閒 居
-姜沆
蕪菁結穗麥抽芽(무청결수맥추아) 무는 열매 맺고 보리는 싹 트며
粉蝶飛穿茄子花(분접비천가자화) 흰 나비는 가지 꽃에 날아드는데
日照疎籬荒圃凈(일조소리황포정) 성긴 울타리에 햇빛 비치니 묵은 밭 텅 비어 있어
滿園春事似田家(만원춘사사전가) 밭에 한가득인 봄갈이가 마치 농가와 같구나
穗 이삭 수
粉蝶:나비목 흰나빗과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茄子:가짓과에 속한 한해살이풀인 가지의 열매
春事① 봄 농사 ② 봄갈이
荒:묵은땅
凈:아무것
출생 | 1567(명종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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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618(광해군 10) |
국적 | 조선, 한국 |
[요약 ]
좌찬성 강희맹의 5대손이며, 강극검의 아들이다.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윤순거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인물화와 소나무를 그리는 데도 뛰어났다. 주요 저서에 <운제록>·<강감회요>·<좌씨정화>·<간양록> 등이 있다. 1593년 전주 별시문과에 급제, 정자·박사·전적을 거쳐, 공조·형조 좌랑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군량 보급에 힘쓴 그는 남원이 함락 당하자 고향인 영광에서 김상준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해 싸웠다. 영광이 함락되자 포로가 되어 일본 오쓰 성에 유폐되었는데, 이곳에서 일본의 역사·지리·관제 등을 알아내어 우리나라로 보냈다. 1600년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후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1882년 이조판서·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영광 용계사에 제향되었다.
본관은 진주. 자는 태초, 호는 수은(睡隱)·사숙재(私淑齋). 좌찬성 희맹(希孟)의 5대손이며, 극검(克儉)의 아들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93년(선조 26) 전주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정자·박사·전적을 거쳐, 공조·형조 좌랑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이광정(李光庭)의 종사관으로 군량 보급에 힘썼다. 남원이 함락당하자 고향인 영광에서 김상준(金尙寯)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하여 싸웠다. 영광이 함락되자 가족을 거느리고 해로로 탈출하려다 포로가 되어 일본 오쓰 성[大津城]에 유폐되었다.
이곳에서 이즈시 사[出石寺]의 승려 요시히토[好仁]와 친교를 맺고 그로부터 일본의 역사·지리·관제 등을 알아내어 우리나라로 보냈다. 1598년 오사카[大阪]를 거쳐 교토[京都]의 후시미 성[伏見城)으로 이송되어, 후지와라[藤原醒窩]·아카마쓰[赤松廣通] 등과 교유하면서 그들에게 학문적 영향을 주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1600년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온 후 1602년 대구교수, 1608년 순천교수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사직했다.
그뒤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윤순거(尹舜擧)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인물화와 소나무를 그리는 데도 뛰어났다. 저서에 〈운제록 雲堤錄〉·〈강감회요 綱鑑會要〉·〈좌씨정화 左氏精華〉·〈간양록〉·〈문선찬주 文選纂註〉·〈수은집〉 등이 있고, 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에 〈강항휘초 姜沆彙抄〉가 소장되어 있다.
1882년(고종 19) 이조판서·양관대제학이 추증되었으며, 영광 용계사(龍溪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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