으로(Schnell und spielend)’

g단조의 기이한 곡으로, 부유하는 리듬과 독특한 오스티나토 베이스가 공허한 느낌을 연출한다. 중간부분에서 어둡고 열정적인 진행으로 클라이맥스를 이룬 뒤, 소설 속에서 크라이슬러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처럼 B장조의 피아니시시모로 갑작스럽게 곡이 마무리된다. 슈만은 이 곡을 특히 좋아해서, 이후 〈교향곡 1번〉의 4악장에서 이 곡의 선율을 사용하기도 했다.


[글-이은진/출처-클래식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