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 - 정한론으로 일본 극우파의 사상적·지리적 기반을 읽다
[소감- 보류. ㅠㅠ.]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아베 총리의 선거구, 인구 150만도 안 되는 변방 야마구치현에서 총리가 9명이나 배출됐다.
그 야마구치현의 옛 이름은 조슈번이고, 이곳 출신의 우파 정치가들은 지난 150년간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좌지우지해왔다. 격동기의 일본에서 내우외환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거론됐던 ‘사상’인 정한론은 어떻게 국가정책으로 채택되며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됐고, 전후의 조슈 출신 정치가들은 어떻게 ‘친한파’를 자처하며 한일 관계를 이끌 수 있었을까? 한중일 외교사 150년을 톺아보며 과거 조일 관계가 어떻게 시작부터 어긋났는지, 현재 한일 관계와 어떻게 닮았는지, 그 치열한 외교전의 진실을 파헤치고 한반도 미래 전략을 제시한다.
저자 : 하종문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일본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일본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연구해왔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연구위원, 역사비평 편집위원, 도쿄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특임교수, 국사편찬위원회 감수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천황제와 민주주의, 국가와 국민, 일본군 ‘위안부’, 역사교과서, 독도와 같은 한일 관계의 쟁점에 관해 20여 년 동안 여러 논문과 잡지 기고로 의견을 제시해왔다.
저서로 《근현대 일본정치사》, 《화해와 반성을 위한 동아시아 역사인식》, 《한중일 역사인식과 일본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 《일본 우익의 어제와 오늘》,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1~2》,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과 한일관계》(이상 공저), 번역서로 《일본 그 국가·민족·국민》, 《일본인의 전쟁관》,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이상 공역), 《20세기 일본의 역사학》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1부 요시다 쇼인, 혁명으로서의 정한을 외치다
우경화의 기원,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
정한론의 선구자 요시다 쇼인
2부 정한론, 사상에서 정책으로 진화하다
왕정복고
기도 다카요시와 정한론
정한론의 국책화
조청일 관계로서의 정한론
정한론 정변과 타이완 침공
정한론과 조일수호조규
정한론을 반대한 사람들
3부 청일전쟁으로 정한론을 완성하다
청일전쟁 뒤집어보기
조선과 류큐, 속국과 독립국의 갈림길
임오군란과 조청일 관계
조선 중립화론과 청프전쟁
갑신정변과 조청일 관계
청일전쟁과 정한론의 부활
청일전쟁 이외의 길
4부 일본 보수의 과거와 현재
한일 외교, 일본의 잘못된 선택
아베 신조와 한중일 관계
맺음말
미주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일본의 보수가 한국의 진보에 친북 또는 친중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원에는 동북아시아 지정학을 염두에 두면서도 19세기에 기원을 둔 한일 관계의 프로토콜, 바로 정한론이 있다. 제국 일본은 조선이 자주지방(自主之邦)임을 천명한 조일수호조규를 짓밟고 식민지로 삼았다. 동북아시아에서 메이지유신 및 근대화와 직결되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역사관이 자리 잡지 못하면, 일본은 한 세기 전에 저지른 침략주의의 전철을 또다시 저지를지도 모른다. (8~9쪽)
현재 한중일이 엮어내는 ‘삼국지’ 드라마는 15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기 말 일본은 러시아의 위협을 개재시켜 갈고닦은 조선 침략론을 감춘 채 청과 전쟁을 벌였으며, 21세기가 돼서는 중국 팽창을 억제하는 방편이라며 한미일 동맹을 우리에게 밀어붙인다. 조선이 개국하지 않겠다는데 왜 일본은 무력을 동원해 개국을 강요했나? 어떻게 자신의 안보를 앞세워 타국의 독립에 간섭할 수 있나? 이 물음은 21세기의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도 또렷하게 생동감을 갖는다. (10쪽)
