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野興-高尙顔

Bawoo 2018. 8. 18. 22:14


                                    野 興


                                                                   -高尙顔


門前稻熟堪爲飯(문전도숙감위반) 문 앞엔 벼 익어 먹을 만하고

舍後綿開可作衣(사후면개가작의) 집 뒤엔 목화 피어 옷 지을만 하구나

午睡正甘風榻上(오수정감풍탑상) 낮잠 들자 바로 기분 좋은 바람 평상 위로 불어오고

兒童忽報打魚歸(아동홀보타어귀) 아이는 문득 물고기 잡아 돌아왔다 알린다


걸상 탑 ① 걸상 ② 베의 이름 ③ 임금의 의자 ④ 길고 좁게 만든 평상



  • 고상안 (사물(思勿), 태촌(泰村))

    1553년(명종 8)∼1623년(인조 1). 조선 중기의 학자.

  • |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사물(思勿), 호는 태촌(泰村). 할아버지는 충순위증판결사고극공(高克恭)이며, 아버지는 증 한성우윤고천우(高天佑)다. 어머니는 신천 강씨(信川康氏) 습독 강희언(康希彦)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76년(선조 9)에 문과에 올라 함창현감·풍기군수 등을 지냈다. 40세 되던 해인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침입하자,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어 큰 공을 세웠다.

    49세인 1601년(선조 34) 이후지례현감·함양군수를 지냈고, 이덕형(李德馨)·이순신(李舜臣) 등과의

    서사 기록(書事記錄)도 남긴 바 있다. 그 뒤 울산판관을 지낸 후,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 생활을 하였다.


  • 문집으로 1898년(고종 15)에 간행한 목판본 6권 3책이 전한다. 그 가운데 행장(行狀)에 보면 농사에 밝고 문장이 능하며, 농군을 가르치고 농사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학계에서는 현전하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그의 작품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는 문집인 『태촌집(泰村集)』에 「농가월령」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이후 농경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 문집의 행장에 기록되어있어, 「농가월령가」는 고상안과 관련이 깊으리라는 짐작에서 연유된 것이다.

  • 그 밖에 그의 문집에는 총화(叢話)·여화(餘話)에 해당되는 「효빈잡기(効嬪雜記)」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유성룡(柳成龍)에게 올린 팔책(八策)과 유합(類合), 『해동운부군옥(海東韻府群玉)』에 대한 기록과 풍속·전설에 관한 기록 등이 전해지고 있어 일반 문집에 비해 이색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점을 종합하여 볼 때, 「농가월령가」의 나타난 계절 감각, 영농 내용 등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까닭에, 학계에서는 그가 「농가월령가」의 작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집으로 『태촌집』이 있다.


    참고문헌

  • 「농가월령가해제」(박성의, 『한국고전문학대계』7, 민중서관, 1974)

    「농가월령고」(홍재휴, 『동양문화』6·7합병호, 영남대학교, 1968)

    태촌집독태촌집후」(방종현, 『한글』1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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