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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韋莊) - <촌거즉사(村居卽事)>

Bawoo 2018. 6. 18. 23:48



 위장(韋莊/五代前蜀),


                   <촌거즉사(村居卽事)>



年年耕與釣  鷗鳥已相依[연년경여조 구조이상의]

해마다 밭 갈고 낚시하는데, 갈매기들 벌써 서로 의지하고


砌長蒼苔厚  藤抽紫蔓肥[체장창태후 등추자만비]

섬돌 길고 파란 이끼 두터운데, 등나무 싹트고 자색 넝쿨 기름지구나


風鶯移樹囀   雨燕入樓飛[풍앵이수전 우연입루비]

바람결에 꾀꼬리는 나무를 옮겨 지저귀고, 빗속의 제비는 누각으로 날아드는데


不覺春光暮  繞籬紅杏稀[불각춘광모 요리홍행희]

봄빛이 저문 줄 깨닫지 못해, 울타리를 둘러싼 붉은 살구꽃 드물구나


가져온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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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경화수월鏡花水月| 원글보기




위장 (韋莊, Wei Chuang)[836?~910]


중국 당대 말기에서 오대(五代) 초기의 뛰어난 시인, 사(詞) 작가. (병). Wei Zhuang. (웨). Wei Chuang. | 자는 단기(端己)이며 장안(長安) 두릉(杜陵:지금의 산시 성[陝西省]) 사람이다. 한때는 집안의 명성이 대단했으나 그가 태어날 쯤에는 가세가 기울었고,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린시절을 매우 힘들게 보냈다. 그러한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881년 장안으로 가서 진사시험에 응시했으나, 때마침 황소(黃巢)가 난을 일으켜 수도를 점령하는 바람에 결국 장안에서 객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진부음 秦婦吟〉을 지었다. 이 작품은 진(秦)나라의 부녀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당시 백성들이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고통스런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위장은 이 장시(長詩)를 통해 처음으로 문명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시국이 불안했기 때문에 그는 오(吳)·초(楚) 지방을 여러 해 유랑하다가 894년에 비로소 진사가 되었다.


907년에 당이 망하자 촉(蜀)의 왕건(王建:847~918)이 그 지역을 점거하고 황제라 칭한 뒤, 국호를 전촉(前蜀:907~925)이라 했다. 위장은 전촉의 조정에서 요직을 맡아, 모든 개국의 제도를 대체로 그가 기획했다. 문학에 있어서 주요한 공헌은 사의 체제 형성에 끼친 그의 영향이다. 그의 사는 독특한 풍격을 지니고 있어서 그 이전 작가인 이상은(李商隱)·온정균(溫庭筠)과는 다르다. 이욱(李煜)과 기타 10세기 중엽의 사 작가들이 모두 위장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영향으로 인해 사는 곧 송대 서정문학 작품의 주요한 체재가 되었다.

위장의 사 작품은 현재 54수밖에 전하지 않는데, 대부분이 〈화간집 花間集〉에 수록되어 있다. 기타 시(詩) 작품은 903년 그의 동생 위애(韋靄)가 〈완화집 浣花集〉에 수록했다. 1969년 장충핑[江聰平]이 편찬한 〈위단기시교주 韋端己詩校注〉가 타이베이[臺北]에서 출판되었다.[다음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