실재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진구 황후를 불러오고, 신화에 지나지 않는 삼한 정복을 ‘역사적 사실’로 각색했다. 또한, 근세 말 홋카이도와 류큐가 유린되는 ‘국위의 쇠퇴’는 바로 ‘무’를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천황은 7세기 후반 격동기를 맞은 동아시아 정세를 배경으로 탄생했고, 19세기 중반의 위기 국면에서 다시금 호출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경세가 쇼인은 신화적인 과거사를 재음미하고 전면 수용함으로써 내우외환의 해결책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역사 속에서 한반도를 ‘섭복’케 했던 천황의 찬란한 발자취였다. 서구의 압박이라는 위기를 벗어나고 새로운 일본의 미래를 열어갈 해법은 ‘국체’의 재발견 곧 ‘존왕’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4~25쪽)
이렇게 보면 쇼인은 내우외환 극복의 전략을 정한론과 결부함으로써 왕정복고 곧 메이지유신으로 나아가는 이론의 싹을 틔웠다고 봐야 한다. 재해석된 ‘고대’는 다가올 ‘근대’를 창출하는 변혁론의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고, 메이지유신 후에도 ‘조공’을 바쳤던 조선을 거듭 들먹이며 한반도 강점(?占)까지 논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본에서 탄생한 제국주의의 한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산업혁명 또는 자본주의 발전의 보완재로서 식민지 획득을 추구했던 서양 제국주의와 달리, 일본은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우월 의식이라는 계기와 동인을 출발부터 내재했다. 이는 아베 정권의 집요한 역사수정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29쪽)
기도의 정한론에는 쓰시마번 또는 오시마와의 교류라는 측면 말고도 독자적인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신정부의 정략이고 다른 하나는 메이지유신의 대의명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략이란 무진전쟁이라는 내전의 수행 및 뒤처리와 정한론이 맞물린다는 부분을 가리키며, 왕정복고라는 정변은 원래부터 명분의 차원에서 정한론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 둘은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55쪽)
위 문장의 요체는 신화적 정한론에 만국공법을 결합하려는 큰 그림을 구체화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외무성은 만국공법과 안보의 관점에 따라 답보 상태인 조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타개책을 끌어내려 했다. 방향은 두 가지였다.
먼저 ‘10월 방침’은 쓰시마번을 조일 외교에서 축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기유약조는 만국공법에 비춰보면 조약이 아니었으며, 쓰시마번의 관리가 담당하던 전통적인 조일 통교는 ‘외교’가 아닌 ‘사교’로 폄하됐다. 앞서 기도의 관점에서도 드러났듯 교린 관계의 승계가 아닌 파기를 천명한 것이었으며, 이는 에도막부를 무너뜨림으로써 탄생한 유신 정부의 필연적인 선택지였다.
뒤이어 차용되는 것은 ‘늑대’로까지 악평하는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열강과의 국제 관계라는 맥락이다. 러시아를 지목한 안보관에 따르면 ‘강국’의 조선 선점은 일본의 ‘대해’로 받아들여졌다. 신정부의 과제는 과거의 ‘친정’과 ‘번속’을 뛰어넘어 조선의 ‘국맥을 보존’하는 것으로 설정했으며, 일본 스스로 조선의 ‘공법을 유지하고 구원하며 다스리는 임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주관적인 해법으로 이어진다. 70년 뒤 진주만 기습 공격을 자존 자위의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덧칠하는 발상의 원형이 여기에서도 보인다. (64쪽)
한 연구자는 19세기 후반 일본의 관점에서 조선·류큐·타이완 문제는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로 곧바로 파급되는 연관 구조를 지녔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그 점에서 타이완 출병은 류큐 병합의 최대 분기점이 됐다. 청이 출병을 의거로 인정한 것은 류큐인이 일본인이라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신정부는 류큐에게 청에 조공을 바치지 말라고 명령했고, 1879년 오키나와현으로 편입했다. 1877년 초대 일본 공사로 부임한 하여장(何如璋, 1838-1891)은 류큐가 망하면 조선에 화가 미치며 타이완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의견을 이홍장과 총리아문에 전달했다. 현실은 그의 예언대로 이뤄졌다.
