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그녀들 한평생 잘 살아 왔을까-그랬기를....(2)

Bawoo 2013. 7. 14. 13:52

* 두번째 이야기-짝사랑*

 

1.

내게 사춘기가 찿아 온 것은

고등학교를 갓  들어간 해 봄이었다.

 

이 때 처음  본 한 소녀에게

첫눈에 반해 

2년간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절절한 짝사랑으로

이어졌었다.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말한마디 건네 볼 용기만 있으면

소녀도 싫다고 하지 않았을

그런 관계인 듯 싶기도 했는데

 

수줍고 내성적이고 용기없는 성격 탓으로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사춘기 한 시절을 보내야 했었다.

참으로 남자답지 못한 바보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2.

소녀를 처음 본 것은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느라

열차 통학을 하게 되면서 였다.

 

지금의 파주 문산에서 통근 열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소녀도 같은 열차를 같은 역에서  타고

서울까지  다녔었다.

 

3.

소녀는 그때 

중학교 1학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짜리 사춘기 소년이

중학교 1학년 짜리 소녀에게

마음을 홀랑 빼앗겨 버린 것이다.

 

태어나 두번째로 본 예쁜 소녀

그러나 마음은 첫번째로 홀랑 빼았아 간 소녀

 

4.

소녀도 내가 싫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같이 열차 통학하던 동네 친구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노라면

소녀는 늘 내눈에 뜨이는 자리에 자리잡고

앉아 있곤 했던 걸 보면.... 

 

5.

소녀 때문에 열병을 앓는 나를 보고

같이 서울로 통학을 하던 동네 친구는

'성공하면 여자는 얼마던지 있으니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말하며

모른척 하라고 했었는데

나보다 일찍 철이 든 그 친구의 말이

그땐 무척 옳은 것 같이 생각됐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친구의 진심이 어디 있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으니

흘러온 세월 탓에 나도 많이 노회해졌나보다.^^

 

5.

이런 나도

딱 한번 용기를 내어

소녀 앞에 앉아 본 적이 있다.

 

방과후 서울역 구내에서 기차를 갈아 타려고

문산행 기차가 도착하는 곳으로 가보니

웬일인지 소녀가 먼저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플랫홈엔 소녀와 나뿐이 없었으니

내가 말한마디 건네 볼 용기와 배짱만 있었어도

이런 글을 쓸 사춘기 시절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플랫홈에서는 말한마디도 못 건네보고

그래도 용기를 낸 답시고

열차 안에서 소녀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

소녀의 반응이 있기만을 기다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녀도 사춘기였고

그 대상이 나였을 수도 있었을테니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슴에도

말한마디 못건네는 나를 보고

소녀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까 싶다.

'뭐 이런 바보같은 놈이 있나'라고...

 

6.

60년대 그시절에도

불량하고 문란한 청소년들은

얼마던지 있었다.

당장 내 주변만 해도 문란하게 놀아나던 동창놈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

 

반면에 나같은 순진하다 못해

좋아한다는 의사 표현하나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바보스런 애들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 내가 제일 바보스러웠겠지만... 

 

7.

소녀에 대한 짝사랑 열병의 극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미안하기 그지없는

소녀와 국민학교 동창인 동네 후배의 앨범에서

소녀의 사진을 가지려고 

그녀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 한장을

통째로 찢어버린 사건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고 동네 후배는

선배인 나에게 대놓고 뭐라고는 못했으나

후배의 모친은 집까지 찿아와서

'얌전한 햑생인 줄  알았는데 이럴 줄 몰랐네'하며

모친과 나에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가셨는데

후배에게 사과는 했지만

열차에서 후배를 볼 때 마다 난 쥐구멍,

후배는 꼭 째려보고 지나가곤 했다.

 

후배는 통학 기간이 길어지면서  

열차간 불량학생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것 같았는데

만약 내가   동네선배가 아니었으면

되게 맞았을지도 모르겠다.ㅎㅎ

 

8.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2학년 여름 방학을 시골 할아버님 댁에서 보내고

개학 무렵 집으로 돌아 오려고

기차에서 내렸는데 소녀가 서울을 가려는지

책가방을 들고 저만치 서 있는 것이었다.

