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모두의 적:저자 스티븐 존슨 | 역자 강주헌 | 한국경제신문 | 2021.6.15.
[소감] 한 나라의 지배계층도 아닌 "헨리 에브리" 라는 해적 한 명-엄밀히 말하면 일당이다. 헨리 에브리를 두목으로 한-이 '세상을 이리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구나'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하게 만든 책. 문학 작품-소설-만큼은 아니지만 과연 이 해적 일당의 말로는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무굴 제국 (1526년 ~ 1858년)황제의 배를 탈취한 이 사건이 결국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니, 늘 생각하는 거지만 역사의 흐름이라는 게 평범한 삶을 살다가 떠나게 마련인 나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하는 식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다.
책소개
이 이야기는 한 명의 해적에 관한 실화다. 주인공은 헨리 에브리. 1695년 무굴 제국 (1526년 ~ 1858년) 황제의 건스웨이호(현재 가치로 약 545억 원)를 손에 넣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해적, ‘해적왕’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블랙 샘’ 벨러미보다 한 세기 앞서 활약한 해적으로 이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며,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제 현상수배범’이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보물을 실은 황제의 배를 약탈한 탓에 ‘인류 모두의 적’으로 명명되었던, 세계 최초로 1억 원이 넘는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였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써온 저술가이자 천재 이야기꾼인 스티븐 존슨은 이 책에서 한 남자의 삶이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추적한다. 에브리 선장은 사라졌지만, 그의 건스웨이호 습격 사건은 역사에 영원히 남았다. 해적왕이 자신도 모르게 대영제국 시대를 여는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명의 해적이 동인도회사의 번영과 대영제국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한 사람이 역사 속에서 유의미한 불꽃이 되는 과정과 그 불꽃이 어떻게 세상을 활활 태우는 화재로 번져가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연과 선택이 얽혀 만드는 역사의 현장에 한 걸음 깊숙이 들어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역사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그런 대치는 대체로 사소한 충돌, 즉 금세 꺼져버리는 불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그은 성냥불이 온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성냥불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간단명료하게 말하면, 이 책은 세상을 경악에 빠뜨린 한 불량한 해적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은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해적들만큼 오늘날 유명하지는 않지만 검은수염과 그의 동료들보다 세계사의 흐름에 훨씬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그 영향을 평가하고, 그 경계를 가늠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웅장한 구조물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리며 차근차근 설계하듯이, 기업이나 제국 같은 큰 조직은 신중한 계획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어떤 제도가 궁극적으로 취하는 형태는 최고 기획자가 처음에 설계한 모습이 아니라, 해안선이 작은 파도에 끝없이 시달리며 형성되듯이 외곽 경계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해 결정된다.
_〈프롤로그 : 결정적 장면〉에서
이 데번셔 뱃사람의 탄생은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그가 어디에서 언제 태어났는지, 심지어 그의 실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우리가 실제로 모른다는 게 유일한 진실이다. 헨리 에브리의 뿌리 자체가 모호한 셈이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전설적인 인물의 출생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고쳐 써지게 마련이다.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이야기에 이런저런 소문과 풍문이 더해지고, 교묘하게 수정되며 다층적으로 짜인다. 한동안 헨리 에브리는 만신전에 묻힌 여느 인물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영웅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살인자였다. 또 폭도였고,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었으며, 국가의 적이었고, 해적왕이었다. 그러고는 유령이 되었다.
