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이 작품은 유튜브에서 낭독으로 읽어주는 걸 듣고 내 취향의 매우 공들인 작품으로 생각되어 책으로까지 읽게 되었다. [낭독 보기: https://youtu.be/g9rBGVGMT20]
낭독으론 4시간 반이나 걸리는 분량인데 책을 받아보니 200여 쪽이 채 안 되는 경장편이었다. 내용은 이미 들어서 아는 터인 데다가 워낙 가독성 있게 잘 쓴 작품이라 빠른 시간 안에 읽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분명 뛰어난 작품인데 낭독을 들을 때와 달리 맞춤법 오류와 채 수정이 안 끝난 상태의 문장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많은 분량이. 심하게 말하면 좀 더 교열 과정을 거쳐 독자를 만나야 했을 책이었다.
작품 내용은 훌륭하다. 1950년 한국전쟁기에 있었던 비련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여 우리 현대사의 아픈 면 그리고 이 와중에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전쟁기에도 이웃을 보듬어 주는 따뜻함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은 전쟁 초기에 도청이 있는 남쪽 어느 지역- 지리산 얘기나 나오는 거로 보아 호남 쪽일 것이다 -에서 인술을 펴는 한 의사의 딸과 이 지역에 진주한 인민군의 한 장교가 사랑을 하게 되어 아이까지 낳았는데 이 비련의 사랑 얘기를 50년이 지난 뒤에 풀어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국가 권력의 횡포(?)에 휘말려든 사람들의 애기를 비극적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면서. 출판상의 오류만 뺀다면 아주 좋은 작품이라 생각했다.
개인의 삶은 국가 권력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서로간의 따뜻함을 지켜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작품 내용은 아래 책소개를 참고바랍니다]
책소개
『숨어 있는 생』의 줄거리
홍해강의 아버지 홍필승의 돌연한 죽음이 불러온 사연은 5십 년 전의 시간을 재생한다. 홍필승의 장례식장으로 김동연이 조문을 온다. 김동연은 홍해강의 어머니 정인주의 친구 서정임의 아들이자 해강의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김동연이 미국으로 이민간 지 오십 년 만의 만남이었다.
홍해강은 아버지 홍필숭이 살아 있는 동안 한번도 자신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았음을 서운해했다. 김동연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났을 때 작은 도시에 살던 정인주와 서정임은 스무 살이었다. 서정임의 아버지가 북한군을 피해 남으로 피난가자 정임은 인민군들의 등쌀에 자신의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면서 홍해강의 외할아버지 정연재가 운영 중인 삼세병원의 아랫집 상춘당에 머물렀다. 상춘당 뒷산에는 방공호가 있었고 그 안에는 경찰 홍필승이 숨어 지내고 있었다.
홍필승은 일제 식민지 시절 삼세병원의 사환이었다. 정인주와 서정임은 상춘당 우물가에서 남침한 인민군 대위 김단과 만주치게 되었다. 김단은 삼세병원 병실을 인민군 장교 숙소로 사용했다. 정인주와 서정임은 김단과 음악실에서 음악감상을 하던 중 미군의 공습을 받기도 한다. 미군이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며 김단은 정인주와 서로 사랑을 확인조차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빨치산으로 활동하던 김단은 상춘당으로 정인주를 찾아와 하룻밤을 묵으며 사랑을 확인하고 황급히 북한으로 철수했다. 이후 해강을 임신한 정인주는 어쩔 수 없이 신분이 낮은 홍필승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딸 해강에게 명목상 아버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53년 휴전과 함께 정인주는 딸 홍해강을, 서정임은 아들 김동연을 낳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남파간첩이 된 김단이 정인주를 다시 찾아왔고 그는 다음날 또 월북하고 만다. 두 해 후 정연재 원장이 인민군 부역혐의로 구속되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부상을 치료해준 혐의였다. 정인주는 홍해강이 공산당원 김단의 딸인 것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죽은 듯이 지내야 했으며, 이후 서정임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훗날 홍해강은 의사가 되고 김동연은 미국의 대학 교수가 되었다. 김동연은 아내와 이혼한 후 어머니 서정임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다.
홍필승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동연의 어머니 서정임은 홍해강과 함께 정인주의 묘소에 들러 김단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인주와 김단의 애절한 사연을 말해준다. 그렇게라도 서른한 살 김단과 스물아홉 살 정인주의 ‘숨어 있던 생’이 연결된 것이다.
출판사서평
현대사의 상처를 격조있는 이야기로 직조한 박명희 작가의 장편 『숨어 있는 생』
전주여고와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 단편소설 「별의 주소」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한 후 한국 중년여성 문제를 격조 높고도 심도 있게 펼쳐 ‘1990년대를 여는 작가’로 조명을 받으며 제34회 한국 소설문학상을 수상했던 박명희 소설가가 첫 장편소설 『숨어 있는 생』을 출간했다.
『숨어 있는 생』은 누구보다 귀하게 태어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성장했어도 역사의 그늘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감춰야 하고 숨어 살아야 하는 주인공 홍해강과 어머니 정인주를 둘러싼 모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사람이 사람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사랑한 일로 인해 태어난 자식을 위해 스스로 존재를 지워야 했던 여자의 기구한 삶을 그렸다.
박명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가끔 한국전쟁을 상기한다. 그 시대와 해후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자는 매번 패배한다’는 고(故)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한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치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설 쓰기 뿐이었다. 전쟁 중에 묻혀간 진실들을 하나쯤은 건질 목소리를 갖고 싶은 바람으로 겁 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소설 쓰기는 신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었으나 저주이기도 했다. 사는 동안 소설은 내게 희망이었으나 가슴 시린 외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소설은 아직도 내 영혼의 그리움이다. 기왕에 내딛은 걸음, 나는 저 어둠을 밝히는 휘황한 횃불이 될 꿈은 애초에 갖지 못한다. 다만 단 한 점이라도 전쟁의 진실을 밝히는 불꽃으로 깨어 있고 싶다”고 밝혔다.
김유정문학촌장인 이순원 작가는 “박명희 작가와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다. ‘1990년대를 여는 작가’로 함께 주목받으며 여러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같이했다. 특히나 소설집 『숨어 있는 방』으로 대표되는 한국 중년여성 문제를 격조 높고도 심도 있게 펼쳐 문학적 완성도와 함께 뚜렷한 조명을 받았”던 작가라고 평가하며 “그 박명희 작가가 소설 속의 시공간 무대를 확장해 해방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 전체를 한 여인의 삶을 통해 끌어안는 장편소설 『숨어 있는 생』을 펴냈다. 우리는 현대사의 지난 상처를 지금 우리가 선 자리의 반성과 성찰로 돌아본다. 박명희의 소설은 아름답고 격조 있다. 박명희 작가가 직조해내는 아름다움과 격조가 이야기 속의 안타까움과 함께할 때 이른 봄날 저녁 목련나무 가지로 사이로 부는 바람처럼 독자의 가슴을 훑는다”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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