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아래 책 소개 글로 갈음.
노작[勞作]. 활자 크기가 내가 읽기엔 작은 편이라 포기하려다가 빠져들어 무리하면서 읽었다. 작중 특정 종교에 관한 이야기와 한반도 현 정세에 관한 작가의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나름대로 소화하면서 읽었다.
책소개
민족 분단과 전쟁이 남긴 상혼을 숨죽이며 감내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그리움과 기다림과 한의 사연을 담은 홍광석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우리 민족의 분단이라는 원죄가 낳은 이념 갈등의 그늘이 짙었던 시대를 살았던 안물들의 억울한 이별과 한맺힌 사연이 화자와 화자의 어머니 사연을 통해 짜임새 있고 밀도 깊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문단에서 분단과 이념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을 형상화한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지만 『회소곡懷巢曲』은 오랜 세월 동안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온 여인의 시간과 고통, 곁에서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면서도 진실에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화자 이야기가 이중적 서사의 전략으로 표현되고 있다. 화자 속에 작가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역사를 현재화하고, 국가와 개인의 문제를 깊이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의 인간관계의 희애와 사랑 좌절이 가족 서사의 골격으로, 사상이나 이념의 극복 과정이 공적 서사의 골격을 형성하면서 흥미와 긴장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소설 『회소곡懷巢曲』은 분단문제가 한반도의 엄존하는 현실이기에 그와 관련된 크고 작은 소재의 변이가 끊임없이 이어지게 하면서 분단 현실에 대한 실재적 이해로 이끌고 있다. 스스로 배제의 길을 선택한 화자의 어머니는 분단의 상처를 몸에 새긴 격심한 개인의 충격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의 상처를 철저히 함구한 채 죽어간다. 이 모습은 독자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으면서 여성의 운명에 대한 폭넓은 서사로 나아간다. 작가는 이런 서사를 전유하면서 분단시대를 만든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진실을 찾고자 하는 시도로 소설을 의미화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 인물들의 삶이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오게 하면서도, 분단을 살아온 숱한 인물들의 자기 인식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의미 있는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책 속으로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배운 낱말이 ‘어머니’였는데 할아버지 앞에서 그 책도 읽을 수 없었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읽다가도 ‘아나 어매!’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후려치는 할아버지의 큰 손바닥이 다가오는 것 같아 더듬거려야 했던 유년시절, 어미를 찾는 어린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의 고통을 짐작할 수 없었던 나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재앙과 동의어였을 뿐이다.
어머니에 대해 저주의 비수를 던졌던 할머니의 언어와 온몸에 멍이 들고 골이 흔들리도록 맞았던 유소년기의 기억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가두어버린 관념의 장벽이었을 뿐 아니라, 그 기억들은 오랜 세월 내 무의식까지 조리돌림을 했던 주술적인 힘을 가진 형구였다.
귀소 본능을 자극하는 저녁이라는 시간과 오랜만에 만난 거리의 풍경에서 옛날의 나를 보았다. 막연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배에서 내리던 사람들을 지켜보던 나의 모습도 어른거렸다. 자신의 몸보다 큰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허덕이던 나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뱃길, 고향으로 가는 배도 보였다.
어둠이 내리는 길가, 차가운 해풍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나만이 볼 수 있는 기억의 잔상을 쫓아 미적미적 걸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들리던 나를 부르던 소리, 폐부에 스며들고 심장을 긁어 통증을 안겨 주던 소리는 그 거리에서 들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서울의 병실에서 메아리처럼 나를 흔들었던 어머니의 소리도 거기에 없었다.
내가 목포 선창에서 찾고자 했던 의문의 답은 보이지 않았고 자취가 묘연한 소리의 행방을 쫓던 소년기의 아픈 영상만 세월 저편에 선명했다.
괜히 목포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술집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른손에 짙은 밤색 단장을 들고 왼손에는 대여섯 개의 열쇠가 달린 고리를 장난감처럼 흔들면서 나를 앞질러 지나가는 절뚝발이 노인을 무심하게 보냈다. 그러다 노인의 뒷모습에서 풍기는 느긋한 여유와 자유분방함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 순간 어쩐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는 내가 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현실로 튀어나오는 사람, 곁을 스치며 옆모습을 보는 순간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항상 검게 물들인 군용 야전잠바를 입은 채 바쁘게 절뚝거리며 선창을 휘젓고 다니던 젊은이는 인생의 하얀 서리를 뒤집어쓴 머리에 감색 양복, 쥐색 바바리가 어울리는 노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섬마을 초등학교 교사가 된 다음해 겨울.
