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도서관 ♣/- 문학(文學)

[우리 대하소설] 남과북 - 홍성원

Bawoo 2020. 11. 13. 08:01

[소감] 내 나이 30 초반이던 1980년대 초,  KBS에서 드라마로 방영하는 걸 보면서 읽게 되었던 작품. 때마침 휴가 때와 겹쳐 저녁 무렵 단성사, 피카디리로 영화 보러 갔다가 헌책을 파는 손수레에서 발견하곤 사서-열국지와 함께- 밤을 새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읽어 볼 생각을 한 이유는 읽었다는 기억 외에는 머릿속에 남아있는 내용이 하나도 없는 데다가 최근에 마땅한 읽을거리-문학 작품-를 못 찾은데 기인한다. 처음 읽었을 당시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명작- 글  쓰는 방식에 대한 공부도 겸할 생각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초기작을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상 기억으로는 마지막 장면이 박노익 상사-드라마에선 장항선 분-가 휴전이 성립된 그 시각에 어디에선가 날아온 유탄에 목숨을 잃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마음이 몹시 아팠었다-이 작품에서는 휴전이 되고 남과 북이 서로 대치중인 상황에서 박노익 상사가 부하한테서 구입한 소련제 권총을 소제하다가 오발을 해서 상관인 한상혁 대위가 목숨을 잃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작가는 전쟁이 가져다 주는 비극을 이렇게 끝맺음해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등장 인물들을 거의 죽는 것-전사, 자살-으로 설정해 놓은 탓에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아마 합법적 폭력 수단인 전쟁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겠지만 군의관이라 후방에 있는 인물-신동렬-까지 교통사고로 실명, 양다리 절단 상태가 되어 자살하게 만들고, 이에 그의 아내-민관옥-이 뱃속에 아이까지 있는 상태에서 반 실성한 상태로 강간까지 당하는 설정은 아무리 전쟁의 비참함을 강조하는 뜻이 담겨있겠지만 너무나 가슴 아팠다. 반면 전쟁이란 혼란기를 기회로 삼아 부를 축적하고 신분 상승을 이루는 인물-특히 박한익-을 통해서는 정직하고 선량한 인간들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약삭빠르게 이용할 줄 아는 인간들이 부나 지위를 쉽게 얻게 되는 인간 사회의 속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었다.  

 

*

요즈음 남북 화해 무드가 한창인데 종전된 지 무려 66년이 지나 있는 시점이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새삼 실감나게 하는 기나긴 세월.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남과 북으로 갈라진 가족들이 결국은 왕래도 못해보고 죽고말지 않는가. 그나마 트럼프의 강공책이 먹혀들어 북한 지도층들이 종전, 화해의 길로 들어선 느낌인데 결과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한국 전쟁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이 나와 있어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읽고 볼거리들이 수 없이 많지만 이 작품 하나만 정독하면 한국 전쟁에 대하여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되리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만큼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각종 자료에 대하여 깊은 공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다만 한 가지. 북측 참전국인 중국군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는데 이는 자료를 구할 수 없는 여건상 어쩔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

아래 소개하는 책은 저자가 중국인임. 우리와는 반대 시각에서 쓰여진 작품이라 눈여겨 볼 만하다.

정전 60년… 적군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기사의 사진

 

한국전쟁(걸작 논픽션 4)(양장본 HardCover):왕수쩡 지음

중국 최고의 전쟁 논픽션 작가로 불리는 왕수쩡의 중국 혁명사 3부작 완결판이다. 각기 다른 신분의 참전자들의 다원화된 역사적 기억을 중심으로, 전쟁의 원인·결과보다는 다채로운 인물 심리 묘사와 중요 전투 및 전술이 갖는 의미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엇보다 각국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권 다툼이라는 시선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저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전쟁 속 잔인한 살육과 그것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을 범인류적 문제로 끌어온다. 이를 통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휴머니즘을 고수한다.

