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그녀 한평생 잘 살아 왔을까? 그랬기를...(3)

Bawoo 2013. 7. 20. 15:37

*세번째 이야기-플라토닉(Platonic)

 

1.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해 봄

내가 자취하고 있던 집 이웃집에 자매가 세를 들어왔다

신혼인 만삭 언니와 고등학생인 동생

 

2.

이웃집은 내가 차취하고 있던  주인집과

인척간이라고 했지만

그 당시엔 아직 시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대문을 걸어 잠그고 살아

주인집 아주머니도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하며

왕래를 거의 안하는 이상한 집이었다.

 

3.

그집엔 농사를 짓는 아저씨 내외와

5남매가 안방 건넌방 그리고 다락방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그중에 건넌방을 세를 준 모양이었다.

 

4.

5남매의 세번째가 나와 동갑이었으니

위로 둘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정확한 나이는 잘 모르겠고

집안이 어려운 탓에

내 동갑내기 까지 위로 셋은

모두 상급학교인 중학교를 못다니고

남자 둘은 농사일을 하고

누님뻘인 여자는

가발 공장엘 다니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 둘은

중학교 2학년인 사내 그리고

갓 중학생이 된 여자애.

 

5.

누님은  미인은 아니었지만

무척 착하게 생긴 얼굴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름도 양순이었다^^

난 이 누님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이성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장남이라 누님이 없는 탓에

막연히 누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이 누님한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모르겠다.

 

6.

이 누님이 나한테 누나를 한명

소개시켜 주겠다고 다니는

가발공장에서  동료를 데리고 와

나를 집밖으로 불러 낸 적이 있다.

 

7.

입시 공부를 한답시고

한참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갑자기 돌멩이가 안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누군가 하고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옆집 누님이 웬 여자와 같이 서서

나를 보며 방글빙글 웃고 있는 것이었다.

 

8.

누님과 같이 온 여자분은

한마디로 너무 못생겼었다.

보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실망을 했었는데,

 

'여자들은 참 이상하다'

왜 자기보다 못 생긴 여자를 데리고 와

소개를 시켜 주려는 것인지

차라리 본인이 누나 노릇을

해주면 좋았을 것을

 

자기는 형제가 많아서 안된다며

기껏 데리고 온 것이

한눈에 봐도 마음에 안들만큼

못생긴 모습이라니...

 

9.

하기사 그 누님이 내게

누나를 한명소개시켜 준다는 것이

연상의 이성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는 뜻이 아닌

자취하고 있는 내가 안스러워  보여서

빨래라도 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였을테니

거기에 맞는 사람을 고르다 보니

그리 된건지는 모르겠다.

 

10.

암튼 그 사건으로 괜시리 둘 사이만

서먹해져 버렸다.

평소 교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시골 출신이고 마음씨가 착해서

오다가다 마주치면

눈 인사나마 다정하게 주고 받는 사이였었는데...

 

11.

이웃집에 이사온 자매를 볼 기회는

어떻게 생겼는가 궁금증은 커져 가는데 반해서

전혀 주어지지가 않았다.

 

서울이라곤 하지만 변두리라 시골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집은 대문은 한낮에도 늘 꽉 닫혀 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금증은 더했는데

이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역할을

갓 중학생이 된 주인집 외동딸이 해주었다.

 

이 꼬맹이 소녀는 자기하고 친척이면서 동갑내기인 여자애가

이웃집에 살고 있는데도 전혀 왕래를 안했었는데

 

이 자매가 이사온 뒤론 신기하게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이웃집 정확히 밀하면 자매네 방을

드나드는 것이었다.

 

그리곤 나한테 '무지무지 예쁘게 생겼다'고 말하며

호기심을 자극시켰었다.

 

12.

주인집 꼬마 아가씨는

내 얘기도  이웃집에 자매한테 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두 자매가 대문 밖으로  얼굴만 내밀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을리가 절대 없지 않은가?

 

13.

두 자매의 모습을 이렇게 나마 처음본게

이웃집에 이사를 왔다고 들은 뒤로

얼마가 지나서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한창 봄이 무르익었던 때인것 같으니

처음 얘기를 들은 뒤로 한달 정도는 지난 뒤이지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이 들 뿐...

 

13.

자매는 둘 다 빼어나게 예쁜 모습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신혼이고 임신중이었던 언니는

신랑이 모 신문사 기자였는데

열차에서 한눈에 반한 신랑이

적극 프로포즈를 해서 결혼하게

되었다는 정도이니 이것으로

미모가 얼마나 빼어 났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로서는 당연히 언니 보다는 동생에게

시선이 많이 갔지만 지금 기억으론 언니가

조금 더 예뻤던 것 같다.^^

 

15.

동생인 소녀는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모 여자 상업학교 1학년생이었다.

당시 야간을 다녔는데

고향이 당진인 그녀가

왜 서울로 와서 야간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는지는

그 당시엔 생각을 해보질 않았다.

워낙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이였기도 하지만

나 역시 별볼일 없는 실업계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

그런걸 생각할 입장도 아니었다.

 

16.

