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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선생 시 모음(1)

Bawoo 2014. 7. 4. 20:32

 

             

 無   題 


雨洗山嵐盡 우세산람진

尖峯畵裏看 첨봉화리간

歸雲低薄暮 귀운저박모

意態自閑閑 의태자한한

 


산안개 말끔히 비 씻어 가니

그림 같이 드러나는 뾰족 묏부리.

저물녘 녈 구름은 낮게 깔리어

그 모습 제 절로 한가롭구나.

 

 

天王峰(천왕봉)  

 

請看千石鐘(청간천석종) : 천 석 되는 큰 종을 보고 싶다 하니

非大扣無聲(비대구무성) : 큰 종채가 아니면 쳐도 울리지 않는다네

萬古天王峰(만고천왕봉) : 만고의 천왕봉은

天鳴猶不鳴(천명유불명) : 하늘이 울려도 울리지 않는구나

 




 


德山卜居(덕산복거) - 덕산에서 살며

 

 

春山底處无芳草(춘산저처무방초) : 봄 산 아래쪽은 꽃다운 풀 없을까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 천제 사는 곳과 가까워 천왕봉만 좋아한다네.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 맨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까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 은하수 같은 십 리 물은 마시고도 남는다네.

 

 

 

靑鶴洞(청학동) - 청학동에서 


獨鶴穿雲歸上界(독학천운귀상계)고독한 학, 구름 뚫고 천상으로 돌아가고

          一溪流玉走人間(일계류옥주인간) 한 줄기 맑은 개울, 옥같은 물결 인간계로 흘러온다   

從知無累翻爲累(종지무루번위루)날개치며 날아감이 누 되는 누가 아님을 알아도

    心地山河語不看(심지산하어불간)마음속에 담은 산과 강들, 나는 못 보았다 말하리라

 

 

 

조식(曺植)( 1501년  ~ 1572년))선생 약력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경상도 삼가현 사람이으로 한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비로소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파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 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혹은 오늘날의 경상남·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백명의 문도를 길러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사후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가 북인 집권 후 1613년(광해군 7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조식선생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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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시-'카페 한시 속으로/ 약력- 위키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