몸져누운 할머니와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할머니 역시 아버지의 행적을 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구 형무소에서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느그 조부하고 선창 작은아부지하고 하래동안 기차를 타고 빙빙 돌아서 갔더니 느그 아부지는 이미 묻어 분 뒤였다고 하드라. 묻은 송장을 확인할 길도 없고 여름이라 파올 수도 없었제. 나중에 파올라고 돌로 표시를 해두고 왔는디 그 이듬해에 전쟁이 나부렀지 않았겄냐. 사변이 끝나고 느그 조부가 다시 갔더니 묘도 많아지고 표시도 없어져불어 그냥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어. 글안해도 골병만 남은 사람이었는디 니가 보았다시피 그라고 변해 분 거여. 느그 아부지 말도 못 꺼내게 하고. 부모 노릇 못한 한 때문에 더 그랬을 거여. 연락 온 것은 팔월이었는디 느그 애비가 죽은 날은 훨씬 그 앞이여. 우리가 알기는 음력 유월 스무 나흗날이다. 연락 온 날은 양력으로 팔월 열 이레였다.”
가슴에 있는 말이 어디 그뿐이었으랴.
“가만, 좀 더 들어봐. 나로서는 인상적인 여행이었으니까. 피아골 도착 하여 고흥과 구례에서 개별적으로 올라 온 몇 사람과 합류한 후 점심을 먹었어. 그리고 버스를 타려는데 빨치산 출신 여자 한 분이 주먹보다 큰 돌을 하나 들고 있었어. 무엇 때문에 그런 돌을 들고 가느냐고 했더니 집에다 두고 보기 위해서라는 거여. 그 여자분이 뭐랬는지 알아?”
“…?”
“오십이년 봄에 지리산에서 잡힌 후로 지리산을 처음 찾았다고 했어. 오고 싶어도 선뜻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이었제. 그 대신 자식들에게 지리산에 가거든 아무 돌이나 하나 주워다 달라고 했는데도 어미 속을 모르는 자식들은 그 말을 귓전으로 흘려 버렸던 모양이여. 그러다가 마침 자기가 그 기회를 만나 죽기 전까지 두고두고 볼 작정으로 돌덩이를 들고 간다고 하더군. 그러면서 그분은 나더러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어. 물론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 그러나 나름대로 그 여자분이 보고자 했던 것이 단순한 돌이 아니라 그 돌을 통해 그 시절 그때의 사람들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내 마음도 서늘해지더군. 한이었어. 죽은 사람들도 한을 품고 죽었지만 산 사람들도 긴 세월 한을 간직하고 살았던 게지. 자네처럼 한을 가진 사람도 있고.”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겠지요. 사람 사는 곳에는 크건 적건 문제는 있게 마련이고 그 문제의 발단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비롯되어 감정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투쟁은 상호 이해관계에 의한 집단적인 투쟁으로 발전하고 투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정의를 구축하고 이념의 벽을 쌓는 것 같더군요. 그럴 때 그 벽을 허물고 화합하자는 말을 하기란 보통의 용기 없으면 될 일이 아니지요. 극단적인 집단 이익에 광신하는 양쪽을 개인이 설득하기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래도 김구 선생님처럼 앞장선 분들이 계셨는데 조 선생님도 그런 분 중의 한 분이셨습니다. 작게는 마을 간의 화합을 위해서 크게는 민족의 화합을 위해서 말입니다. 당시 여수리와 영호정은 개펄에 얽힌 이해 때문이긴 했지만, 투쟁 양식은 한반도의 축소판이었다고 봅니다. 그때 조 선생님은 마을 간의 공존과 평화를 위해 애를 쓰셨는데 자기 마을의 이익이 줄어든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옳게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마을 사이의 작은 이해관계가 화근이 되어 조 선생님은 고향 마을에서도 지지와 반대를 경험하게 되었고 좀 더 넓게는 민족의 분단을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취지로 남북의 산하를 헤맸지만 결국 성사시키지도 못한 채 분단으로 이익을 얻은 주구들에게 잡혀 돌아가시게 되었다고 봅니다.”
조금 이해되는 점도 있었다. 아버지가 밖에 알려진 인물이었을지라도 여수리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때 여수리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내 생명의 시원, 내 몸과 영혼의 둥지.
희미한 맥박조차 느낄 수 없는, 식어가는 손을 잡는 순간 목포의 자취방으로 찾아왔다가 눈물을 닦으며 돌아서던 젊은 어머니의 아련한 모습, 섬마을 부둣가에 서 있던 가방을 든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고 예리하게 벼린 서러움의 날이 회한의 벽을 찔렀다.
기도원 뜰에서 돌아서는 나를 바라보던 쓸쓸한 표정과 지난겨울 병실에서 나를 부르던 소리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이어지더니 항로가 막힌 어스름한 목포의 선창에서 여수리 가는 배를 기다리던 웅크린 어머니의 영상에서 멈추었다.
강요된 절제와 금기의 울안에서 스스로 키운 원망의 멍에를 운명으로 여기고 가장 가까운 엄마의 모습조차 굴절된 시선으로 왜곡해 보았던 회한의 세월.
하지만 사람의 일상에서 언어는 감정의 벽을 허무는 공감 의식이지만,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사람 앞에서 이성적인 언어는 하얗게 바래고 통곡의 소리마저 목 안에 잠기는지.
겨우 “이렇게…, 잡을 수 있었는데, 잡을 수도 있었는데…”라는 눈물 젖은 독백만 더듬더듬 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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