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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추리 소설 『용의자 X의 헌신』.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양억관이 자신의 번역을 대폭 손질해 원작이 지닌 문학적 향기와 감동을 오롯이 되살려냈다. 일본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여 지는 잔혹함이나 엽기 호러가 아닌 사랑과 헌신이라는 고전적이며 낭만적인 테마를 미로처럼 섬세하게 엮어낸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했다.
도쿄 에도가와 인근 한 연립 주택에서 중년 남자가 모녀에 의해 살해된다. 숨진 남자는 도가시. 한때 술집 호스티스였으나 지금은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면서 첫 남편 사이에 낳은 딸 마사토를 키우고 있는 여자, 하나오카 야스코의 이혼한 두 번째 남편이다. 돈을 갈취하기 위해 찾아와 폭력을 휘두르는 그를 모녀가 우발적으로 목 졸라 살해하고, 우연히 사건을 눈치 채게 된 옆집 사는 고등학교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다.
마음속으로 야스코를 깊이 사모해 왔던 이시가미는 완전범죄 만들기에 나서게 된다. 대학 시절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그는 빈틈없는 알리바이를 만들고, 경찰 심문에 대응하는 요령까지 모녀에게 세세히 지시하여 경찰의 수사를 혼선에 빠뜨린다. 사건 다음날,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중년 남자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경찰은 그것이 도가시의 사체임을 밝혀낸다.
야스코가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떠오르고, 경찰은 그녀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수사가 답보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형사 구사나기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등장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던 천재 물리학자, 일명 ‘탐정 갈릴레오’, 유가와에게 S.O.S를 친다. 유가와는 구사나기에게 야스코의 이웃인 이시가미의 이름을 듣고 그가 대학 시절 자신과 전공은 다르지만 서로의 천재성을 인정했던 동창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이시가미가 사건에 개입했음을 직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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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소감] 추리소설의 장점은 가독성 면에서 최고라는 점일 것이다. 한 살인 사건을 놓고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점점 빠져들게 만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게 한다는 점. 그러나 가독성 대비 얻는 소득은? 글쎄다. 책을 읽으면 뭔가 새로운 지식(?)을 얻어야 한다는 내 입장에선 가급적 피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이 추리소설이다. 단행본 한 권 읽어내는데 평균 4~5 시간이 소요되는데 얻는 건 타임 킬링용 영화를 볼 때 얻는 정도이니까. 그런데도 빠져드는 이유는? 마약을 해 본 건 아니지만 그런 중독성 때문 아닐까?^^ 그렇다고 추리소설마다 다 빠져드는 건 아니다. 읽다가 만 작품도 꽤 된다. 그러니 이 작품을 다 읽고 소감을 쓸 정도면 괜찮은 작품인 것인가? 나는 아니라는 쪽이지만 어쨌든 다 읽은 작품에 속하니까 작가로선 성공작이랄 수 있겠다.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경우 수학과 물리학의 어려움에 대해서 새삼 알게 되었으니까. 그 외의 소득은? 글쎄다. 잘 읽으면서 바로 몰입하게 만드는 잘 쓴 작품이라는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워낙 유명한 작가, 작품이기에 인기가 있어 초판 발간 이후 3년 만에 15쇄째 찍어낸 신간이 아니라면 아마 읽는 걸 피했을 것이다. 유명한 작품인 건 이미 알고 있었으나 남의 손때가 수 없이 묻은 헌 책으로라도 보고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시략이 점점 나빠져 활자 크기에 민감한데 이 책은 크기가 적당한 것도 작용했다.
작품 내용은 단순하다. 이혼하고 딸과 둘이 살고있는 한 여인에게 전 남편이 찾아와 괴롭히는데 이를 딸과 함께 우발적으로 살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여인이 사는 옆집에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중년 남자가 살고있는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자살하려던 차에 새로 이사 온 이 여인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삶의 의미를 찾게된다.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두 모녀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걸 알게 되고 이 수학 교사는 시체을 치우는 악역을 스스로 떠맡는다. 최악의 경우 자기가 살인범이 될 각오를 하고서. 그런데 이 설정은 설득력이 약하다. 교사가 자신의 삶에 절망해 삶을 포기하는 이유의 설명이 부족한 때문이다. 실연을 한 것도 아니고,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계속하여 학자로 남을 수 있는 길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어엿한 직장이랄 수 있는 교사직에 있지 않은가? 또 자기가 좋아하는 수학 문제 풀이에 몰두하는 삶이고. 그런데도 중년이 되기 이전의 삶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이 삶을 포기하려고 하다가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중년의 호스티스 출신 ㅡ 물론 교사 본인을 알 수 없는 설정이지만ㅡ 여성을 보고 반해 살인 혐의를 대신 뒤집어 쓴다?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구성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또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형사가 등장하는 건 당연한 거지만 작가는 여기에 대학 물리학 교수로 있는 한 인물을 등장시킨다. 형사와 대학동기이면서 친구이고 살인사건 해결을 도와주는 아마추어 탐정인 설정으로. 그리고 살인사건 은폐자인 수학 선생도 같은 동기이면서 서로 라이벌 의식을 느낄 정도로 수학천재인 설정으로. 셋이 같은 대학 동기지만 형사와 수학 교사는 일면식이 없는 사이이다. 결국 사건은 이 대학교수가 해결-수학 교사가 자수한다-하는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수학 교사가 실제로 살인을 한 것이다. 작품 앞 부분에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곳을 수학 교사가 출퇴근 길로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노숙자 중 한 명을 살해하기 위한 복선이었던 것이다. 결말은 전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여인은 자수, 여인의 딸은 자살 미수, 수학선생은 실제 살인이 밝혀지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이어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쓰레기 같은 인물 ㅡ 전 남편 ㅡ 하나 때문에 세 사람의 인생이 파멸하고 만 것이니까. 같은 추리소설일지라도 감동의 여운을 남겨 준 작품도 있다. 내가 읽은 작품 중엔 "사라진 이틀"이 기억에 남는다. 반면에 이 작품은? 반전의 묘미ㅡ 수학선생이 실제로 살인을 했다는 설정 ㅡ 가 그냥 작품 전개상 필요한 정도 외에 아무것도 아닌 작품이다.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이나 "더 그레이"처럼 뒷맛이 개운치 않다. 선량한 세 사람이 다 불행해지는 설정 아닌가. 그런데도 인기리에 읽히고 영화, 해설까지 많다. 동의하기 어렵다. 세상에 동의하기 아려운 일이 비단 이 작품 뿐이랴만.(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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