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단상

Bawoo 2022. 3. 8. 10:01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단상

대통령 선거 열기가 뜨겁다. 정권 교체 여론이 더 우세하다는 매스컴의 여론 인용 보도를 기준으로 보자면 정권 교체가 우세한 듯 싶어 보인다. 여기에 큰 몫을 하는 게 나처럼 1950년 대 초기 한국전이 끝나기 전에 태어난 70대 이상의 노년층일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태어난 50년대 생과 60년대 생들도 어느 정도는 가세하고 있을 테고. 아이러니한 건 이 세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 시절을 10, 20대에 고스란히 겪은 세대라는 점이다. 여기에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기까지 포함하면 30대까지 해당한다. 그런데도 굳건한 보수층이 된 이유는? 난 그 답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만큼 경제대국이 되는데 초석을 놓아준 박정희 전 대통령 ㅡ이하 박통으로 표기ㅡ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더 큰 때문인 거로 생각한다. 50년 생인 나도 그런 면에서 박통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더 많은 편이니까. 그렇지만 맹목적이지는 않다. 박통은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분으로 평가하고 존중하지만 측근이었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다. 그들은 거의 다 자신의 사리도 도모했으니까. 예외가 있다면 박통을 도와 경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제 관료 그리고 포항제철을 세운 박태준 같은 분 정도이다.

아무튼 나하고 연치가 비슷하거나 선배인 세대 그리고 15~20년 정도 후배인 세대-65~70년 생? -가 보수 성향을 띄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직도 빨갱이란 용어를 쓰고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대통령에게 쌍욕을 해대는 건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 놀라운 건 이런 생각이 학력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만연(?)하고 있다는 건데 이들의 이런 인식이 과연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한 바탕 위에서 생겨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아는 선에서 해방 후의 우리 역사 흐름에 대하여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좌우가 본격적으로 대립을 시작한 건 해방이 되고나서 부터이니까. 해방 전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투쟁 상대가 일본이었기에 좌익(공산) 의 활동이 항일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았을 테니까. 그런데 해방이 되고 미국이 점령군이 되어 군정을 실시하면서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세력이 그대로 권력을 거머쥐게 되면서 동족간 좌우 대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남에서는 좌익의 패배, 북에서는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와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니까.

만약에 이러한 흐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극보수 성향을 띈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참고하여 극보수 성향은 지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극우가 있으면 극좌도 있을 것이고 이들은 자기 생각을 절대로(?) 바꿀 리가 없는 집단이니 서로 충돌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 이게 나라 발전에 무슨 득이 될 일이겠는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상대 성향을 이해하면서 받아들여 권력 쟁취에만 눈이 먼 부류들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오히려 이용할 수 있는 중도 성향 집단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민중은 개돼지라고 인식하는 부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생각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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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했다. 동시에 한반도 우리나라도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 자력이 아닌 미국 덕분에. 공식적으론 35년 만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물러난 건 미군, 소련군이 38도 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에 진주해 군정을 시작한 9월 9일이었다. 일본은 천황이 항복한 뒤에도 25일간 더 한반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웬수같은 일본놈들.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해방은 아니었다.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에는 미군, 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했고 이들은 일본을 대신한 점령군이었다. 일본처럼 식민통치를 목적으로 한 점령이 아니라는 게 다를 뿐이었다. 아무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남북 분단이 이때 처음 이루어진 것이다. 미소 두 강대국이 누가 더 자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땅을 더 많이 차지하느냐는 영역 다툼의 결과.

일본을 대신한 미소의 한반도 군정은 1948년 8월 15일 남북한이 따로 단독 정부를 세워지기까지 3년간 실시되었다. 남한의 경우 이 시기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 뒤로도 한국전쟁 초기까지 이어지지만, 소련이 군정을 실시한 북한과 달리 미군정이 실정을 거듭한 때문이었다. 북한은 일사불란하게 친일세력을 청산하고 자기들끼리 누가 권력을 잡느냐 다툼을 벌였으나 남한은 그렇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 적극적인 친일을 했던 세력들을 미군정이 그대로 활용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한 세력들을 배척한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시행했던 공출 제도를 그대로 시행해 식량난이 일어나자 대구에서는 폭동ㅡ위키백과 참조 ㅡ 이 일어나기도 했다. 민중들은 차라리 일제강점기 시절이 나았다는 한탄을 쏟아냈을 정도였다.

