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The Nightwatch 야간순찰>
렘브란트 <야간순찰> '메디치 코드' 버전
다룰 줄 안다’는 말. 느낌 있는 말이다.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는 포스가 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져 보면 딱히 강력한 형용도 아닐 뿐더러 외려 겸손의 냄새까지 나는 게 사실이건만, 뭔가 득도의 경지에 올랐을 때에만 쓰는 말 같은 묘한 느낌이 있다. “나는 사람을 다룰 줄 알아.” 용병술의 고수나 쓰는 말이다. “나는 칼을 다룰 줄 알아.” 검술의 달인이다. “나는 여론을 다룰 줄 알아.” 영악한 정치인 또는 모사꾼 느낌. “나는 기계를 다룰 줄 알아.” 남자라면 맥가이버, 여자라면 공대 아름이. “나는 공을 다룰 줄 알아.” 리오넬 메시. “나는 여자를 다룰 줄 알아.” 누군지 몰라도 아무튼 부러운 남자.
자, 그럼, “나는 빛을 다룰 줄 알아”라고 하면? 두말할 나위 없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다.
렘브란트 <자화상>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7.15 ~ 1669.10.4), 그는 빛을 다룰 줄 알았다. 르네상스로부터 전승된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적극 활용하여 이른바 ‘렘브란트 월드’를 건설했다. 그 세계에는 ‘빛’이 있고, 그 세계의 빛에는 ‘영혼’이 있으며, 그 세계의 빛의 영혼들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키아로스쿠로 : 빛(조명)을 이용해 대상을 강조하는 기법.
렘브란트 <유대인 신부>
렘브란트의 화풍은 기본적으로 매우 ‘사실적’이다. 사실적으로 잘 그리는 화가야 쌔고 쌘 게 사실인 터,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예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렘브란트는 ‘빛’을 이용해 사실을 ‘연출’했다. 어둠 속에서 빛은 더욱 도드라지게 마련. 빛을 받은 사람은 극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으로 연출되며, 사각의 프레임은 사연을 품은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된다. 이게 바로 빛과 어둠으로 창조된 렘브란트 월드요, 그가 ‘현대 사진과 영상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렘브란트 월드, 이 세계가 ‘빛’만으로 정의되는 건 아니다. ‘집단초상화’ 장르에서 렘브란트의 작품들은 더욱 드라마틱한 스토리 텔링 콘텐츠가 된다.
*참고 : 메디치 코드 열두 번째 비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바로가기
렘브란트 <눈이 멀게 된 삼손>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집단초상화가 대유행이었다. 돈 있는 이들이 화가를 섭외한 후 자신들의 초상화를 주문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기념사진’쯤 되겠다. 많은 집단초상화 작품들이 탄생해 길이 전해지고 있으나, 렘브란트의 작품들은 당시에도 유난히 이슈였고, 훗날 걸작으로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빛도 빛이요 어둠도 어둠이지만, 그의 작품이 다른 집단초상화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인물들이 자유롭다’는 데 있다. 목석의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졸업사진 속 고딩들처럼, 작품 중앙을 뚫을 기세로 시선을 집중하는 게 당시 집단초상화 트렌드였다면, 렘브란트 작품 속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 다른 시선, 다른 자세로 자유롭게 그려져 있다. 인물 하나하나가 “나는 살아 있소!”라고 외치며 제 이야기를 하려는 듯한 느낌. 렘브란트 월드의 시민들은 자유롭고, 하여 그들에겐 각각의 정체성 뚜렷한 영혼이 있다. 렘브란트가 당대 가장 스타일리시한 화가로 추앙받고 있는 건, 그의 작품에 ‘빛’과 ‘영혼’, 그로 인해 자연스레 생성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의 집단초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와 <야경 : 야간순찰>.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네덜란드 외과의사 조합이 주문한 작품으로, 마치 메디컬 사극 영화의 포스터처럼 풍부하고 전문적인 스토리가 있어 보이는 게 특징이다. <야경 : 야간순찰>의 경우도 마찬가지. 중심과 주변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설켜 혼재된 구도가 특징인 이 작품에는 네덜란드 민병대장 프란스 반닝코크를 중심으로 칼을 차고 총을 든 군상이 각각의 표정과 자세, 복식으로 자유롭게 위치하고 있으며, 밤의 암흑 사이로 쏟아지는 수 줄기의 빛은 머지않아 들이닥칠 전투를 예고하는 듯 화폭 전체를 긴장의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뭔가 흥미진진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한 편이 펼쳐질 것 같은 분위기. 저들 중 영웅도 나올 것이고 배신자도 있을 것이며, 삼각관계로 얽힌 두 남자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다가 후에 적을 물리친 후 극적으로 화해하는 장면도 상상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진실을 하나 일러주자면, 이 작품은 밤에 그려지지도 않았고 밤을 배경으로 한 그림도 아니며, 심지어 제목도 <야경 : 야간순찰>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경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여 작품이 갖고 있는 스토리 텔링의 포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사실이다.
렘브란트 <목욕하는 밧세바>
작품의 원제는 <프란스 반닝코크와 빌렘반 라위텐부르흐 민병대>. ‘낮’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야경 : 야간순찰>은 1800년경 후대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제목.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제목이 바뀌어버린 까닭은 무엇일까? 세월이 지날수록 작품이 어두워졌기 때문. 그렇다면 작품이 점차 어두침침해진 까닭은? 물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 <예언자 안나>
렘브란트가 즐겨 쓰던 연백에는 납(Pb)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황(S) 성분의 다른 물감과 결합해 점점 검게 변해가는 흑변현상을 일으킨 것. 흐르는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먼지 역시 계속해서 납과 화학반응을 일으킨 터, 작품은 더욱 어두워졌다. 복원해 밝아지면 시간이 지나 다시 어두워지고, 그럼 또 다시 복원하는 과정을 반복 중인 작품이다. 참고로 반닝코크 가문의 화첩에 수록된 렘브란트의 드로잉 역시 분명 ‘낮’이 배경이다.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사연 있는’ 그림인 셈. 화폭 속 인물들도, 화폭 밖 인물들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렘브란트 <도살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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