_〈1장 주인공에 대하여〉에서
1650년대 말을 두 화면으로 본다고 상상해보자. 한 아이는 잉글랜드 웨스트컨트리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8,000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서는 한 왕조의 새로운 계승자가 무굴제국의 황제가 된다. 지리와 문화, 계급, 종교와 언어가 완전히 달라서, 이들보다 공통점이 적은 두 사람을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일련의 사건들로 말미암아 아우랑제브와 헨리 에브리는 폭력적 충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있음 직하지 않은 충돌은 개인의 삶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다. 1650년대 말에 두 화면으로 에브리의 탄생과 아우랑제브의 즉위를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더라도, 둘의 충돌 이후로 인도에서 이슬람 시대가 붕괴하고, 대영제국군이 들어서서 두 세기 이상 인도 아대륙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의 인도 점령은 근대를 규정하는 사실이기 때문에 다른 연대표를 상상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헨리 에브리의 삶이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더라면, 영국의 인도 점령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_〈3장 무굴제국의 기원〉에서
세계 전역에 주둔한 군사력, 지역 법 집행관들, 외딴 식민지 전초기지의 총독들, 상선의 선원들 및 다수가 해적이었던 아마추어 현상금 사냥꾼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 명의 지명수배자를 추적하고 나섰다. 이 범세계적인 범인 추적은 흥미진진한 일종의 예고편이자,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현대판 ‘인류 모두의 적’을 추적하는 인간 사냥의 전조였지만, 그 시대의 느릿한 커뮤니케이션 채널 때문에 추적전은 원활하지 않았다. 봄베이에서 런던까지, 다시 런던에서 봄베이까지 배로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 및 상무성의 관료주의적인 태도는 정부의 위기 대응력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헨리 에브리의 관점에서 보면 법무성의 성명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자신의 ‘지독한 악행’에 대한 고발과 포상금의 유혹이 아니었다. 마지막 부분, 즉 1696년 7월 17일이라는 서명 날짜였다. 영국 정부가 마침내 에브리의 머리에 가격표를 붙이고, 전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인간 사냥을 시작한 때는 헨리 에브리가 수라트를 떠난 지 10개월이 지난 뒤였다.
_〈22장 전쟁하는 회사〉에서
건스웨이호로 인한 위기를 타결하기 위한 협상을 아우랑제브와의 시도하지 않았다면, 또 새뮤얼 애니슬리가 무굴 황제의 칙령에서 어떤 기회를 포착해내지 못했다면, 동인도회사는 어쩔 수 없이 수라트와 봄베이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회사는 황금알을 낳던 거래처를 상실하고, 방직공과 보호무역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밀어닥치는 압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었을 것이다. 물론 수년 후에 다른 기업들이 느슨한 조직망을 결성해 수라트와 봄베이에서 사업을 재개하며,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상인과 경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개의 작은 기업들이 영국의 경제를 잇는 통로 역할을 했더라도 영국이 인도를 궁극적으로 정복할 수 있었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이 무척 낮았을 것이다.
영국인들은 이상한 땅에서 때로는 환영받고, 때로는 추방 직전까지 내몰리며, 자한기르 황제가 영국인들에게 ‘마음껏 물건을 사고팔며 영국으로 운송해갈 권리’를 처음 승인한 이후로 80년 동안 무역상으로만 일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영국인들은 무슬림 보물선들이 메카로 순례를 떠날 때 그들을 보호하고, 바다를 해적으로부터 구해내는 역할을 위임받았다. 그 역할은 그들에게 전에는 허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자산이었고, 그들과 인도 아대륙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힘이었다. 곧, 법을 집행하는 권한이었다.
_〈26장 바다의 파우지다르〉에서
건스웨이호의 위기는 다른 면에서도 시대를 앞선 사건이었다. 핵심 인물들의 관계가 비대칭적이었고, 그 사건이 궁극적으로 세계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그렇다. 에브리 해적단의 이야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공식적인 권력기관과 전혀 무관한 소수의 집단도 세계 전역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브리가 세계인의 마음속에 심어준 공포와 동경과 과도한 영향이 뒤범벅되며, 세계 체제가 변화하는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알카에다와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의 시대에 우리가 맞이한 상황도 비슷하다. 전통적인 국민국가의 울타리 밖에 있는 불량한 조직들이 폭력적 행위를 이용해 지정학적 위기를 촉발하며, 스스로 범세계적인 지명수배자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식의 대본은 300년 전 에브리 해적단이 처음 썼다.
