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어느 골목길에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1.
오늘은 동인천 어디 쯤엔가 있는
삼치구이 골목 한 막걸리집에서
친구와 친구의 친구와 함께
마음이 오가는 술잔을 부딛친다.
요즈음
거의 일주일에 한번 꼴로
친구를 만나지만
만날 때 마다
늘
반갑고 즐겁고 기쁘다.
젊은 연인들
마음 보다야 못하겠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나를 바꿔 놓은 건
아마
이 친구의 나 못지 않은
따뜻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점심을
냉면 한 그릇으로 때우고
멀리 용유도 까지
갔다 온 탓인지
배가 많이 고픈 터에
허겁지겁
안주에 밥까지 먹었더니
갑자기 앉아 있기가 힘이 들 정도로
배가 부르다.
뒤늦게 합류한 여자동기와 학교 선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분신 카메라를 손에 들고
주점을 나선다.
기왕이면 멋진 그림 소재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면서...
3.
주점 주변 동네는
옛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파트는 당연히 없지만
마구잡이 연립, 다가구 주택도 안 보이는
옛 모습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동네다.
카메라에 담을 만한 모습이
쉽사리 눈에 안뜨이는게 아쉽지만
그래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주어
마음이 옛적 어린 시절로 절로 돌아가 진다.
발걸음을 쉽사리 되돌릴 수 없게...
4.
골목길로 들어섰다.
대문이 거의 엇비슷하게 마주 보며
집들이
주욱 들어 앉아 있는 골목이다.
시골에 살다
국민학교 3학년이 될 때
서울로 이사와
처음 살게 된 동네 골목길이
절로 연상된다.
걸어 보기로 했다
멀리
골목길이 끝나는 것으로 보이는 곳이
막다른 곳인지
다른 곳으로 통하는 또 다른 골목길이 있는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내가 서울로 이사와서
처음 살았던 동네가 절로 연상 되어지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
5.
내가 서울로 이사와 처음 살았던 동네는
골목 양 끝이 다른 골목으로 통하는 길이 있기는 했지만
골목 안 어느 집엔 누가 살고 있는지 다 알았었다.
골목 아랫쪽 초입에 자리잡고 있던
무지무지 큰 기와집엔
눈이 크고 예쁘게 생긴 내 또래 계집 아이가 하나 있었다.
집에서 밖에 나가 노는 걸 못하게 했는지
자주 보기는 어려웠지만
어쩌다 골목으로 놀러나왔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둘이 서로 한참을 쳐다 보기만 했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꼬맹이 소녀.
50년 대 그 시절엔 제법 많이 있었던
소실의 딸이란 소문 정도만
기억에 남아 있다.
6.
소녀가 살던 기와집 옆
다른 골목으로 통하는 길목엔
나하고 친하게 놀던 또래 남자 아이가 살고 있었다.
이 아이도 골목에 자주 모습을 안 들어 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부모 통제 아래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아득한 50년대 후반 전쟁이 끝난 지 채 10년도 안 지난 때에...
한번은 이 아이와 골목에서 같이 놀다가
해가 어둑해진 저녁 무렵에
그 아이 집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아이는 놀랍게도 대문가에 자기 방을 따로 갖고 있었다.
함께 놀고 있은 지 얼마되지 않아
밥 먹으란 그 아이 엄마 목소리가 안채에서 들려오면서
난 허망하게 집으로 발걸음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기억도 있다.
그 아이 엄마의 "밥 먹어"란 소리가
"그런 가난한 집 아이하곤 같이 놀지 말어"란
모멸감에 가까웠던 느낌을 받으면서...
.
7.
우리 집 앞 집 바로 옆 집엔 고등학교 다니는 형이 있었는데
당시엔 명문으로 알려진 고등학교에 다녔었나 보다.
골목에서 공부 잘한다고 소문이 난 형이었는데
나를 몇 번 가르쳐 보곤
모친에게 무지무지 똑똑한 아이라고 칭찬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바로 앞집엔 우리 할아버지 보다 더 늙으신
할아버지 내외가 사셨던 것 같고...
아래 집엔 천막 집 상태로 목수 아저씨네가 살았던 기억이 있는데...
아! 이 아저씨네도 내 또래 아이가 있었다.
누런 코를 질질 흘렸던
칠칠찮아 보이던 아이. ㅎㅎ
8.
골목에서 다른 골목으로 통하는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던
우리집과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집엔
6.25때 남편을 잃은 모친보다는 나이가 조금 많았던 것 같은
과부 아줌마가 자식들과 살고 있었다.
'덕순 엄마'로 불리운 이 아줌마는 생활이 어려운 탓이었는지
지금은 달동네에서 아파트 촌으로 변했을
그러나 50년대 후반인 그 시절엔
내가 가재를 잡으러 다녔던 그 산에서
몰래 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갔던 모양이다.
지금 기억으론 등에 갓난 아이까지 업고 다녔던 것 같고...
모친이 동네 또래 여인네들과
"덕순엄마 또 잡혀갔대. 불쌍해서 어떡해"라며 걱정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는데
나보다는 나이가 한두 살 위였던 것 같은 덕순이란 이름의 소녀는
어쩌다 볼 때 마다 그늘이 진 밝지 않은 얼굴에
잘 씻지 않는 탓인지 몹시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 안 계신 탓에
먹고사는 기본 문제 해결이 어려워
아마 끼니를 걸르는 날이 꽤 있었을지도 모르는
고단한 삶이었을 테니...
9.
동인천 골목길은 끝이 막힌 막다른 골목길이었다.
되돌아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딛어 나오면서
내 눈에 들어오는 대문들을 하나하나 다시 바라보며
이 대문에선 누가 뛰어 나왔고
저 대문에선 또 누가 뛰어 나와 놀았을까를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철 없던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같이 뛰어 놀았을 꼬맹이들이
자라서 사춘기 소년 소녀가 되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어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여 부부가 되어 아들 딸 낳고
평생을 해로하며 살아갔을
그런 모습들이
대문가에서 나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반백의 모습을 한 노부부가 서로 손을 맞잡고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서...
2013.유월 마지막날 아침에....
* 뒷 얘기: 마지막 부분 글을 쓰면서 가슴이 울컥해지며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아마도 세월,마음이 여린 탓이겠지요.어제는 남아프리카 역사 이야기에서 아파르헤이트 정책을 어겨 가며 죽음을 무릅쓰고 흑인들을 돕는 백인 여성'헬렌 리버만과.남아공의 국부.넬슨 만델라'의 이야기를 읽고 그랬는데...마음이 정화가 됩니다.저의 보잘 것 없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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