대표적인 혼란은 좌,우의 극심한 대립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을 하던 세력은 좌, 그 시절에 호의호식하던 친일세력은 우로 갈려 서로 싸웠다. 여기에 북한 공산체제에서 피해를 입은 세력들이 남으로 내려와 우익 세력에 가세했다. 친일 세력, 지주 계급,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 세력 등. 한경직 목사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서북청년단이 대표적이었다.

좌우익의 싸움은 좌익의 패배가 예정되어 있었다. 점령군 미국이 공산주의(소련, 중국)는 진저리를 칠 정도로 싫어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공산세력의 확대에 따른 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것이었다. 오죽하면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하도 혼쭐이 나서 일본을 궁핍화하려 했는데 ㅡ 여기에 대하는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는가"라는 책에 잘 나와있다. ㅡ 이 정책을 180도 바꿔 재건책으로 전환했겠는가. 결과적으로 좌익세력을 척결하는 제주도 4.3사건, 여순 사건, 거창사건 등 에서 양민까지 함께 학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여기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으로 복무했다가 해방 후 창설한 국군 중 육군의 지휘 계급이 된 친일 세력, 경찰 보조원으로 일했던 악질 친일 경찰 출신 그리고 이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 같은 반공세력이 큰 역할을 했다. 미국의 친일 청산 외면 및 비호로 일제 강점기에 항일 운동을 하던 세력이 당시에 호의호식하던 친일 세력에게 제거당하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친일 세력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한 8진보학자는 1623년 인조반정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서인 정권(노론)부터라고 말하지만 이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나 최소한 조선왕조 말기에 권력을 쥐고 있던 세력들이라고 보면 이는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성씨로만 보자면 왕가인 전주 이씨, 왕비 세력인 여흥 민씨, 해평 윤씨 그리고 세도 정치를 폈던 신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이다. 이들 중 일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항일운동에 투신한 양심적인 인사들을 제외한 거의 다라고 보면 틀림없다. 보수 세력을 편향적으로 대변하는 조선일보에 재직하며 우리 선조들의 부정적인 면을 집중 부각하는 글을 쓰는 박종인 기자에 따르면 ㅡ매국노 고종이란 책 ㅡ합방시 작위, 은사금을 받은 왕족, 귀족은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읕 나라가 망하는 통치를 하고서도 망한 뒤에도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던 것이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계층이 또 있다. 대표적인 게 오늘날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신문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이 되는 재벌 기업 등 모두 일제 강점기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것이다. 꽤 많은 사학 재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대를 이어 세습하면서 권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조상을 잘 만나 태어난 덕분에.

러한 친일 세력의 비호는 미국의 입장에서 불가피한 일이기는 했다. 항일 운동을 한 좌익(공산)세력은 공산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소련은 2차 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미국의 주적이 되어 있었다. 패전이 예정된 독일보다는 승전국이 되는 소련이 더 문제였던 것이다. 그 증거가 동유럽 여러나라가 소련의 위성국이 되어버린 일이었다.

어쨌든 남쪽에 미국이 비호하는 친일 세력 위주의 반공세력이 정권을 잡은데 따른 가장 큰 비극은 한국전쟁 초창기ㅡ6.25부터 9월 초순 까지ㅡ에 일어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이었다. 공식 4,934명, 비공식 20만여 명이 살해된 이 사건은 북의 남침에 따라 남쪽에 있는 좌익 성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선제적으로 학살한 것인데 여기에는 남한 집권 친일 반공 세력의 주도 면밀한 대처가 작용했다고 볼수도 있겠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인 60년대ㅡ1964년 ㅡ에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패퇴한 한 요인이 공산세력ㅡ베트공(민)8 ㅡ이 미국의 영향권인 남부 베트남 지역에 잠복해 있는, 전선이 따로 없는 전쟁이기 때문이었으니까.

