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1.
중학교 2학년 무렵
이제는 돌아가시고 안계신 부친은
큰집 격인 우리 네식구를
당신 곁으로 불러 들였다.
모친과 나 그리고 여동생 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부친과의 한집 아니 한방 생활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난 아직도 모른다.
짐작 가는 일은 좀 있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2
부친이 우리 네식구를 불러 들인 곳은
파주 문산읍에서 주내라는 곳으로
10여리 쯤 들어간 곳에 자리잡은
배산임수형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는데
이곳에 우리 가족을 비롯한 외지인들이
자리잡게 된 것은 전적으로
동네 양 끝에 자리잡고 들어 앉은
미군부대 때문이었다.
3.
부친은 이중 한 미군부대에서
군무원으로 일하시면서
여덟 대가족을 부양하셨는데
먹고 살기 힘들었던 나라 자체가 가난했던
시절임을 생각하면
대단한 능력자셨다고 봐야 되나?^^
아무튼 끼니를 거른 적은 없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는데도.
더군다나 난 상급학교인
중학교에도 다니고 있었고...
4.
마을에 들어와 자리잡은 외지인들은
대부분 정해진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 상태여서
생활이 자체가 어려워
자식들을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못보내는 집들이 태반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얘기 하려는
나보다 한살 위였던 이 소녀도
그런 집안의 맏딸이었다.
밑으로는 남동생이 한명,여동생이 3명.
소녀는 물론 하나뿐인
내 또래 남동생 조차도 중학교에 못보낸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5.
소녀의 존재를 부친과 합류하여 살게된
처음부터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소녀와 우연히 마주 쳐 소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학교에 갔다오면 아직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철부지였던 내가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방안에 던져 놓고 밖으로 내달아 나갈 때 였다.
거의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난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녀를 처음 마주쳤을 때의 놀라움을..
6.
소녀는 이제껏 보아온 내 또래 여자 아이들 중
가장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국민학교 3,4학년 그리고 파주에서
나머지 학년과 중학교에서 보아온 아이들을 통털어서...
딱 한명,
서울에서 다닌 국민학교 3학년 때
부반장하던 애가 에뻤었지만
이 소녀하고 비교하면 한참 못미친다.^^
7.
어머니는 소녀를 무척 에뻐하셨던 것 같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소녀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또래셨고
이웃해 살다 보니 저절로 친해지면서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는 사이가 되어
가장인 소녀의 아버지가 직업이 없는 상태여서
먹고 사는 기본 생활 자체가
쉽지 않은 상태였던걸 아셨던 모양이다.
8.
부친과 같이 살게 되면서
우리 가족에게 눈에 뜨이게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먹을게 풍족해졌다는 것일께다.
미군 식당의 조리사로 일하셨던 부친은
미군들에게 식사로 제공하고 남은 음식들을
마음대로 처리할 권한이 있으셨는지
매일 저녁 퇴근하실 때는
빵과 닭고기 같은 것들을
꼭 가지고 나오셨다.
9.
소녀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던 어머니는
부친이 닭고기나 건포도가 들어간
빵 같은걸 가지고 오신 날은 어김없이
소녀를 불러다 먹이곤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처음 소녀를 본 날도
아마 그런 날 중 하루였던 듯 싶고...
10.
어머니가 소녀를 얼마나 예뻐했는가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자네 딸 내 며느리로 줘'라는
얘기를 하시는걸 우연히 들었는데
그걸로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말을 들은 아직 사춘기도 아닌 나도
덩달아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와 소녀의 어머니가 알아채지 않게
속으로만...
11.
소년의 어머니는 즉답은 안하신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유를 그 당시는
소녀나 나나 철부지 어린 아이들이니
그런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12.
소녀의 어마니는
그런 시골에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엔지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는
그런 분위기의 그 당시 말로 하면
인텔리 분위기가 났었다.
소녀의 아버지도 역시 그랬고...
지금은 자식들 상급학교도 못보낼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겨우 소학교만 나온 모친과는
뭔가 격이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어린 나의 눈에도...
거기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이 되어 있을 뿐
딱히 내세울 아무 것도 없는 우리 집 형편이었으니
없이 살고 상급학교도 못보낸 딸이지만
쉽사리 오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같은 입장일지라도...
13.
간간이 보던 소녀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진 것은
우리 식구가 동네의 부친 직장 가까운 곳에
집을 장만하고 이사를 하면서
거리가 멀어지고
나도 고등학교를 서울로 다니게 되면서
집에 있는 날이 적어지면서 부터였다.