소녀와 인연이 맺어진 건

순전히 소녀의 의도가 작용됐던게

아닌가 싶다.

 

입시 공부를 하던 나는 학교가 파하면

시내에 있는 학원을 다녔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등교하는 소녀와 같이 버스를 타러

가게 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17.

처음에는 참 난감했다.

 

자취집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는

종점까지는 걸어서 10여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는데

그 거리를 저만치 앞쪽에 걸어가는

소녀를 보면서 가야 하는 모양새의 당황스런 나날이

반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18.

고등학교 1학년 처음

사춘기가 찾아 왔을 때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낯선 사람들 앞에는 한발짝도 못나서는

지극히 내성적이고 용기없는 순진한

사춘기 소년에 지나지 않는데

 

눈앞의 너무도 예쁘게 생긴 소녀의 모습은

자꾸만 내 마음을 흔들었다.

 

19.

거기다  고등학교 1학년때 마음을 빼았겼던 그 소녀에 비해

이 소녀는 보다 적극적이었다.

 

내가 마음에 안들면 조절할 수도 있을 등교 시간을

꼭 내가 자취집 대문을 나설 때에 맞춰 지나가면서

내 앞에서 걸어 가는 나날을 반복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엔 주인집 꼬마 소녀가

나에 대한 얘기를 엄청 좋게 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20.

그렇다고 용기없고 소심한 성격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마 지금 같으면

'학교가냐? 나도 학원 가는데 버스 타는데 까지 같이 가자'정도의 말은

쉽게 했겠지만 시대도 시대인데다가

성격까지도 지극히 내성적이었으니....

 

21.

2학년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때도 종로에 있는 영어 단과반을 다니고 있었는데

한 여학생이 내가 무척 마음에 들었었나보다.

 

친구랑 둘이 같이 다닌 그 여학생은

내가 반할 정도로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는데

나한테 볼펜을 빌려 달라며 말을

걸어 왔는데도 난 아무 말도 못했었다.

 

나 스스로를 아직 감당 못하는 성격인 탓에

그 여학생에게 해줄 아무 말도

생각나는게 없었던 탓이다.

 

22.

이런 성격인 내가

그날은  무슨 용기가 났었는가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린 옆집 여학생을 뒤 따라 내려

'시간내서 만나자고'했으니...

 

그녀는 '어디서 만나냐고'했고

그때 내 대답이 '저녁에 집앞'이라고 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참 어리석기 그지없는 이 말,

 

당연히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

바로 옆집에 살고 있고 내 방에서 보면 그녀가 살고 있는 방이

담 너머로 훤히 보이는 지척지간임에도 

편지만을  서로 주고 받는 이상한 사이로 발전이 되었다.

만나자고 하면 얼마던지 만날 수 있는 사이임에도....

 

23.

그러나 난 그녀를 만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 자신있게 먹을 용기조차 없는

성격인 탓에 도저히 그녀보고 만나자고 할 수가 없었다.

 

24.

편지는 주인집 꼬마 아가씨가 메신저 역할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지게 하는

철부지 성장기 시절의 한 추억이지만

그때는 참 절절한 마음이었다.

그 시절에도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아이들이

주변에도 얼마던지 있었건만...

 

 25.

온 마음을 다 담은 편지는 주고 받았으나

바로 이웃해 살면서도 같이 빵집 한번 안가본 사이인

그녀와의 관계는 봄이 끝나 갈  무렵인가 

그녀 언니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렸다.

 

26.

그녀네가 이사를 가던 날

난 내다 보지를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바보스럽고 용기없는

졸장부 행동이었는데

그녀를 볼 자신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그리고 우리 사이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를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나약하기 그지없는 한심한 성격을

그때는 가지고 있었다.

 

27.

이후의 그녀 소식은 전혀 모른다.

 

여름방학 무렵

시골에 있던 우리 가족도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나도 가족들과 합류를 하느라 자취집을 나오게 됨에 따라

그녀와의 연결 고리인 그집에 그대로 사는 것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28.

2학기 개학후 인사차 들른 자취집에서

주인집 꼬마 소녀로 부터

'언니가 방학중에 한번 다녀갔다'는 말을 들은 것이

그녀에 대해 들은 마지막 소식이다.

 

29.

고등학교 3학년 봄 불과 2~3개월의 짧은 기간,

그녀에게 쏟아부은 진실된 마음은

순수하기는 했으나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수 있는

용기를 못 갖춘 성장기 나약한 소년이었기에

지금은 아름다운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30.

나의 성격이 보다 남성스러워

그녀와의 현실적 만남을 지속했더라도

그것이 평생을 깉이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세월을 지내 오면서 알았기에

지금은 오히려 성장기 시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감사하다.

 

31.

이 땅 어딘가에  살면서 노년기에 접어 들었을 그녀가

한 세상 잘 살아 왔기를 바래본다. 

 

그리하면서 성장기 시절

한 순진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던 한소년이

자기를 참 희안한 방법으로 좋아 했던 것을

가끔은 미소를 지으며  기억해주기를....

 

                                                                                 2013.7.20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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