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어느 여류 화가 이야기

Bawoo 2013. 7. 17. 22:42

1.

아침에 빈 속에 토마토를 먹은게 잘못된 탓인지

속이 좀 쓰린 듯 하기에

속쓰림 방지용 액상 위장약을 먹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는지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고 머리 한쪽이 편치를 않다

지난 토요일인가 걷기 운동을 나갔다가도 그래서

몇번을 쉬면서 집엘 왔었는데

오늘도 또 그렇다.

 

2.

위기능이 약해 항상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액상 위장약은 별로 먹을 일이 없을 정도로

관리를 잘 해왔고 어쩌다 먹을 때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지리한 장마 탓으로 약이 변질된 것인가

속 쓰림은 멎었지만 몸 컨디션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3.

기운이 없어 그리던 그림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었었나보다.

머리가 아직 편치 않은 상태로 눈을 떠 시간을 보니

헐~ 1시간 정도는 잠을 잔 것 같다.

 

4.

정신이 멍한 가운데 핸드폰을 보니 문자가 들어와 있다.

평소 왕래도 없는 고교 동창 모친 부음 통지 문자 하나

그리고 헉~

요즈음 연락하고 지내는 실력파 여성 작가 문자가  또 하나.

 

5.

내용인즉슨 

'오늘 시간이 되니 얼굴 한번 볼 수 있냐'는 얘기.

문자를 본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어지간해선 시간을 내기 어려운 그녀를

시간날 때 보자고 요청한건 나였고

그 청을 받아 들여 모처럼 연락을 해온건데

몸 상태가 숙녀를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기엔

도무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으니...

 

6.

시계를 보니 그녀가 요청한 시간까지는

몇시간의 여유가 있어

사정을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는 했으나

마음은 영 편치를 않다.

불과 몇시간 내에 몸컨디샨이 회복되어 움직이기엔

이미 틀렸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7.

내가 그녀를 알게 된지는 햇수론 15년은 되는 것 같다.

그림 공부을 하겠다고 다니던 직장을 조기 퇴직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배우러 다니던 시절

그녀는 지금도 생존해 계신 모 원로화가가 지도하는

채색화  교실의 수석 문하생이었다.

 

선긋기도 제대로 못하는 쌩초보 수준이었던 나에게

그녀는 젊은 시절 대학 입시 공부하러 1년을 다닌 학원에서 본

나보다 엄청 실력 좋은 친구들을 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머리를 암만 끙끙대고 쥐어짜도 못 풀던 수학문제를

'뭐 이런 문제를 가지고 그러냐'는 듯이 쉽게 풀어내던

그 친구들 특히 내 짝꿍.

그녀가 그런 친구들을 연상시켰었다.

 

8.

그러나 먹 위주의 그림 공부를 하면서

색에 대해 알려고 간 그곳에서도

잘 적응을 못하고 그만둔 뒤로

그녀와는 따로 연락같은건 없이 지냈다.

몇년전에 인사동에서 우연히 만났다 헤어졌고

금년 봄에 한번 더 보게되면서

나의 요청에 의해 연락이 오가게 된 것이다.

 

9.

그녀는 그림 실력이 내가 보는 한 발군이다.

특히 색을 만들어 내는 솜씨는 내가 경탄해 마지 않는다.

그녀와 계속 연락이 이어지기을 원한 것도

이런 그녀의 실력을 조금이나마

배울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일방적으로 

내가 강요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10.

처음 내가 연락을 이어 가자고 하는

요청을 했을 때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이었었다.

 

퇴직후 재산 관리 문제로 잠시  힘들어 했던 시절

아들에게 넘겨준 내 전화로 게속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안됐던 데 대한 서운함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이미 기성 실력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녀의 입장에서 볼 때

아직도 무명으로 있는 나의 모습이

좀 초라하게 보여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됐었다.

 

11.

그러나  그녀와의 몇마디 대화중에

그녀가 나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고 싶은 욕구도 생겼고

무엇보다도 색에 관한한

사춘기 시절부터 이어져온 컴플렉스를

그녀를 통해 해결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계속 한번 만나자고 종용을 했었다.

 

나는 '당신의 재능을 사랑하는 사람일 뿐 이성으로서의 접근은 아님'을 

새삼 강조도 하고 또 내 블로그가 있으니

한반 들어와  보라는 이야기도 하면서...

 

12.

그녀는 놀라운 재능과 실력을 갖고 있으나

그림을 그릴 시간이 별로 많지를 않다.

아니 내기가 어렵다는게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남편이 하는 생계유지형 사업을 거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들이면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붓을 못잡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무척 부러워 한다.

체력이 되는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도 되는

나의 여건을....

 

13.

그녀의 재능을 사랑하고 아끼는 나는

마음으론 그녀가 마음껏 그림만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나 나의 지금 여건도 집사람이 만들어 준

내 능력이 아닌 것이기에

나의 그녀에 대한 마음은 생각으로만 머물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기만 할 뿐일테고...

 

14.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피울 수 있는

좋은 여건이 하루 빨리 만들어 지기를 바래 본다.

그래서 시간이 없어 소품도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 내는 지금을 벗어나

미술계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작들을

해아릴 수 없이 많이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2013.7.16,17 밤 이틀에 걸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