14.
소녀를 마지막 본 것은
내가 고등하교 3학년일 때
그러니까 소녀를 처음 본 뒤
5년의 세월이 지난 무렵인데
아마 그것이 파주 본가를
마지막으로 간 날이었을께다.
그때는 이미 머리가 다 커버려
부모의 품이 필요없게 된 때 인데다
같이 자취를 하던
같은 학교 1년 선배였던 사촌형이
졸업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려
자취방을 온전히 혼자 쓰게 되어
본가이기만 할 뿐
내 방도 없는 집에 가야할 이유가
별로 생기지를 않아
거의 안가게 되던 때였다.
대학입시 공부을 한답시고
시간이 쪼들리기도 했고...
15.
소녀는 내가 집에 온 것을 알고
일부러 집에를 온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집에 온 것에 맞춰
나타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소녀에 대해
안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평소 불량기가 있어 거리를 두고 지내는
고등학교 동기녀석이 하루는
내가 자기를 안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쭈볏쭈볏 다가와
그 소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네가 걔를 어떻게 알아?'물으면서
그 와중에 불현듯 떠오르는 일이
생각이 났었다.
한번은 그녀가 우리집 뒷쪽 길을 거쳐
미군 부대가 있는 산을 넘어
녀석이 사는 동네를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게 '이 동기 녀석을 만나러 가는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었다.
'병신 인물 값도 못하고 어디 애들이 없어서 이런 녀석하고...
내가 경멸하고 멀리하는 동기 녀석의 입에서
'그녀와 사귀고 있다'는 뉴앙스를 풍기는
말을 들었을 때의 나의 마음은
분노와 실망 그리고 경멸감이 같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그런 것이었다.
서로간에 제대로 말 한번 안 나누어 본
사이이긴 하지만
어머니끼리도 잘 아는 사이여서
이심전심 생각해주는 마음은
서로 사귀는 이상이었는데...
16.
난 그녀를 야멸차게 무시해버렸다.
딱 한마디 '학교 동기 아무개를 아냐고만 물었다.'
그때 깜짝 놀라며 한 그녀의 대답이
'어머! 걔 나쁜 애야'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가 녀석을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아직 사고가 성숙되지 않은 어린 나이인데다
'이성을 사귀게 되면 결혼까지 해야된다'라는
극단적으로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그때의 나에게는 그녀가 너무 실망스러웠었다.
'어떻게 내가 경멸해 마지 않는 그런 녀석을 알고 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하면 그토록 야멸차게 박대해
대문 밖을 나서게 까지 할 일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랬었다.
소년기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아직 사고가 덜 성숙된 철부지 젊은 시절 초년기였으니...
17.
이후 그녀를 본 적은 한번도 없다.
3학년 2학기때
가족들 전부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성장기 몇년을 살던 그곳으로 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히 언제쯤인가 기억은 안나지만
20대 초반 무렵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로 부터
그녀가 지금의 대학로 주변 이화동에 있는
양장점에 보조로 취직을 해서 숙식을 해결하며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그녀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18.
성장기 시절 가장 처음 본
빼어나게 예뻤던 소녀.
부모의 뒷받침이 안돼
상급학교인 중학교도 못가고
시골 동네에서 조차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모습이던 그 소녀
그래도 친하게 지내던 동네 우리 또래들 입에는
꼭 오르내리던 예쁜 그소녀.
그녀가 자신의 가치를 잘 깨닫고
내가 경멸해 마지 않는 장래가 보이지 않던
그런 불량스런 아이들이 아닌
꿈을 가지고 앞날을 설계하며 차근차근 노력하는
성실한 삶을 삶을 사는 좋은 짝을 만나서
한 세상 잘 살아 왔기를 바래본다.
그리하여,
부모의 뒷받침이 안돼
꿈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날개를 접어야 했던 한을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대물림하지 않는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살아 왔기를 ......................
2013.7.7 아침에
'[斷想, 閑談] > <단상, 한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들 한평생 잘 살아 왔을까-그랬기를....(2) (0) | 2013.07.14 |
---|---|
인주화실 이야기 (0) | 2013.07.13 |
시집과 냉면 (0) | 2013.07.06 |
동인천 어느 골목길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0) | 2013.06.30 |
외로움-혼자라는 두려움 보단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있어 좋다. (0) | 2013.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