 

학교에 다닐 땐 매일 볼 수 있었던 소녀의 모습을

방학을 해서 못보게 된 탓으로

시골에 있는 내내 소녀 생각으로 날밤을 지새웠는데

막상 현실에서 소녀를 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었다.

 

소녀가 행여 볼세라 부랴부랴 개찰구를 빠져 나오면서도

'너 참 못난 놈이로구나'하며 스스로를

마구 질책했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9.

소녀를 향한 열병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잦아들 무렵인

 3학년 초인지 2학년 말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서로 말은 안트고 지내던

그러나 나만큼 얌전하고 내성적이면서

내가 봐도 잘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던 동기가

어느날 내게 다가와 소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오늘 덕수궁에서 소녀와 헤어졌다고'

 

평소 말한마디 안 주고 받던 사이인 그 동기가 느닷없이 왜

나에게 와서 소녀와의 관계를 이야기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소녀를 좋아하고 있는 내 마음을 들킬까봐 자세히 물을 수도 없었고...

 

'혹 그녀가 나를 의식해서 헤어지자고 한 것은 아닐까'하는

내 마음대로의 상상은 해봤었다.

서로 경원하여 평소 말한마디 주고 받는 사이도 아닌 그 동기가

느닷없이 내게 다가와 그 소녀의 이야기를 한 것도 그렇고....

 

10.

이후의 소녀에 대한 소식은 전혀 모른다.

 

3학년이 되면서 열차 통학을 안하고 자취를 하다

2학기엔 식구 전부가 서울로 이사와 버려

자연스럽게 소녀를 볼 기회가 없어져 버린 탓이다.

 

훗날 같이 열차 통학을 하던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 친구에게

소녀에 대해 물으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었고

소녀와 만났었다는 학교 동창은

내게 와서 소녀 애기를 할 때가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11.

소녀가 중학교 1학년이고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사춘기 시절

첫 눈에 반했으나 남자답지 못한 성격 탓에

말한마디 못건네보고

성장기 2년을 가슴앓이 하게 했던 그 소녀가

어떤 모습으로 한 세상 살아 냈을지 많이 궁금하다.

 

소녀의 모습을 못 본 중학교 3학년 부터

고등학교 3년이란 기간의 학창 생활은

대충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지만

그 이후의 성년기는 전혀 가늠이 안된다.

 

나는 용기가 없어

말한마디 못건네보고 가슴앓이로 끝냈으나

나하고 비슷한 성격의 동창도

비록 나중에 헤어짐을 당하긴 했으나

소녀에게 프로포즈를 해서

만났었다고 하니

 

보다 성숙한 소녀가 되었을 여고 시절엔

더  많은 남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소녀에게 관심을 갖고 대시를 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말한마디 건넬 용기가 없어 짝사랑으로 끝내고 만

사춘기 시절 바보같은 내 첫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녀가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를 보고

연모의 마음을 갖는 많은 남성들 중에

 

그녀만을  위해 모든 것을 다거는

좋은 남자를 만나

한 평생 잘 살아 왔기를 바래본다.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사춘기 시절 나를 가슴앓이 하게 했던

그 소녀.

그 소녀가 문득 보고 싶어진다.^^

 

                                           2013. 7.14 일요일 장마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는 아침에

 

*뒷 얘기:소설 습작을 하던 20대 시절에 단편소설의 소재로 수도 없이 원고지를 찢으며 머리를 쥐어 짰던 소재인데 재능 부족으로 한참 뒤늦은 60중반에 이런 잡문 형식으로 마무리를 하고 맙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선택권은 없으니 좋은 집안,훌륭한 재능을 타고 나는 것은 진짜 신의 축복이란 생각을 절로하게 만듭니다.어느 분야이던 간에 재능과 노력이 함께 해야 하는데 노력은 할 수 있으나 재능은 없으니..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은 그래서 생겨난 것 아닐까요?타고 난 복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 긍지를 갖고 살아라.한 세상 살다 가는데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 것이니 남하고 비교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