또한, 오쿠보는 베이징에서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청에게는 자국 영토인 타이완에 상륙한 일본군을 물리칠 대항 수단이 빈약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듬해부터 군사적인 정한을 염두에 둔 외교적 강경책이 조선과 교섭하는 과정에서 펼쳐졌고, 류큐에 대한 침탈은 한층 노골화됐다. 그런 면에서 타이완 침공은 청일수호조규 제1조를 사문화하는 제1보이면서 조선과 류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실질적인 변곡점이었다.
일본을 끌어들여 구미에 맞설 협력자로 삼고자 했던 이홍장은 탄식했다. “구미는 아무리 강해도 저 멀리 있지만, 일본은 문밖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 중국 영원의 대환(大患)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이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삼고 군비를 확장하는 것을 두고 일본의 연구자는 “여기에서 청일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00~101쪽)
류큐 문제에 관한 청의 응집력은 청프전쟁의 발발 이후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홍장은 류큐를 ‘소사’로 여기면서까지 청일 제휴를 모색했으나 조정의 승인이라는 난관을 돌파하기는 어려웠다. 류큐의 포기는 곧 책봉 이념의 포기와 직결하는 만큼, 조선과 베트남까지 얽혀 있는 대외 관계의 큰 재편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실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청 스스로 마련하지 못한 변화의 계기는 전쟁 중이던 베트남이 아닌 조선에서 날아들었다. (202~203쪽)
1904년 3월 20일 이토는 고종을 알현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러일전쟁에 임하는 일본의 정당성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국가가 존립하려면 고유한 풍습과 습관 등을 고치든지 버리든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 30 여 년 동안 이런 생각에 서서 자립을 추진한 결과, 오늘의 일본이 있습니다”라고 서두를 꺼낸 뒤에 완고한 배외주의가 나라를 망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 다음 아래와 같이 덧붙여 말했다.
무력으로 끊임없이 확장을 꾀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싸워야 합니다. (……) 황제 폐하께서 이런 이치를 이해하고 일본과 존망을 같이하며 동양 평화의 유지에 협력하신다면 일본은 전폭적인 동정을 표명하며, 결코 한국의 산하를 흉포한 나라가 차지하지 못하도록 일본 자체의 존망과 마찬가지로 아픔과 가려움을 같이하고 한몸이 돼 폭거에 대응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한일 양국의 관계는 형제와 같아 서로 안위존망을 같이하며 난관을 헤쳐나갈 것입니다. 그러려면 양국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고 용왕분진勇往奮進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무력으로 끊임없이 확장을 꾀하는 나라’나 ‘흉포한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일본으로 바꿔 읽어야 본질이 드러난다. (276쪽)
150년 전 근대화 문턱에 섰을 때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남북 분단이나 중국의 대두, 미국의 존재감 등이 새로운 변수지만, 한중일 관계의 틀과 동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근대의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해묵고도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바로 한반도 중립화다.
중립은 고립이 아니고 소통이다. 평화와 공존을 발신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일본의 보수는 왜 한국 중립화 논의를 친중 (또는 친북) 정책으로 치부하는가? 중립화에는 현금의 동북아시아 지정학을 염두에 두면서도 19세기에서 발원하는 한중일 관계의 프로토콜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배층은 한반도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드는 어떤 사태도 원하지 않으며 훼방하려 한다. 남북의 화해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근대 이후 최강의 국력을 보유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중립의 의미를 상상하고 현재화해 실현하려는 구체적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 (325~326쪽)
출판사서평
일본 제국은 극우파의 한국 정벌론(정한론)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한 ‘정한론’은
어떻게 태어났고 왜 되살아나는가?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벌써 55년이 지났지만, 한일 관계는 좋아지기는커녕 갈등의 골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최근에는 대법원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수출 규제, 지소미아 종료 문제와 ‘위안부’ 문제로 한일 외교가 악화일로에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재 불거진 한일 역사 문제가 모두 55년 전 한일협정에서 비롯한 문제이고, 한일협정 체결을 주도했던 기시 노부스케와 현재의 아베 신조 총리가 외할아버지와 외손자 관계라는 사실이다.
