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첫 번째 교향곡이다. 차이콥스키가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곡 작곡가임을 감안하면 공연장에서 접할 기회가 그리 흔치 않아 아쉬운 작품이라 하겠다. 하지만 음악원 수업을 갓 마친 청년 차이콥스키가 특유의 열정과 감수성으로 빚어낸 이 작품은 상당히 매력적인 가작이다. 특히 이 작품은 순수 교향곡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교향시적인 성격을 띤 표제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끈다.
이 교향곡에는 ‘겨울날의 백일몽’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마도 러시아의 백야(白夜)와 그 눈 덮인 광활한 대지 위로 떠오르는 환상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나아가 처음 두 악장에도 별도의 표제들이 붙어 있어서 음악 외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울러 마지막 악장에 차용된 가요 선율은 토속적인 색채를 한층 부각시킨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조국에 대한 애착과 동경, 그리고 환상을 노래한 청년 차이콥스키의 초상을 엿보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만만치 않은 산고를 거친 후에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차이콥스키의 동생인 모데스트는 “형의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많은 노력과 고생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순탄치 않았던 작곡 과정
1865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차이콥스키는 그 이듬해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의 화성학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개원 준비 중이었던 모스크바 음악원의 책임자는 그의 스승인 안톤 루빈스타인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었는데, 차이콥스키가 첫 교향곡에 도전한 데에는 아마도 니콜라이의 권유와 격려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재학 시절의 차이콥스키.
1866년 봄, 차이콥스키는 음악원 시절의 작품인 <서곡 F장조>가 성공을 거두자 용기를 얻어 생애의 첫 대작인 교향곡 1번의 작곡에 착수했다. 그는 밤낮 없이 스케치에 매달렸는데, 교수로서의 업무를 병행하다 보니 얼마 못 가서 체력이 바닥났다. 그런 상황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졸업 작품인 칸타타 <환희의 송가>가 혹평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다. 하지만 그는 불면증과 두통, 그리고 환각에 시달리면서도 작업을 이어나갔다. 때로는 교향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엄습해 왔지만, 그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는 작업을 일단락 지었다.
그러나 그가 안톤 루빈스타인에게 작품을 보이며 자문을 구했을 때 스승의 반응은 냉담했다. 안톤은 제자에게 작품을 고쳐 쓰라고 말했고, 차이콥스키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가을과 겨울에 걸쳐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스승의 반응은 중간 두 악장을 제외하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12월에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시연에서는 스케르초 악장만이 단독으로 연주되었는데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반면 두 달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느린악장과 스케르초 악장이 연주되었을 때는 청중이 상당한 호응을 보냈다. 이때 지휘를 맡은 이가 바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었는데, 아마 니콜라이의 호의와 격려가 없었다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에 대한 도전은 첫 단계에서 그냥 좌초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차이콥스키의 첫 교향곡은 1868년 2월 15일, 모스크바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차이콥스키는 당연히 니콜라이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그리고 그는 1874년에 이르러 작품에 추가적인 개정을 가했고, 이 최종 개정판은 1883년 12월 1일 모스크바에서 막스 에르트만스되르퍼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당시 차이콥스키는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러모로 미숙한 작품이지만, 본질적으로 보다 성숙된 작품들보다 재료 면에서 더 풍부하고 낫다’고 설명했다.
Paavo Järvi/Frankfurt Radio SO - Tchaikovsky, Symphony No.1 in G minor Op.13
Paavo Järvi, conductor
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
Alte Oper Frankfurt
2012.12.14
1악장: ‘겨울 여행의 꿈들’. 알레그로 트란퀼로
G단조, 2/4박자. 첫 악장의 표제는 ‘겨울 여행의 꿈들’이다. 먼저 러시아 풍의 제1주제가 플루트와 파곳에서 등장하여 활기찬 리듬을 타고 흐른다. 마치 트로이카(세 필의 말이 이끄는 러시아 썰매)가 경쾌한 방울소리를 울리며 눈밭을 가로지르며 달려 나가는 듯하다. 클라리넷으로 제시되는 제2주제는 한결 유려한 느낌으로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수를 머금고 있다. 때론 상쾌하고 때론 긴박하며 때론 신비롭기까지 한 겨울날의 여행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2악장: ‘황량한 땅, 안개의 땅’. 아다지오 칸타빌레 마 논 탄토
E플랫장조, 4/4박자. 둘째 악장의 표제는 ‘황량한 땅, 안개의 땅’이다. 약음기를 끼운 현악기들의 은밀한 합주로 시작되는 아다지오 칸타빌레의 느린악장으로, 오보에에서 흘러나와 점차 현악기들로 번져 나가는 러시아 풍 선율이 사뭇 애절하면서도 감미롭다. 마치 안개가 피어오르듯 몽환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매혹적인 악장이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호른 연주도 인상적이다.
‘겨울날의 백일몽’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겨울의 황량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그려내고 있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지오코소
C단조, 3/8박자. 셋째 악장은 앞선 악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환상적인 스케르초 악장이다. 세분된 바이올린 파트와 목관 사이를 오가는 주선율이 현의 피치카토와 어우러지며 경묘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자아내는 스케르초도 흥미롭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표정 풍부한 선율을 차이콥스키 특유의 춤곡 리듬에 실어 노래하는 트리오의 낭만적인 풍미가 특히 일품이다.
4악장: 피날레. 안단테 루구브레
G단조, 4/4박자. 마지막 악장은 비장한 느낌을 주는 느린 도입부로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 현악기에 흐르는 선율은 1861년 카잔에서 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불렸던 민중가요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 선율은 주부에서 제2주제로 다시 등장하는데 그때는 다분히 선동적인 느낌이다. 주부는 두 개의 박진감 넘치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여 격정적으로 전개되는데, 특히 재현부 이후의 흐름이 무척 이채롭고 인상적이다. 즉 제2주제가 재현되다가 말고 다시 도입부의 악상으로 돌아갔다가, 점진적인 고조를 통해서 더욱 거창하고 눈부신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