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盆梅―滄溪 林 泳

Bawoo 2018. 4. 14. 22:50


                      盆梅

                                                           ―滄溪  林  泳

白玉堂中樹 (백옥당중수)  백옥당 안 화분에 심겨진 매화나무에
開花近客杯 (개화근객배)  꽃 피어 가까이 앉아 있던 손님 술잔 들게 하네
滿天風雪裏 (만천풍설리)  온 하늘이 온통 눈바람 속인데
何處得夫來 (하처득부래)  이 꽃 어디에서 찾아 왔을꼬.

* 백옥당[白玉]: 관리(官吏)가 있는 관서(官署)/ 문인(文人)이 죽은 뒤에 모여산다는 백옥루(白玉樓)/

 청화직(淸華職)의 관원이 머무르는 대궐 안의 관소-홍문관

* 近客杯 : 나그네가 술을 마시는 자리에 놓여 있음










임-영 []  조선 중기의 문인ㆍ학자(1649~1696).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 사마시에 합격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헌을 지냈다. 저서에 ≪의승기(義勝記)≫, ≪창계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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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은 조선 문신으로 참판에까지 올랐다. 이이가 성립한 기호학파에 속해있었으나, 이기론에 있어서는 이이의 학설을 완전히 따르지 않고, 이황과 이이의 입장을 절충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다.
1665년 사마시, 1671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조정랑·검상·부제학·대사헌·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94년에는 대사간·개성부유수를 거쳐 부제학·참판까지 역임했다. 송시열·송준길 같은 기호학파의 대가들을 스승으로 두었고, 이기론에 있어서는 이이의 '이기불상리'에는 찬성했다. 그러나 이기양발의 입장에서 영남학파인 이황의 설에 접근하면서, 이이의 학설은 '기발이승' 하나만으로 사단·칠정을 논한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그의 '기발이승일도설'에는 반대했다. 문장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창계집> 27권이 전해진다.


임영

임영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본관은 나주.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일유(一儒)이며 어머니는 조석형(趙錫馨)의 딸이다.

이단상(李端相)·박세채의 문인이며, 윤증(尹拯)·이단하(李端夏)·남구만·조성기(趙聖期)·최석정(崔錫鼎)·김창협(金昌協)·이희조(李喜朝) 등과 교유했다. 1665년(숙종 20) 사마시, 1671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가독서를 한 뒤 이조정랑·검상·부제학·대사헌·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다. 1694년 대사간·개성부유수를 거쳐 부제학·참판 등을 역임했다.

그는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에게도 배운 기호학파에 속했으나 이기론에 있어서는 이이(李珥)의 학설을 따르지 않고 다소 다른 견해를 제시하여 이황(李滉)과 이이의 절충적인 입장을 취했다. 즉 이기양발(理氣兩發)의 입장에서 이황의 설에 접근하면서 이이의 학설은 '기발이승'(氣發理乘) 하나만으로 사단·칠정을 논한다고 하여 이의(異議)를 제기했다. 또한 이이의 학설 중에서 '이기불상리'와 '성발위정'(性發爲情) 등의 설은 받아들이면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은 반대했다.

한편 사단과 칠정에 있어서는 사람의 심(心)이 구유한 사덕의 발단(發端)을 사단이라 하고, 이(理)는 선하고 기(氣)는 혹 선하지 않다는 학설을 견지함으로써 사단 이외의 선정(善情)도 그 근원은 사단이라 했다. 또 칠정과 사단을 개괄적으로 말하면 칠정은 사단을 함께 포함하므로 대대(對待)하여 둘일 수 없으나 상대적으로 말하면 둘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주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 수산사(水山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창계집〉이 있다.[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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