아무튼 한반도 남쪽은 좌익 세력이 철저히 사라진 친일 반공 독재국가로 거듭나 세계가 놀라는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이어진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을 당시 잠시 보도연맹원 복권 운동이 있었으나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은 이를 철저히 탄압했다. 1894년에 없어진 연좌제를 다시 실시하여 좌익으로 분류된 집안은 사회 진출 기회마저 철저히 봉쇄했다. 이는 원래 남로당 출신이었다가 전향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국의 불안을 잠재우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연좌제의 폐해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진보성향 작가인 조정래 님의 "한강"이다. (나무위키에는 이외에 도 드라마"모래시계"와 한승원 작가 원작인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도 언급되지만 두 작품 다 봤는데도 기억속에는 남아있지 않다)

이 연좌제의 폐지는 1980년대에 와서야 이뤄지고 좌익세력의 본격적인 해금은 88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이때 빨치산 출신 '이태'라는 인물이 "남부군"이란 빨치산 관련 실록을 써내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이어서 월북작가들의 작품도 햇볕을 보게 되어 오로지 반공교육으로만 세뇌되어 있던 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오게 한 것 아닐까 싶다. 사실 월북작가들의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쓰인 것이어서 항일 문학의 범주에 넣는게 맞는데 반공위주의 정책을 펴다보니 월북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싸잡아서 반민주주의 작품으로 분류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아무튼 연좌제의 폐지나 월북작가 작품의 해금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 세력의 힘이 커짐에 따라 불가피했을 것이다. 이 민주화 운동 세력의 뿌리가 좌익 활동을 했다가 전향한 사람들과 후손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고 본다면 기우일까? 아무리 서슬 푸른 친일 반공 세력일지라도 모든 좌익 세력을 다 죽여없앨 수는 없었을 터. 이들의 후손들이나 추종하는 사람들이 좌익세력을 대변하거나 실상을 소개하는 작품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태의 남부군,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등ㅡ을 내놓으면서 음지에 있던 좌익세력이 양지로 나오게 된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진 것이다. 그래도 이 좌익 ㅡ이제는 진보라고 부른다 ㅡ세력이 국가 권력을 거머쥔 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 처음인데 이의 태동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있은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은 반 군사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섰던 인물이니 좌익(진보)세력과 연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의 단적인 증명이 남부군을 쓴 이태라는 인물일 것이다. 어쨌든 김영삼, 김대중 두 분이 대권을 잡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친일 반공 보수세력 ㅡ친일 및 군사독재 시절 세력 ㅡ과의 타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부 및 친일 세력이 뿌리인 민정당과 김대중 대통령은 충청 지역에 기반을 둔 5.16주체 세력인 김종필 씨와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만큼 친일, 군사 독재에 뿌리를 둔 보수 세력의 힘이 컸기 때문이다. 이 힘은 이후 진보 세력에 뿌리를 둔 대통령이 세 명씩이나 나오지만 늘 굳건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 법원, 검찰, 대기업, 군부, 사학 재단, 개신교 일부 모두 친일 보수세력의 기반이고 이는 정권이 진보 진영 쪽으로 간다고 해도 아무 흔들림이 없다. 특히 언론의 권력은 막강하다. 다른 보수 세력은 자기들의 권한을 침해 안 받는 범위 내에서 권력을 행사하지만 언론은 여론을 오도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튜브 등 비공식 정보 습득 수단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언론 매체의 보도를 가장 손쉬운 정보 습득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반 대중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일개 기자, 논설위원이 쓴 기사를 무슨 금과옥조인양 받아들이는 그야말로 영화 "내부자들"에서 민중은 개돼지라고 서슴없이 얘기하는 언론사 주필의 말이 딱 적용되는 사람들에 해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보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현실에서 일개 공무원이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지 않은가. 세상은 참 빠르게 많이 변하는데 행시 하나 패스해서 정부 정책을 주무르는 자리에 있다보니 세상이 발 아래로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남침이 성공하여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되었다면 친일, 군사 독재 정권이 득세한 지금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까? 결론은 아니다라는 쪽으로 나온다. 친일세력이야 싸그리 청산되었겠지만 그러면 뭐하나? 북한의 현재 실상을 보면 왕조국가와 전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민중을 착취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게 빤히 보이는 김일성 왕조 3대 째인 것이다. 중국, 베트남처럼 경제 분야는 자본주의를 택하여 민중이 잘 사는 나라만 만들어 준다면 오죽이나 좋을까만 그렇지가 않다.현실은 정반대 인 것이다. 항일 독립운동을 한 세력들끼리 권력다툼을 하여 최종적으로 승리한 김일성과 그 측근 세력만을 위한 나라가 되어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남쪽이 친일세력이 득세한 나라라고 마구 싸잡아 욕할 일도 아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세계 10위권에 드는 강국이 되어있는 건 친일 반공 세력과 이들을 잘 활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으로 돌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뭐 여기에 미국의 시나리오가 있다는 자료가 있는 것으로 알고는 있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 대만을 부흥시키기 위하여 일본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일본은 원자재 및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분야의 기술을 이전하여 제품을 생산하면 미국은 이를 수입하는 삼각무역 형식으로 두 나라의 발전을 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해 타이완사)

