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인천에 아무 연고도 없으면서 자리 잡고 산지 어언 30년이 넘었다. 1987년 38살에 정착했으니 정확히는 35년 째이다. 그러니 삶의 절반을 인천에서만 산 셈이다. 그것도 이사는 딱 한 번, 한 지역에서만 내내 살았다. 어느 정치인이 말한 이부망천이란 망언에 해당돼서는 아니다. 그저 복잡한 서울이 싫어서 자발적으로 떠나 인천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이란 작품에 보면 서울에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내려온 것으로 묘사했는데 어디 그런 사람들만 있을 것인가. 나를 비롯하여 어느 지역이나 그곳에서 나고 자라 당연하게 눌러앉아 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거늘. 매사를 서울에 들어가 사는 걸 지상과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착각인 것이다. 내 주변에는 처가 쪽을 비롯하여 그리 사는 사람들이 훤씬 더 많은 걸 봐도.
그런데 인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나름대로 애정을 갖고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심지어 이 책에 소개되는 지역 중 동인천역 근처인 용동, 인천역 근처인 송월동 인근에서 근무한 적도 있고 산곡동은 내가 사는 지역인 데도 말이다. 그저 일제 강점기 시절과 연관이 많은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지냈다.
요즈음 가끔 인천역에서 내려 동인천까지 산책 겸해서 다니면서도 동네에 숨은 역사는 알 기회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사연이 많을 거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냈다. 도서관에 인천 지역에 관한 코너가 따로 있는 걸 알면서도 그냥 스쳐 지나다녔다. 이 책을 발견하기까지는.
아마 제목에 끌려서였을 것이다. 구도심의 숨은 아야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으니까. 내용은 이런 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만 책이 나온 지 10년-위 책소개는 2015년 판인데 내가 읽은 건 2013년 판이다-이나 지나 있어 그사이 또 다른 변화가 있는 걸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이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당장 책에 나오는 십정동만 해도 최근에 고층 아파트 단지로 탈바뀜했고 배다리 헌책방 거리도 쇠락한 모습이 눈에 뜨일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제 구도심의 옛 모습은 점점 더 사라질 것이다. 나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의 추억 속에만 자리하다가 이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20년 안짝의 세월이 채 흐르기도 전에. 그리되면 후대에게는 지금 이 책처럼 기록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곳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동네는 변모한 모습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살아있는 모습으로.
책소개
'인천 골목이 품은 이야기'
송현동 수도국산에서 출발해 산곡동 백마장까지 단숨에 돌아볼 만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된 골목은 압축된 시간이 켜켜이 저장된 기억의창고이자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며 문화, 그리고 문화재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우리 지역 역사책의 첫 줄이 되는 것입니다" 399쪽까지 두루 답사를 끝내고 나면, 송영길 시장의 발간사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 같은 인식이 '원도심 사업'의 기초로 된다면, 향후 일본 요코하마 시의 '미나토 미라이 21'에 버금갈 인천지역의 '도시재생사업'에 신뢰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더불어 시민은 물론 시, 교육청, 항만청 등 인천지역 소재 각급 공직자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최소한 '골목이 살아지다'와 같은 지역 공동체에 대한 따듯한 애정과 인문학적 식견, 지역사에 대한 이해 등을 지녔다면 하루 아침에 원도심 한복판(중구 도원동, 동구 금창동)을 양단하는 8차선 산업도로를 내는 비문화적 행정 폭력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민과 빈민을 품어준 수도국산(송현동), 비 오는 날 소풍 가는 창영학교(창영동), 불편한 진실이 깔려 있는 그 길(옥련동), 이젠 그 흔적도 그리운 사학 왕국(도화동), 질곡의 외세풍-돌고 돈 백마장(산곡동)의 골목골목에는 인천적 삶의 실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골목, 살아(사라)지다'가 주는 메시지는 또 있다. 향토사 연구 제1세대, 2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제3세대 연구가들의 책이 계속 출판되기를 바란다. 그만큼 지역사회의 정신사적 자산이 풍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 유동현
인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시 홍보지 '굿모닝 인천'의 편집장 유동현씨가 집필했다. 오랜 시간 발품을 팔며 찾아간 골목길과 그곳의 삶이 미려한 필치로 재현됐다.
저자는 또 예리한 시각으로 포착한 현장의 사진을 페이지마다 실었고, 자칫 잊고 지나칠 골목길 문화유산에 대해 백과사전식 요점 해설까지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목차
송현동| 난민亂民 과 빈민貧民 , 품어 준 수도국산
송림동| 시간이 멈춰선 흑백黑白 사진 그 속에 내가 있다
화평동| 냉면, 함세덕…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동네
화수동| 시간의 닻 깊게 내린 무네미
만석동| 근대화, 산업화 겪으며 깊게 패인 굵은 주름
창영동| 창영학교 소풍 가는 날은 비 오는 날
북성동| 선창가 바람, 붉은 풍등風登 흔들다
경동| 세상의 온갖 물상物像 빠르게 넘던 싸리재
내동| 시간이 공간을, 공간이 시간을 이어주며 곱게 늙은 동네
인현동| 싱그러운 웃음 풋풋한 젊음, 가슴에 지우지 못하네
용동| 색色 좋았던 그 동네, 이젠 모든 게 바랬다
전동| ‘쩐’ 찍어내던 프레스 소리 울려 퍼지다
송학동| 담쟁이 뒤엉킨 축대... 그 곳 영욕 아는 듯
송월동| 하얀 원통 건물, 스케치북에서 사라지다
율목동| ‘오늘’ 찍은 사진, 현상해 보니 ‘과거’가 나왔다
신흥동| 피고 지고 또 피고… 그렇게 꽃처럼 흘러간다
사동| 신사神社 뒷마당에서 흘러나온 요염한 웃음소리
도원동| 복숭아 꽃향기에 실려 온 삶과 죽음
숭의동| 과거의 추억도 현재의 풍경도 로터리에서 돌고 돈다
용현동| 용현벌 미나리밭에 심어진 하와이 사탕수수
도화동| 불도저로 세운 사학 왕국, 이젠 그 흔적도 그립다
옥련동| 그 길에는 ‘불편한 진실’이 깔려 있다
십정동| 희망의 두레박질은 계속된다
산곡동| 질곡의 외세풍風 돌고 돈 백마장
작가의 말| 夢(몽)땅, 인천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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