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타자의 텍스트:저자 이정현 | 삶창 | 2021.4.30.
[소감] 지금부터 70년 전인 내 나이 3살 때-1953년-에 끝난 한국전쟁(1950~1953). 나도 겪기는 했으나 갓난아기였기에 기억에는 전혀 없고 책-문학 작품, 역사책-을 통해서만 알고 있다. 문학 작품은 이제는 거의 재출간되지 않아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래도 늘 관심사이다. 한국전쟁 관련 신간이 나온 걸 알게 되면 꼭 읽어보려고 할 정도이다. 이런 와중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결과는 대박.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외국작가가 쓴 한국전쟁에 관하여 쓴 수많은 책을 알게 되었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역사학자 못지않게 탁월하다. 한국전쟁에 관하여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2022. 3. 12]
책소개:인터넷 교보문고 발췌 [전문은 책제목을 클릭히면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을 다룬 외국 문학 작품을 읽은 책이 나왔다. 한국문학사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은 많았고, 또 ‘분단문학’이라는 영역을 낳기도 했다. 저자인 문학평론가 이정현의 첫 책이기도 한 이 책은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을 마주한 외국인들의 상황, 그들의 텍스트에 한국전쟁이 어떤 식으로 기록되었는가를” 꼼꼼한 독서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그 비극이 낳은 비참을 살피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국제전이었던 한국전쟁으로 타국의 청년들도 큰 고통을 겪었고, 이 전쟁으로 여러 국가들의 운명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본, 중국, 미국, 그리고 유럽과 콜롬비아의 상황과 문학작품을 두루 살피지만, 단순하게 외국 문학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만 말하고 있지 않다. 일단 역사의 흐름 속에 한국전쟁을 자리매김하는 객관적 시선을 놓치지 않으며, 한국전쟁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도 ‘타자의 텍스트’를 통해 밝히고 있다. 1장이 ‘일본과 한국전쟁’인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지배가 전쟁의 원인이었고, 패망 후 일본의 재건은 한국전쟁 때문에 가능했음을 저자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본 지식인과 작가의 내면세계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출판사서평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신문들은 국민들에게 ‘냉정’을 호소하면서 한국전쟁을 외부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취급했다. 실제로는 일부 일본인들이 한국전쟁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기도 했지만, 한국전쟁은 일본인들에게 외부에서 벌어진 전쟁일 뿐이었다. 일본의 신문에서 한국전쟁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정면에서 다루는 논설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특수 수요와 같이 일본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한국전쟁에 대한 일본 또는 일본 국민의 입장을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다.(77)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이 야기하는 비극과 그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하는 국가 시스템의 허구이다. 예를 들어 신생국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국가의 정체성을 공고화하는 데 이용한다. 즉, “중국은 한국전쟁으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지만 신생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고 건국 초기의 내부적 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148) 또 타이완은 중국의 반공포로들이 타이완행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벌이는데, 이 같은 사실을 저자는 하 진의 『전쟁 쓰레기』라는 작품을 통해 살피고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포로들의 송환 날짜가 다가오자 타이완에서 국민당 장교들이 파견되어 중국군 포로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설득을 시작했다. 중국군 포로들은 인도군이 경비하는 중립지대에서 한 사람씩 천막으로 들어가서 최종 설득 과정을 거쳐 행선지를 정하게 되었다. 유안은 다시 갈등에 빠진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처벌이 두려웠고, 타이완으로 가면 어머니와 약혼녀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164)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서 실존적 갈등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분단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야기한 이런저런 딜레마와 곤경은 또 다른 전쟁의 비극이기도 하며, 분단이라는 것은 단지 추상적인 국토와 민족의 분단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존재의 분단도 낳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끼친 타자의 고통
미국의 경우는 “당대 미국 젊은이들의 의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아시아에 대한 무지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래한 물질적 풍요는 한국전쟁을 쉽게 망각하게 했다.”(172) 저자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필립 로스의 소설 『울분』을 통해 미국 사회가 어떻게 변모되어가 는지를 보여준다.
전쟁이 형성한 공포와 불안으로 미국의 기성세대는 보수적인 기독교 세계관에 집착했다. 기성세대는 헌신, 복종, 순결, 예의를 강조하는 규율을 청년들에게 강요한다. 안정과 질서에서 벗어난 모든 것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치부된다. 올리비아를 둘러싼 불량한 소문, 과중한 아르바이트, 기숙사에서의 불화, 헌신과 순종을 강요하는 학생과장은 마커스의 울분을 증폭시킨다. 학생들은 억압적인 학교 규율로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른다.(243)
물론 이는 전적으로 한국전쟁 탓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면 “당대의 평범한 미국 청년들에게 한국은 단지 ‘불길한 곳’, 혹은 ‘낯설고 먼 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한국전쟁에 파병된 군인들은 참혹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소모적인 ‘고지전’만 치열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저자는 참전 군인의 회고록을 통해 들여다본다. 미군 제2사단 제72전차대대 지휘관 출신 시어도어 페렌바크는 자신의 회고록 『실록 한국전쟁』에서 “1950년 7월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인 스미스 부대의 참담한 패배, 중국군 참전 가능성을 무시한 미군 지도부의 오판, 한국과 동양인에 대한 미국의 편견 등을 거론하면서 한국전쟁은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기록했다.”(246) 그 밖에도 ‘이주 한인 2, 3세대’ 작가들이 다룬 한국전쟁을 분석하는데, 한인 작가들의 실존적 상황이 한국전쟁이 어떻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는가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영향은 부정적 영향이다.
저자의 시선은 유럽 각 나라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와 그 영향을 살피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와 북한 관계 등도 두루 다룬다.
북한은 전쟁 이후의 국가 재건을 도모하기 위해서 유학생도 파견했다. 1952년 9월 말 북한 유학생 37명이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 여행 끝에 10월 30일 동베를린에 도착했다. 그들은 뒤이어 도착한 63명과 함께 1년간 라이프치히에서 독일어를 배운 뒤 동독의 여러 대학으로 흩어졌다. 1956년까지 동독에 들어온 북한 유학생은 357명이었다. 그 외에도 1953년에 전쟁고아 600명도 북한에서 동독으로 보내져 집단생활을 하며 공장에서 기술을 익혔다. 동독의 북한 학생 수용과 교육 지원은 곧 ‘사회주의 국제연대’의 모범으로 간주됐다.(366)
마지막으로 콜롬비아의 문학작품 속에서 한국전쟁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살펴보면서 전쟁이란 사건이 사람들의 삶과 영혼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고찰한다. 전쟁 자체도 그렇지만, 전쟁을 수행한 주체로서의 국가가 전쟁을 어떤 식으로 국가 이데올로기에 사용하는지 비판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비판이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전쟁은 단지 물질만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삶까지 파괴한다”. 저자가 ���국 문학작품을 통해 보고 싶었던 것은, 전쟁이 끼친 구체적인 참상이었을 것이다. 국가가 기억하는 전쟁은 의도된 왜곡이 개입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국가의 기억은 전쟁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한국전쟁을 다룬 한국문학 작품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씌었기에 타자의 아픔을 보지 못할 수 있다. 그런 함정을 피하기 위해 저자가 택한 ‘타자의 텍스트’는 한국전쟁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역사수정주의가 아니라, 한국전쟁이 끼친 타자의 아픔을 통해 우리가 겪은 전쟁의 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의 진가가 있다.[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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