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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心泉 -―忠齋 崔淑生

Bawoo 2018. 3. 25. 21:39

                            

                              聖心泉

                                                         ―忠齋  崔淑生

何以醒我心 (하이성아심) 어떻게 내 마음 깨우칠 수 있을까
澄泉皎如玉 (징천교여옥) 맑은 샘물 구슬처럼 깨끗하고
坐石風動裙 (좌석풍동군) 돌에 앉아 있으니 바람에 옷깃 펄럭이는데
挹流月盈掬 (읍류월영국) 흐르는 물 뜨니 두 손바닥에 달 가득하구나.



맑을 징 ① 맑다 ② 맑게 하다 ③ 물이 깨끗함

징천 [] 물이 맑은 샘

달빛 ① 달빛 ② 햇빛 ③ 희다 ④ 깨끗하다


動裙 : 치마를 움직임.  

月盈掬 : 달이 두 손에 뜬 물에 비침.

뜰 읍 ① 뜨다 ② 당기다 ③ 물러나다 ④ 읍하다

움킬 국① 움키다 ② 두 손바닥 ③ 단위 ④ 두 손으로 움켜 뜸

최숙생 (崔淑生)


1457(세조 3)∼1520(중종 15). 조선 중기의 문신. |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진(子眞). 호는 충재(忠齋). 최유량(崔有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저(崔渚)이고, 아버지는 최철중(崔鐵重)이며, 어머니는 이계손(李繼孫)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496년(연산군 2)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하고 수찬·지평·헌납 등을 지냈다.

1504년 응교로 있을 때 연산군이 생모에 대하여 상복을 다시 입으려 하자, 이행(李荇)과 함께 이를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그 소의 글귀가 문제되어 신계(新溪)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그해 9월에 응교로 다시 임명되었으며, 1508년(중종 3) 문신정시(文臣庭試)에서 장원하였다.

그 뒤 대사간·대사헌을 지내고, 1518년 우찬성에 올랐다. 이듬해 사은사(謝恩使)를 거절하자 파직되었고, 곧 판중추부사로 복직되었으나 이 해 기묘사화로 다시 파직되었다. 저서로는 『충재집』이 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해동잡록(海東雜錄)』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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