어찌됐건 미국이 공을 들인 많은 나라 중 제대로 성공한 건 우리나라와 대만 뿐이니 민중을 위한 독재라면 독보다는 약이라는 생각이다. 민주주의의 단점은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는 점 아닌가.

우리나라를 반면교사로 삼은 중국, 베트남이 정치는 공산당 1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는 자본주의를 택하여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민중을 위하는 독재라면 꼭 나쁘다고만 얘기할 일은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정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모범국이 되어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 자유 경제와 민주주의를 이식한 미국조차도 지난 대선에서 저게 과연 민주주의 모범국이 할 짓인가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던가. 우리나라가 민주 자유 진영의 최고 모범국인 것이다. 이 모든 게 친일 보수 세력의 경제력 향상에의 기여와 민주화 운동을 한 진보 세력의 절묘한 양보와 타협의 산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도 남북 분단에 따른 전쟁 리스크와 강대국 중국, 일본의 경제적 위협을 슬기롭게 헤쳐나간다면 이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이념의 다름과 관계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은 나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얼마 남지않은 대선의 승리는 과연 어느 쪽이 거머쥘 것인가? 10대, 20대 시절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치하에서 살아가면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직접한 60, 70대 나이인 이들 대부분은 보수 성향을 보인다. 비록 독재정치는 했을 망정 일상생횔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으면서 나라 발전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게 해 준 때문일 것이다. 반면 가난이라곤 안 겪어봤을 70년 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박통의 친일 경력 등 부정적인 면을 주로 들으며 자라나 무조건 욕부터 히는 경향이 강한 듯 보인다.

일제 강점기가 35년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한 건 1875년 운양호 사건에 따라 1876년에 맺어진 불평등 제물포 조약 때부터이니 대만의 식민 통치 기간 50년 보다 거의 19년이 더 긴 69년 간 일본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이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수도 있는 나이인 기간. 그러니 어쩌면 친일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 암살에서 이정재가, 반일 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전향하여 지금도 지탄받고 있는 한 유명한 문인이 한 말처럼 "일본이 망하는 건 요원해보이고 현실적인 이익은 바로 코 앞에 있으니 어찌 전향하지 않을 것인가" 라는.

이제 현실로 돌아와 대선 국면을 보면 지난 선거에서 진보 진영에게 대통령, 국회의원 180석을 몰아줬던 민심이 서울, 부산 시장 선거에서는 보수 진영에게 표를 주었다. 진보 진영에게 실망한 민심이 보수 진영으로 돌아선 것인데 이번 대선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어느 쪽 후보가 유능해서가 아닌 덜 무능하다거나, 표를 몰아줘봤자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실망감 때문에 차라리 바꿔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차악을선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중의 비애일 것이다. 진보 후보를 지지하든 보수 후보를 지지하든 그건 각자의 마음이지만 어느 후보도 찍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역대 최악인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내 처지 역시 서글프기 그지 없다. 나는 분명 개돼지가 아닌데 권력을 탐하여 거머쥐거나 조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소수의 인간들에게 이리 취급받을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한없이 슬프단 말이다. 이들을 심판할 수 있는 게 겨우 한 표뿐이니.

어쨌든 대한민국 만만세다. 진보 세력이 재집권하든 보수세력이 정권 교체를 하든 부디 국민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통치를 하여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영원토록 발전하는 나라가 되도록 해주기를 축원 또 축원한다.

(눈이 힘들어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것도 고역이다.세월이 정말로 웬수다. 2022.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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