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郊
- 鄭來僑
田家眞率不爲門(전가진솔불위문) 시골집 소박하게 문도 만들지 않았는데
佳木環庭淑景暄(가목환정숙경훤) 아름다운 나무들 있는 뜨락엔 맑은 햇살이 따사롭다
氷澗暗聞樵斧響(빙간암문초부향) 얼음 낀 시냇가에선 나무하는 도끼질 소리 들리고
泥蹊亂着犢蹄痕(니혜난착독제흔) 진흙길엔 송아지 발자국 어지러이 남아있다
衰年得酒知春事(쇠년득주지춘사) 늙은 나이에도 술을 보니 봄인 줄은 알아
三日看山避俗喧(삼일간산피속훤) 사흘 내내 산을 보며 세상 시끄러움 피했노라
始識郊居貧亦好(시식교거빈역호) 시골 가난살이 또한 좋은 줄 이제야 알아
潛心臥聽老農言(잠심와청노농언) 마음 가라앉히고 누워 늙은 농부 이야기 듣는다.
東郊:1.
淑景:화창한 봄의 경치 -여기서는 '맑은 햇살'이 좋을 듯
暄:따뜻할 훤
樵 :땔나무 초 ① 땔나무 ② 나무하다 ③ 나뭇군 ④ 불사르다
정내교 (鄭來僑)[1681(숙종 7) ~1757(영조 33)]
조선 후기의 문인. | 본관은 하동. 자는 윤경(潤卿), 호는 완암(浣巖). 홍세태(洪世泰)의 제자이며 고시언(高時彦)과 함께 활동했다.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시문에 능하고 거문고와 노래 솜씨가 대단해 널리 이름을 얻었다. 1705년(숙종 31) 통신사의 역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도 시로써 명성을 떨쳤다.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높아 따르는 이가 많았으며 잔치가 있으면 반드시 초청했다고 한다. 스승과 동류들의 시를 평한 글에서 그는 "위항시인의 시는 천기가 발현되어 음조와 기격(氣格)이 높으나 벼슬한 사대부들은 이런 진실을 외면하고 탐욕만 부린다"고 한탄했다.
김천택(金天澤)이 〈청구영언 靑丘永言〉을 편찬할 때 서문을 써주었는데, 거기서 그는 한시와 민간의 노래는 원래 하나였다가 분리되었다고 하여 시조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의 시세계는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며 사회를 비판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농민의 참상을 상세히 다룬 〈농가탄 農家歎〉, 가게 보는 노인의 처지를 그린 〈성환점 成歡店〉 등의 작품을 남겼다. 승문원 제술관(承文院製述官)을 지냈다. 저서로는 〈완암집〉이 전한다.[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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