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우리 현대시

최하림 시인 시 두 편

Bawoo 2014. 7. 3. 23:24

겨울 정치(精緻)/최하림


겨울 설경 이미지..!!

큰 나무들이 넘어진다 산과 산 새에서
강과 강 새에서 마을 새에서
길을 벗어난 사람이 어디로인지 달리고
길러진 개들이 일어서서
추운 겨울을 향하여 짖는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작은 강을 따라
우리들은 입을 다물고 걸어간다
저녁 그림자처럼 걸어간다 마을도
나루터도 사라지고 과거도 현재도
보이지 않는다 날아가는 새들의
불길한 울음만 공중에 떠돌며
얼어붙은 겨울을 슬퍼하고

언덕도 상점도 폭설에 막히고
거리마다 바리케이드 쳐져
사람들이
어이아이어이 우부짖고
갈색 옷을 입은 사내 몇, 들리지 않는 소리로
진정하라고 말하고 또 다른 소리로
진정하라고 말하고 그 소리들이 모여
경루나무를 넘어 뜨린다

꽁꽁 언 새벽 여섯시, 지령(地靈)처럼 걷는
사람들 새로 우리들은 걸어간다
살얼음의 아픔이 여울마다 일어나고
흰 말의 무리가 하늘의 회오리 속으로
경천동지하며 뛰어올라 갈기를 날리고,
우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단의 사내들이
사냥개를 끌고온다 개들이 짖는다
이제는 얼어붙은 우리들의 꿈이여
눈과 같은 결정체로 삼한(三韓)의 삼림에 내리어오라
기다리는 노변애서 상수리숲도 우어이우어이
울고 겨울새도 울고 우리도 울고 있다

 

* 아침 유대 *

 

백야도의 아침

 

숲 속에서 아이들이 온다
아이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포르릉 포르릉
날며 이른 아침 들판으로
햇빛을 몰고 온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가지를
휘어잡고 가지들이 튀어오르는
탄력으로 공중에 무지개 뿌리며
저 하늘은 무엇일까? 저 나무들은?
꽃들은? 벌레들은?이라고
의문부호를 붙이면서

아이들은 떼지어 온다
푸른 숲으로부터 온다
사립문 새로 속살이 희게 드러난
길이 열리고 어머니가 가리마 탄
머리를 들고 온다

어머니와 아이들의 눈이 마주친다
어머니와 아이들이 입을 벌리고 웃는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무어라고 감정을
소리 높여 표현하지만 햇살의 강도
때문에 소리들은 날아가버리고
우리에게는 미소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소 속으로 아버지가 쇠스랑을 메고
온다 이슬 젖은 잠방이 바람으로 온다
(오오 고통스런 세상으로 오시는 아버지!)
노동으로 빛난 얼굴을 하고 아버지는
사립으로 온다 우리 가족은 모두
아침의 유대 속으로 아침의 빛을 뿌리며

온다 새로운 아이들이 따뜻한 유대 속으로
온다 무성한 시간의 숲을 헤치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포르릉 포르릉 날며

 
최하림(1939~2010) 전 시인

* 데뷔: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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