 
* 이런 뛰어난 작품이 절판됐는지 출판사의 책소개 자료가 안 올라와 있다. ㅠㅠ.
2020. 11. 13일 아침에 확인하니 올라와 있다.^^
===========================================================
 
[동아일보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의 글
 
처음 홍성원씨의 장편소설 ‘남과북’을 읽은 게 80년대 중반이니 서음출판사에 이어 문학사상사가 두번째로 펴낸 것이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 출간 30년 만에 완전 개작된 세번째 ‘남과북’(문학과지성사)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10여 년 전 이 소설에 빠져들어 허겁지겁 읽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우스운 것은, 소설 줄거리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데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탓에 헷갈려서 2권 읽다 다시 1권 들추고 3권 읽다 2권을 들추던 모습만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독자들로부터 비슷한 고충을 많이 들은 저자가 이번에는 각 권 말미에 주요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막상 첫권을 펼쳐드니 설경민 우효중 한상혁 모희규의 이름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6·25라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처럼 생생하고 속도감 넘치게 묘사할 수 있는 이야기꾼도 없으리라.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저자는 이 작품에서 따로 주인공을 세우지 않았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도 모호하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전쟁에서 우리 모두 희생자였다는 것을, 30명이 넘는 주요인물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1940년 4월 전쟁 발발 직전부터 휴전이 되고 두 달 후인 1953년 9월까지 전쟁상황을 무대로 한 이 작품에는 한국전쟁의 시작과 끝을 기자의 눈으로 생생하게 증언하고 고발하는 설경민, 진남포 지주의 자손으로 월남해 아버지 친구의 아들인 설경민 집에 머물게 되는 한상혁, 한상혁과 같이 월남했지만 동생의 참담한 비극을 가슴에 묻고 묵묵히 살아가는 실존적 인물 모희규, 학자이며 대지주의 아들이지만 결국 전쟁통에 거부가 되는 장사꾼 박한익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떠나는 우효중 등이 등장한다. 그밖에도 신동렬 로이킴 민관옥 박노익 변칠두 등이 크고 작은 사건으로 얽혀 들어가는 매우 복잡한 구조의 작품이다.

그러나 200자 원고지 9000매 분량이었던 것을 1만200장 분량으로 개작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문정길과 조명숙이라는 전혀 새로운 인물을 창조했다. 문정길은 황해도 은율의 자작농 집안 출신으로 일제 때 공과대학을 나온 수재.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 신학렬의 사회주의 단체 ‘북두성’에 가입하고, 나중에 정치보위부 서울지구 책임자로 활약하는 냉철한 사회주의 신봉자다. 남한 출신인 조명숙은 의전에 다니다 전쟁 중 간호사로 자원했다가 문정길을 만났고, 이들은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한다. 평생 이념적 동지관계를 유지한 두 사람은 휴전 후 위장부부로 남파된다.

저자는 “서슬 퍼런 냉전체제에서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공평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면서 “작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유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 우리에게는 북한이나 인민군 대신 북괴와 괴뢰군만 있었다. 하지만 개작을 하게 되면 꼭 넣고 싶은 인물이 문정길과 조명숙이었다. 두 사람은 냉철한 지식인이요 신념에 가득 찬 사회주의자였지만 민간인 학살 등 전쟁의 광기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인간적인 면모를 갖췄다. 이 두 사람을 넣음으로써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한 것 같다”고 말한다.

홍성원씨는 77년 이 작품으로 ‘반공문학상’을 받은 게 두고두고 가슴에 맺힌다. 반전(反戰)이라면 모를까 ‘남과북’은 절대로 반공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홍씨가 반공작가 1호로 지목됐다는 이야기를 재일동포로부터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세번째 ‘남과북’의 표지는 화가 임옥상씨의 ‘6·25후 김씨일가’(90년)라는 그림이다. 그림 속에 비어 있는 자리는 우리 가슴 한구석에 뚫린 구멍과도 같다. 소설 ‘남과북’은 이 상처를 어루만지는 대신 뿌리까지 후벼낸다. 그것이 상처를 슬쩍 덮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치유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2018. 5. 15 1차, 2020. 11. 13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