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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제 2회 고창 신재효 문학상 당선작]염부:박이선

Bawoo 2023. 4. 17. 12:57

염부:저자 박이선 | 다산책방 | 2023.2.27.

[읽은 소감] 판소리를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동리 신재효 선생[신재효 판소리의 아버지]과 관계있는 지역인 전북 고창을 비롯 호남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일제 강점기, 해방 후 혼란기를 살아내고 2010년 현재를 살고 있는 주인공 염길-현재는 스님 "염봉"-과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일본 여인" 아케미"의 사랑을 밑바탕에 깔고 우리 현대사를 실록으로 엮어낸 수작. 하긴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선정된 작품이니 여부가 있을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주목한 건 작가가 우리 현대사에 대하여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대표적인 게 해방 당일-8월 15일- 사법고시를 치르던 응시생들이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시험을 볼 수 없게 되자 단체로 항의하여 합격자로 인정받고 이들이 해방 후 법조계의 중추적 인물이 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실까지 공부가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 내용은 "법률가들:저자김두식" 이란 별로 쉽게 읽히지 않게 쓴 책을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 다른 책에도 이런 내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특별히 관심을 가진 이가 아니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때문에 작가의 현대사 공부 심도가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주인공 염길과 일본 여인 "아케미"가 현실적 인연으로 맺어지는 지역인 여수를 배경으로 한 여순 사건, 이어진 제주 4. 3 사건에 대하여는 보수 측의 입장에 선 시각으로 쓴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중립적인 시각에 서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밤을 새워 읽은 탓에 내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주장의 강도가 그리 강하다는 느낌은 안 받았으니까. 아무튼 조정래 작가처럼 대놓고 특정 성향의 작품을 써서 독자의 지지를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이념 성향을 들어낼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작가는 공모상의 취지에 맞춰 작품의 배경, 인물, 사건을 맞춰내느라고 얼마나 고심했을까 하는 흔적이 작품 곳곳에 느껴지는데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림으로 친다면 너무 정형화한 느낌(?) 뭐 그런 거. 다만 내 취향일 수 있겠다. 내로라하는 기성 작가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뽑은 작품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모처럼 뛰어난 우리 작품을 앍었다.

[여담]요즘은 읽을 만한 문학 작품-소설-을 찾기가 어렵다. 책 대신 즐길거리(?)가 많은 탓이기는 하겠지만 작가들이 예전에 비해 글을 안 쓰게 되는 환경인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생해서 써봤자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니 아까운 재능을 썩힐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탓이다. 여기에다가 내 몸이 늙은 탓에 읽을 책의 선택 기준이 활자 크기가 먼저인 탓에 작은 활자로 나온 책은 읽을 수가 없어 피하는 탓도 있어 더욱 그렇다. 그다음 선택 기준은 작품의 분량인데 최소 300쪽은 넘어야 읽을 맛이 난다. 그런데 이런 기준에 적합한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블로그에 공감 표시를 한 어느 블로거 덕분에 알게 되어 다니는 도서관을 검색했더니 다행히 있었다. 인기 있는 문학 작품의 경우 계속 대출 중이라 빌리기가 쉽지 않은데. 대표적인 작품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이다. 그러나 이 작품도 글자 크기가 작다면 읽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도서관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책장을 펼쳐보니 다행히 글자 크기도 내가 읽을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래서 빌려오자마자 읽기 시작하여 밤을 새워 읽어냈다. 대략 5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그렇다면 소감은?

