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열무 삼십 단을 이고” 걸어서 읍내 장터까지 가려면 아마 목이 빠질 듯이 아플 테고, 그것을 다 팔아보았자 몇 푼 안 될 것이다. 그나마 팔리지 않아서 귀가하지 못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자식의 마음이 참으로 절실하게 표현되었다. 시가 절대적 고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 작품은 실제 체험의 소산일 수도 있고 허구의 진실일 수도 있다. 어쨌든 유년시절의 우울한 기억과 회상이 담긴 이 짧은 시가 독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할 만큼 생생한 공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보다 여기 내포된 진정성에 있다. 서른 살을 못 채우고 요절한 기형도 시인이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폭넓은 독자층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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