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미안하다 바퀴벌레야!

Bawoo 2013. 6. 11. 10:32

집사람 출근 시키고 돌아와

아직은  그림 그릴 준비를 못하는

이것저것 분주한 시간

거실,주방,작업실겸 침실인 내 방을

왔다리 갔다리 한다.

 

그 와중에 작업실 방바닥에 보이는

커다란 벌레 한마리.

요즘 날이 더워 문을 열어 논 탓에 들어온

벌레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바퀴벌레다.

 

일년에 고작 한두번 눈에 뜨이는 왕바퀴벌레

죽을 때가 된 놈들인지 잘 움직이지를 못해 내손에 늘 잡히곤 하는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꼭 한마리 뿐이다.

이번에도 한마리

금년엔 처음 눈에 뜨인 놈이다.

 

이 놈을 어찌한다?

어쨌던 처리는 해야 되는데 고민이 된다.

 

집사람 전용  파리채를 찿으니 안보인다.

벌레라면 질색을 해

여름이면 옆에 호신용으로 늘 챙기는 파리챈데...

 

다른 마땅한 물건을 찿으려 눈을 두리번 거려 보니

베란다 쪽에 털이개가 보인다.

파리채 보다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

어차피 때려 잡지도 못할꺼니

털이개로 쓸어 담듯 잡는게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철없던 국민학교 3,4학년 꼬맹이 시절

지금은 내부순환도로가 그 위로 놓인

자하문 아래 홍은동에 있는 홍제천 개울가에서

 

뒷다리를 구어 먹으면 그리도 맛이 있어

살아있는 개구리를 아무런 생각없이 잔인하게

목숨을 빼앗은 기억과

 

파주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과 들로 쏘다니며 놀다가

앞을 지나가는 온 몸이 샛빨간 뱀을 보고 너무도 놀라

눈에 보이는 돌맹이를 있는대로 다 줏어 던져

잔인하게 때려 죽였던 기억이

성인이 되어 돌이켜 생각해보니

못내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억으로

특히 개구리에게 더 남아 있는데

 

눈앞에 보이는 바퀴벌레를

처리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창밖으로 던져 버려 내 마음만 편하자고 하기엔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벌레라는 생각에

변기에 던져 넣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만다.

 

아떻게 보면 그냥 죽이는 것 보다

더 잔인한 짓일 수도 있는데

내 마음 편하자고 한 짓이

살아 있는 채로 변기에 던져 넣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변기물은 왜 이리도 속을 썩인담.

물을 두세번을 내렸는데도 바퀴벌레는

그대로 변기에 남아 있다.

그것도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날개를 움직이면서...

 

미안하다.바퀴벌레야!

내 눈에 안뜨였으면 네 천수를 다 할수도 있었을텐데

마음으론 안 좋은 척 하면서도

결국은 네 목숨을 뺏는 나는 뭐냐.

 

미안하다.바퀴벌레야!

어차피 너는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벌레이니

나도 어쩔수가 없었다.

그저 내눈에 안뜨였어야 했었는데

 

정말 미안하구나.바퀴벌레야!

저 세상에서 나를 원망은 하지 말아다오.

 

철없던 어린 시절

아무 생각없이 목숨을 빼았었던

개구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안 좋지만

뱀이나 너는 우리 인간들이

그리도 싫어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튼 미안하구나 바퀴벌레야!

정말  미안하구나.

정말 정말......

 

                                                 2013.6.11(화) 아침 바퀴벌레를 잡으면서 느낀 생각을 적어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