일단 공모 문학상에 선정된 작품은 믿고 읽어도 된다. 수많은 공모 작품 중에 최종적으로 당선된 검증이 된 작품이기에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쓸 소재, 전문 지식은 있으나 글쓰기 훈련이 안 되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소설, 인문서를 볼 때마다 겪는 짜증에서는 일단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내용인데 이것도 공모 취지에 맞춰 쓸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을 검증받은 것이니 별 고민을 안 해도 된다. 서사가 내 취향에 맞나 안 맞나만 따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공모 문학상이 많이 생겨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참고] 이 작품의 제목 "염부夫"는 소금 만드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작가는 실제로 이런 뜻으로 썼다. 그로나 생소한 낱말이어서 검색해 보니 소금 굽는 사람이란 뜻은 없다. [염부鹽釜:바닷물을 고아 소금을 굽는 큰 가마]라는 뜻은 있다. 그러니 작가가 만들어낸 조어라고 봐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소금 만드는 사람들"이란 제목이 더 좋아 보인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제목으로 정한 소금 만드는 사람들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크지 않은 쪽으로 이해했다. 등장인물, 사건의 규모(?)로 봐서는 대하소설로 써야할 것 같은 소재인데 단행본 분량으로 맞추어(?) 쓰다보니 많은 지면을 할애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때문에 등장 인물의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 고장의 풍속 등도 마찬가지로 약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작으로 개작하여 등장 인물 모두가 살아움직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아래 출판사 서평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책소개 전문은 책 제목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출판사서평

1940년 여름. 쉬지 않고 소금을 끓이는 염부와
열기를 따라 눅진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발화하는 사랑 이야기

“어머니가 일본에서 나를 낳았지만 제 아버지는 분명 한국 사람입니다.”
선운사의 스님 염봉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일본인 여성 코코네와 마주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 어머니의 자취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는 그녀를 염봉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소설의 태엽은 일제강점기를 향해 감겨 들어간다. ‘종일토록 물을 져 나르고 불을 때서 소금을 만드는 전통 염전’의 염부(鹽夫)는 뙤약볕과 소금물에 절어 밤새 불을 지펴야 하는 고된 직업이었다. 주인공 염길은 그 염부의 아들로, 고창고보(고창중학교)에 다니는 수재다. 염길은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읍내 여관을 운영하는 일본인 사장 료스케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료스케의 큰딸인 아케미와 처음 만난다. 그러나 인연을 길게 이어갈 수는 없었다. 주권을 잃어버린 나라에서 먹고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시대였다. 진로를 고민하던 끝에 염길은 교사가 되어 고창을 떠난다. 더욱 강화된 황국신민화 교육 아래, 천왕 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학생들을 검열해야 하는 굴욕과 설움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전주를 찾은 염길이 마찬가지로 교사가 된 아케미와 우연히 마주치며 분절되었던 인연은 다시 생동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에게 서서히 찾아드는 사랑이라는 감각은 불투명하고 혼탁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색채를 띠었다. 그 앞에서 시대나 출신 같은 거대한 문제는 잠시나마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러나 염길이 반일 운동에 동조했다는 의심을 받아 구속되고, 곧이어 해방을 맞자 조선에 살기 어려워진 아케미는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염길의 본가에서 구워낸 소금이 담긴 단지와 함께였다.

쌀보다도, 금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며 지켜온 한 줌의 소금,
세월이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결정체가 되다

이 작품의 성취는 대중적인 사랑의 문법을 따르면서, 일제강점기부터 미군정 때까지의 역사와 문화를 세심하게 담아냈다는 점에 있다. 소금 생산노동자의 고달픈 생애, 당시 청년들의 민족애와 진로 문제, 고창의 교육사, 해방 무렵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행방과 당시 치러지고 있던 국가시험의 난항, 정치 세력 간의 충돌, 여순 사건 등 당시의 혼란을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시대는 개개인을 배려하며 기다려주지 않았다. 대다수의 평범한 서민들이 그러했듯,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 염길은 스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현재. 염봉이 된 염길 앞에 코코네가 서 있다. 어머니의 소금을 따라 이곳에 왔다는 코코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염봉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아주 오래 머문다. 아버지의 염전은 동생 대길이 지키고 있다. 바닷가에서 소금 끓일 준비를 하며 대길은 언젠가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우리 염부들이 배운 그대로만 하믄 절대 소금은 변하지 않을 것인께 허튼 생각 말고 맘속에 똑똑히 새겨야 써.”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고, 끊어졌던 선이 다시 이어져 형태를 갖춘 실체가 된다. 다른 모든 것이 변해도 소금만은, 어디에 있든 그 귀한 맛을 잃지 않았다. 아버지 말 그대로였다. 소금은 변하지 않았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