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안도현 시인 시 몇 편

Bawoo 2014. 6. 30. 20:43

오래된 우물

                                                     -안도현

 

                                  오래된 우물 ~ 안도현                     


뒤안에 우물이 딸린 빈집을 하나 얻었다
 
아, 하고 소리치면
아, 하고 소리를 받아주는
우물 바닥까지 언젠가 한 번은 내려가 보리라고
혼자서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물의 깊이를 알 수 없었기에 나는 행복하였다
 
빈 집을 수리하는데
어린것들이 빗방울처럼 통통거리며 뛰어다닌다
우물의 깊이를 알고 있기에
나는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오래 된 우물은
땅속의 쓸모없는 허공인 것 

나는 그 입구를 아예 막아버리기로 작정하였다
우물을 막고 나서는
나, 방 안에서 안심하고 시를 읽으리라
인부를 불러 메우지 않을 바에야 미룰 것도 없었다
눈꺼풀을 쓸어내리듯 함석으로 덮고
쓰다 만 베니어합판을 덧씌우고
그 위에다 끙끙대며 돌덩이를 몇 개 얹어 눌렀다 

그리하여
우물은 죽었다
 
우물이 죽었다고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눈앞이 컴컴해졌다
한때 찰박찰박 두레박이 내려올 때마다
넘치도록 젖을 짜주던 저 우물은
이 집의 어머니,
별똥별이 지는 밤하늘을 밤새도록 울려다보다가
더러는 눈물 글썽이기도 하였을
저 우물은
이 집의 눈동자였는지 모른다
 
나는 우물의 눈알을 파먹은 몹쓸 인간이 되어
소리친다
아, 하고 소리쳐도
아, 하고 소리를 받아주지 않은
우물에다 대고

 

 

 

*  깃털 하나 *

깃털

거무스름한 깃털 하나 땅에 떨어져 있기에

주워 들어보니 너무나 가볍다

들비둘기가 떨어뜨리고 간 것이라 한다

한때 이것은 숨을 쉴 때마다 발랑거리던

존재의 빨간 알몸을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깃털 하나의 무게로 가슴이 쿵쿵 뛴다

 


연탄 한 장 - 안도현

연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마라 *

 

 연탄을 때던 시절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 있는가 ?

 

 
안도현(1961~ ) 시인, 대학 교수
1981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 등단

<자료 출처:서정시가 있는 21세기 문학강의실'이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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