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백반집
문태준
논산 백반집 여주인이 졸고 있었습니다
불룩한 배 위에 팔을 모은 채
고개를 천천히, 한없이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왼팔을 긁고 있었습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 이내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나붓나붓하게 흔들렸습니다
나는 값을 쳐 술잔 옆에 놔두고
숨소리가 쌔근대는 논산 백반집을 떠나왔습니다
—시집『먼 곳』(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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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디에 있는가. 언어에 있는가. 기교에 있는가. 아름다움에 있는가. 하늘의 비의(秘意)를 잠깐 들여다본 자의 중얼거림인가. 문태준은 그런 질문에 피씩 웃는듯 하다. 시는 HD동영상보다 더 리얼한 저 짧은 영화 한 편에 꽉 차 있지 않은가. 이른 새벽부터
하루 종일 밥손님을 치르느라 고단해진 육신이, 늦게 찾아온 우중충한 손님 하나가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리다 끝내 졸음의 삼매에 들었다. 불룩한 배는 불규칙한 삶의 곡절과, 제 몸을 돌볼 틈도 없었던 고생의 이력을 한눈에 증언해준다. 졸면서도, 문득 긴장감이 돋아나 깜짝 놀라며, 살아있는 느낌을 확인하려는 듯 무의식적으로 제 팔을 긁는다. 이 장면, 무척이나 낯익은, 어디선가 봤던
어머니 혹은 아주머니의 동작이 아닌가. 끝내 잠을 못 이기고 아예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여인. 그는 음식값을 가만히 놓고는
식당 밖으로 나온다. 여전히, 손님이 가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여인의 숨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주인은 잠을 먹고 손님은
밥을 먹는, 그 허기진 생의 주름이 겹치는 시 한 편, 우린 때 묻은 이 풍경을 쉬 떠나지 못한다. <이상국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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