또한 둘은 단지 핏줄로만 이어진 게 아니라, 150년 동안 일본 극우 정치의 산실이었던 야마구치현(조슈번)이라는 지리적·정치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야마구치현 출신의 극우 정치가들은 ‘정한론’을 국가정책으로 만들어 제국주의 일본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게 했고,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수많은 희생과 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을 낳았다. 그런 그들이 ‘조슈벌(閥)’이라는 극우 정치 파벌을 형성한 근거지가 바로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라는 학당이었다. 바로 이곳이 ‘정한론’이라는 사상을 다듬어 나간 곳이고, 정한론을 단지 사상이 아니라 국가정책으로 만들었던 일본의 극우 정치가들을 키워낸 곳이다.
한일 갈등, 아니 한중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면 요시다 쇼인에서부터 시작하는 정한론의 뿌리를 파헤쳐야 한다. 근대에 이르러 고종의 조선과 메이치 천황의 일본이 새롭게 맺은 한일 관계가 시작부터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정한론이라는 사상을 정책으로 밀어붙인 조슈-쇼카손주쿠 출신 정치가들이 일본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이고, 그 극우 정치의 계보는 최초의 일본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에서 전후의 우파 정치 구도를 만든 기시 노부스케, 그의 동생 사토 에이사쿠를 거쳐 현재의 아베 총리로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페리 함대가 일본의 개항을 요구해왔던 1853년, 조슈번에서 요시다 쇼인이라는 젊은 학자가 서양의 병학(兵學)을 배우려 밀항을 시도하다가 실패해 감옥에 갇혔다. 쇼인은 풀려난 뒤 ‘쇼카손주쿠’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일본 제국 헌법의 기틀을 마련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제국주의 일본의 정책을 좌우했던 많은 인물을 양성했다. 아베 총리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꼽기도 했을 정도다.
이처럼 근대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쇼인이 내세운 ‘사상’이 바로 정한론이다. 서양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정하고 러시아를 비롯한 제국의 침략에 맞서 일본을 지키려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다만 서양과 일본이 침략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보인 차이는, 침략의 사상적 기반을 서양처럼 제국주의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진구 황후의 삼한 정복이라는 ‘신화’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한론은 단순히 ‘신화’에서 출발한 이데올로기로 남아 있지 않고, 제국 일본이 가장 먼저 내세워야 할 ‘국가정책...’으로까지 발전한다. 주류 보수파와 극우파의 갈등이 이어지던 중에 쇼인의 제자들은 조선을 청나라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으로 만들려 하면서 청나라의 개입을 막고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작업을 이어갔다. 여기서 저자는 청의 주변부였던 베트남, 타이완, 류큐 등을 둘러싼 청일 관계의 변천을 살피며 조선에 대한 청일 양국의 갈등과 외교전,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다른 청일전쟁의 경과를 분석하고, 정한론에 대한 일본 내부의 정치적 알력과 정책 변화의 이면을 읽어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청일 양국과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서양 각국의 국제정치 흐름을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조선의 국제법적 위치를 악용함으로써 어떻게 일본이 조선을 계획적으로 정복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조선과 청의 관계를 떼어내려는 시도였던 조선 중립화,
기시 노부스케의 한반도 중립화로 이어지다
조선을 청에게서 떼어내어 독립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정한론이었다면, 일본의 조선 독립국화 과정에서 등장한 ‘조선 중립화론’은 러시아의 조선 침략을 핑계로 삼아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청과 일본이 동등하게 가져가려는 일본의 전략이었다. 일본과 청이 손잡고 영국·프랑스·독일과 연합함으로써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어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려는 것이 중립화론의 골자였다. 청이 류큐와 베트남 및 타이완, 신장 지역의 문제로 곤란하던 차에 일본은 청에게 조선을 공동으로 ‘보호’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청과 일본은 서로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자 서양 각국과 조선의 수교를 추진했다.
