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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노래한 한시 모음

Bawoo 2014. 9. 24. 22:01

 

 

蒼軒秋日(창헌추일)

                                                범경문(范慶文)

 

歸雲映夕塘(귀운영석당) : 가는 구름 저녁 연못을 비추고

落照飜秋木(락조번추목) : 저녁노을 가을 나뭇가지에 넘쳐흐르네

開戶對靑山(개호대청산) : 창을 열어 푸른 산을 마주대하니

悠然太古色(유연태고색) : 유연히 옛 모습 그대로 일세

 

 

범경문(范慶文) :1738(영조 14)∼1800(정조 24). 조선 후기의 시인.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유문(孺文), 호는 검암(儉巖). 중인출신.

가계와 생애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살았던 곳의 위치만 전해지는데, 아침마다 배오개시장〔梨峴市)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장안의 제2교(橋), 즉 광교(廣橋)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17, 18세 때에 문장으로 이름나 진신대부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었고, 그들로부터 장자(長者)의 풍모를 지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여항시인인 김시모(金時模)·김진태(金鎭泰) 등과 교유하며 창작활동을 하였으며, 이밖에 최윤창(崔潤昌)·마성린(馬成麟)·

백경현(白景炫) 등과 사귀었고, 손아래인 천수경(千壽慶)을 비롯한 이른바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구성원들과도 관계를 맺었다.

그가 18세 되던 해에 지은 시 「만음(謾吟)」 중에 “애석하다, 10년 동안 밑바닥 일만 이루었구나.”라고 한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학문을 하였으며 그의 의식은 양반계층의 그것과 다름없었음을 알 수 있다. 밑바닥 일이란 시문장을 지칭한 것이다.
음주를 좋아하고 성격이 소광(疎曠)하여 당시 이름 있는 시인들과 수창하였으므로, 그가 남긴 시작품의 다수가 수창시이다.

 저서로 『검암산인시집(儉巖山人詩集)』 2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검암산인시집(儉巖山人詩集)』
  • 『풍요삼선(風謠三選)』

* 여항문학:  조선 선조 때부터 시작된 중인(中人), 서얼(庶孼), 서리(胥吏)

출신

의 하급 관리와 평민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학.

                  여항문학을 한 시인을 여항시인(위항시인)이라고 하며 임준원, 정내교, 이언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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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秋(가을)

                                                            운곡 원천석

 

殘暑逼軒楹(잔서핍헌영) : 남은 더위가 난간을 핍박하건만

滿野秋光天降祥(만야추광천강상) : 들에 가득한 가을빛이 상서로운 조짐인지

雨過餘熱遞新(우과여열체신량) : 비가 지나자 남은 더위가 서늘하게 바뀌었네

露華初重夜生(로화초중야생량) : 이슬 꽃이 막 내려 밤이면 서늘해지네

天衢漂渺氣凝祥(천구표묘기응상) : 아득한 하늘 거리에 상서로운 기운이 어리어

河漢無波夜色(하한무파야색량) : 은하수는 물결 없고 밤빛은 서늘하네

蟬老燕歸風颯颯(선로연귀풍삽삽) : 매미는 늙고 제비는 돌아가 바람도 쓸쓸한데

虫弔藜床序已秋(충조려상서이추) : 명아주 평상에 벌레 우니 벌써 가을인가

聲緊孤梧金井畔(성긴고오금정반) : 오동나무 우물가에 벌레소리 들리자

中秋氣候稍淸寒(중추기후초청한) : 한가위 날씨가 차츰 맑고 서늘해져

月從山頂湧銀槃(월종산정용은반) : 달은 산꼭대기에서 은 쟁반으로 솟아오르네

九月九日天光淸(구월구일천광청) : 구월 구일에 하늘빛이 맑아

菊澗楓林又一秋(국간풍임우일추) : 국화꽃 단풍나무가 또 다시 가을일세

 

 

원천석 [元天錫](1330(충숙왕 17)~ ? )고려말 조선초의 학자·문인.

자는 자정(子正), 호는 운곡(耘谷). 원주(原州) 아전층의 후손으로 종부시령(宗簿寺令)을 지낸 윤적(允迪)의 아들이다. 문장과 학문으로 경향간(京鄕間)에 이름을 날렸으나, 출세를 단념한 채 한 번도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은사(隱士)로 지냈다. 군적(軍籍)에 등록될 처지가 되자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진사(進士)에 합격했다. 그는 이방원(뒤의 태종)의 스승을 지낸 적이 있어 태종이 즉위 후 여러 차례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고, 치악산에 있는 그의 집으로 친히 찾아와도 자리를 피했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야 백의(白衣)를 입고 서울로 와 태종을 만났다고 한다. 비록 향촌에 있었으나 여말선초의 격변하는 시국을 개탄하며 현실을 증언하려 했다. 만년에 야사(野史)를 저술해 궤 속에 넣은 뒤 남에게 보이지 않고 가묘(家廟)에 보관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증손대에 와서 사당에 시사(時祀)를 지낸 뒤 궤를 열어 그 글을 읽어보았는데, 멸족(滅族)의 화를 가져올 것이라 하여 불태웠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운곡시사 耘谷詩史〉가 전한다. 이 문집은 왕조 교체기의 역사적 사실과 그에 관한 소감 등을 1,000수가 넘는 시로 읊은 것으로 제목도 '시사'(詩史)라 했다. 야사는 없어졌으나 이 시가 하나의 증언으로 남아 있어 후세의 사가들은 모두 원천석의 증언을 따랐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로 시작하는 고려왕조를 회고하는 시조 1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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寒鴉栖復驚(한아서부경)

                                               김시습 

 

 

楓葉冷吳江(풍엽냉오강) : 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蕭蕭半山雨(소소반산우) : 우수수 반산엔 비가 내리네.

寒鴉栖不定(한아서부정) : 갈가마귀 보금자리 정하지 못해

低回弄社塢(저회롱사오) : 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거리네.

 

渺渺黃雲城(묘묘황운성) : 아스라히 먼지 구름 자욱한 성에

依依紅葉村(의의홍엽촌) : 안타까이 붉은 잎 물들은 마을

相思憶遠人(상사억원인) : 먼데 있는 그대가 그리웁구나

聽爾添鎖魂(청이첨쇄혼) : 네 소리 듣자니 애가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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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시-카페 ' 한시 속으로'/ 프로필 및 용어 해설-다음 백과 및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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