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田家樂- 高聖謙

Bawoo 2018. 8. 19. 22:11




                                            田家樂

                                                                          -高聖謙


晩秋新雨百忙犁(만추신우백망려) 늦가을에 비 내리니 밭 갈기 바빠

掃送全家饁水西(소송전가엽수서) 온 식구 모두 들에서 밥 먹네

盡日柴扉人不見(진일시비인불견) 종일토록 사립문에 사람 보이지 않는데

一鳩啼歇一鳩啼(일구제헐일구제) 한 비둘기 울다 그치니 다른 비둘기가 운다


백망 [] 매우 바쁨

쟁기 려, 얼룩소 리, 떨 류(다른 표현: 밭 갈 리, 밭 갈 려)

들밥 ① 들밥 ② 들밥 내 가다 ③ 들에서 먹는 밥 ④ 들에 밥을 내 감









  • 1810(순조 10)∼1886(고종 23). 조선 후기의 학자.

  • |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치희(穉希), 호는 녹리(甪里). 아버지는 고몽찬(高夢贊)이며,

  • 어머니는 청주정씨(淸州鄭氏)로 정내성(鄭來成)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  

    1844년(헌종 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정필규(鄭必奎)의 수제자였던 아버지로부터 가학(家學)을 이어받아 사서오경은 물론, 음양·성력(星曆)·하락(河洛)·율려(律呂) 등에까지 통달하였다. 1850년(철종 1) 청량정사강회(淸凉精舍講會)에 나가 재사의 이름을 얻었다.


  • 1855년이휘병(李彙炳)과 함께 상경하여 장헌세자(莊憲世子)의 추존을 청하는 소를 올렸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조신(朝臣)들이 국문(鞫問)할 것을 주장하자 수천 명의 소유(疏儒)들이 사태가 위급함에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혼자 굳건한 기상을 보여 세인의 기림을 받기도 하였다.


  • 만년에는 나라의 정세가 날로 기울어져 가자, 향리인 경상도 상주에 은거한 채 선대의 유집 등을 간행하면서 지냈다. 경사(經史)에 두루 해박하고, 특히 악부체 시가에 능하였다.


  • 「한성악부(漢城樂府)」 28장을 비롯하여 그가 남긴 수많은 악부사(樂府詞)는 모두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저서로 『녹리문집(甪里文集)』 14권 7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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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녹리문집(甪里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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