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녀
아내를 출근시켜 주는 이른 시간
아파트가 있는 동네 길가에
할아버지와 소녀가 매일 나와 있다.
두손을 꼬옥 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가 보다.
소녀의 엄마는 아마 직장에 다니나 보다
할아버지가 대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니
소녀는 친 손녀일까 외손녀일까
아마 십중팔구는 외손녀일 것이다
엄마들은 시댁에 자식들을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단다
시어머니들도 친 손주보단 외손주가 더 좋단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가 난
낳은 새끼인 외손주가
금쪽같이 길러낸 내 아들 뺏어간 며느리가 미워서
그 며느리가 낳은 친 손주보다 더 좋단다
며느리들은 내 남편을 낳아 준 시어머니보다
자기를 낳아 준 친정 엄마가 더 마음이 편하단다
저도 제 아들 낳아 뼈빠지게 뒷바라지 해 키우고 나면
남의 집 딸한테 뺏기는 걸 뻔히 알면서
한 치 앞도 못내다보고
그저 친정 엄마가 좋단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모르고 있는걸까?
외손주는 키워 놓으면 그만이지만
친손주는 자기 제사를 모신다는 걸
그걸 뻔히 알면서도 친손주보단 외손주가 더 좋단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새끼가 또 배 아파 낳으녀 외손주가
그런데 저 영감탱이는 뭐람
시어머니도 친정어머니도 아닌
시아버지거나 친정 아버지일텐데
왜 손주를 데리고 나와있담
아내가 일찍 세상을 뜬 것인가
아니면 아내가 대신 가라고 시킨 것인가
하기사 내 아내도
하나 뿐인 아들이 장가를 가서 자식을 낳으면
비록 시어머니이지만
친손주를 키워 주겠다고 했다
자기는 직장 다니느라
내 새끼 제대로 못 돌봐줬으니
내 새끼가 낳은 자식인
손주라도 잘 돌봐주고 싶단다
며느리가 될 아들 여자 친구의 엄마인 예비 안사돈이
외손주 보는 것을 마다하고
할애비가 될 내가 거들어줘야 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그러고 보니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손주와 함께 서 있는 저 영감탱이
꼭 나를 꼭 닮았다
나이도 엇비슷해 보이고
뭔가 살 날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그래도 측은해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그렇듯이
여유롭지는 않아도
손주 챙겨 줄 삶은
살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이다
2014. 7. 19 아내 출근길에 보게 되는 할아버지와 손녀를 보고 느낀 생각을 써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