1695년 9월의 그날, 두 배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관계망(무굴제국의 막대한 부, 영국의 제국주의적인 야심, 새롭게 부각되던 국민국가의 중요성, 점점 중요해지던 세계무역망, 국경과 주권에 대한 해적의 도전) 때문이었다. 국제 관계가 덜 밀접한 시대였다면, 그 200명이 일으킨 사건은 적어도 세 대륙에 명백한 영향을 미친 세계적인 위기를 촉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헨리 에브리는 그런 관계망에 우연히 처음으로 불을 불인 사람이었을 뿐이다. 또 에브리 해적단이 그렇게 불을 불인 까닭에, 전체 시스템이 무척 상호의존적이고, 외견상 하찮은 사람에 의해 시스템 전체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을 뿐이다.
_〈에필로그 : 리베르탈리아〉에서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해적 한 명이 역사를 바꿨다?
대영제국을 탄생시킨 해적왕 헨리 에브리 추적기
대영제국과 동인도회사는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키워드다. 그런데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과 제국이 성립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17세기의 가장 악명 높은 ‘해적왕’이라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박학다식함과 재치 넘치는 문장력으로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온 스티븐 존슨이, 이번에는 해적왕 헨리 에브리와 그의 조국 영국, 당시 인도 지역을 통치했던 무굴제국과 그곳에서 무역을 하던 동인도 회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보물선 한 척을 약탈한 해적왕,
근대사의 향방을 결정하다
이야기는 1695년 9월 11일, 헨리 에브리와 그를 따르는 해적 일당이 인도 수라트 근처 바다에서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약탈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마어마한 보물에 눈이 먼 해적왕은 자신의 범죄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는 사실 무굴제국 황제의 배였다. 황제의 직계 가족을 싣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길이었으며, 황제의 손녀로 추정되는 공주도 타고 있었다. 그런 배를 약탈하고 강간·폭행을 저질렀으니 해적을 향한 황제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동인도회사와 영국으로 향했다. 해적왕이 영국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하루아침에 영국과의 무역을 중단시켰다. 무굴제국과의 무역으로 큰 이익을 보고 있던 동인도회사와 영국은 재빨리 사태 수습에 나섰다. 먼저 영국 정부는 에브리 일당을 ‘인류 모두의 적’으로 규정하고 막대한 현상금을 걸어 공개수배했다. 에브리 한 사람의 목에 걸린 현상금만 해도 500파운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억 35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그 시대에 매우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최초의 ‘1억 현상금’이 공표되자 전 세계의 현상수배범 사냥꾼들이 에브리 한 사람을 찾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해적왕이 ‘인류 최초의 국제 현상수배범’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동인도회사는 자신들이 직접 해적을 격퇴시키겠다고 황제에게 약속했다. 그러면서 바다를 지키는 ‘황제의 군인’이 되겠다며 법적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해득실을 따져본 황제는 결국 이 제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동인도회사는 처음으로 인도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얻은 권력은 점점 범위가 넓어져 훗날 동인도회사와 대영제국이 인도 전체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에브리가 저지른 범죄가 근대사를 지배한 대영제국의 탄생에 불씨가 된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한 인물의 영향력은 얼마나 클까?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읽는 해적과 제국의 세계사
만약 헨리 에브리가 해적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가 그날 황제의 보물선을 약탈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대영제국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기업이나 국가 같은 큰 조직만이 역사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의 신중한 계획을 통해 역사의 구조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 속 결정적 순간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속에 크고 작은 다양한 주체들의 복잡한 관계망이 존재한다. 그리고 역사는 그 주체들이 설계해놓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형성된 작은 충격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 사건 역시 그렇다. 한 명의 해적과 그의 도전, 무굴제국의 막대한 부,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심, 타지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동인도회사의 절박함, 점점 중요해졌던 세계 무역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으며 해적왕은 이 관계망에 최초로 불을 붙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건스웨이호 약탈’이라는 작은 불씨는 ‘근대적 제국주의’라는 큰 화재로 번져갔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보면, 역사는 매 장면마다 그 뒤에 수많은 인물과 관계를 감춰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장면들에 주목하여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는 일은, 이미 알고 있던 역사를 다시금 풍부하게 읽는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선사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 근대사에 해적 한 명이 불을 붙였다. 어쩌면 오늘 당신도 자신도 모르게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성냥불을 긋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만들어가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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