이는 1950년대 기시 노부스케가 한반도 중립화를 구상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19세기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합법적 발판으로 강화도조약과 톈진조약을 거쳐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조약까지 추진했다면, 20세기에도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고 경제적 이익과 안보를 지키려 한국을 중립화하려 했다. 여기에 더해 기시 노부스케는 헌법을 개정하고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미국의 보호로부터 자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베는 ‘아시아주의’를 주장했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와 달리 군사 대국화, 우경화로 나아가려는 의도에서 헌법을 개정하려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아베의 개헌이 ‘21세기 정한론’일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현재의 한중일 관계가 150년 전 조청일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는 통찰을 역사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19세기에 등장했던 조선 중립화론과 20세기의 한반도 중립화론, 그리고 21세기의 한반도 중립화론을 각각 분석하고 현재 우리가 중국의 부상이나 주한미군의 향방을 고려하며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써 남북 화해와 함께 “근대 이후 최강의 국력을 보유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중립의 의미를 상상하고 현재화해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일본이 내세운 19세기의 조선 중립화론은 청과 서양 열강이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게 하고 특정 국가의 속국이나 영향권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명문화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키우려던 시도였다. 그와 달리, 20세기의 한반도 중립화론은 냉전 구도 안에서 분단된 한반도 전역과 무역 관계를 확보하고 미국의 한국 원조에 따른 수익에 더해 중국의 UN 가입에 일조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일본이 아닌) 우리가 한반도 중립화를 주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진보 세력이 주장하듯, 중립화는 통일 문제 및 주한(주일) 미군 철수 문제와 엮여 있다. 일본은 19세기 조선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것처럼 21세기 통일 한반도가 다시금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일본의 지배층은 한반도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드는 어떤 사태도 원하지 않으며 훼방하려 한다”라고 지적한다. 일본의 속내는 “센카쿠열도와 쓰시마라는 2개의 전선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이 분단 해소를 위해 대국의 힘을 배제하고 중립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지금, 우리가 ‘21세기 정한론’에 맞서는 법으로 ‘한반도 중립화’ 실현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정한론의 태동과 국가정책으로의 채택,
청일전쟁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21세기 일본 정치에 여전히 드리워진 정한론의 그림자를 추적하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요시다 쇼인이 서양의 우위를 절감하며 일본의 국력을 신장하는 방법으로써 ‘정한론’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쇼인이 죽은 뒤 그 제자였던 기도 다카요시는 울릉도를 침략한다는 구체적 실행안까지 제시했으나, 조선과 막번 체제의 일본이 서로 인정한 강역 획정을 무너뜨릴 수 없는 근본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2부는 메이지유신으로 왕정복고와 폐번치현이 이뤄지며 쇼인의 제자들이 신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정한론을 일본의 국가정책으로 밀어붙이게 되는 과정과 일본·러시아 영토 분쟁, 청일수호조규, 류큐 병합, 타이완 침공 등 국제 문제들을 거치면서 “국내 정치든 국제 관계든 조선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구상되고 실현”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의 사정을 들여다본다. 또한, 내치 우선론자와 정한론자가 맞서던 일본 국내의 상황 속에서 강화도사건과 강화도조약까지 이르는 과정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및 동학농민전쟁을 거치며 일본이 조선에 친일 정권을 안착시키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청일전쟁이라는 무력 동원을 통해 청과 서양 열강의 조선에 대한 간섭을 차단하는 데 성공하는 과정을 그려 보인다. 일본은 자신들이 정한에 필요한 군사력을 갖추기 전까지, 베트남·류큐·타이완 등 속방 문제로 발목 잡혀 있던 청을 견제하고 정한에 필요한 밑그림을 그려나가며 착실히 청일전쟁을 준비했고, 마침내 전쟁에서 이김으로써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4부는 A급 전범이었던 인물들이 ‘친미’와 ‘반공’을 등에 업고 정·재계를 다시 장악하면서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고 한국과 일본의 보수가 유착하며 한일협정을 추진한 상황을 짚고, 일본 정치 명문가의 일원이자 극우파의 ‘프린스’로 대두된 아베 신조 총리가 어떻게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장악력을 유지하려 하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책의 결론에서 제시된 ‘한반도 중립화’는, 냉각기로 돌아선 한일 관계의 미래와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강대국의 패권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통일과 평화를 앞당길 유일한 대책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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