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雨中有感(추일우중유감)
유숙(柳淑)
他鄕作客頭渾白(타향작객두혼백) : 타향에 나그네 되어 머리가 다 세었거니
到處逢人眼不靑(도처봉인안불청) : 가는 곳 만나는 사람마다 눈길이 차가워라.
淸夜沈沈滿床月(청야침침만상월) : 맑은 밤은 깊어 가고 달빛 가득한 상 아래
琵琶一曲鄭瓜亭(비파일곡정과정) : 한 곡조 비파 타노니 정과정곡 일러라.
* 참고 *
-鄭瓜亭曲(정과정곡) : 고려 의종 때에 정서(鄭叙)가 동래(東萊)로 귀양가 있으면서 임금을 생각
하여 비파를 탔는데, 그 곡조를 정과정곡(鄭瓜亭曲) 이라 한다. 과정(瓜亭)은 정서의 호(號)다.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순부(純夫), 호는 사암(思菴). 아버지는 태상경(太常卿) 성주(成柱)이다. 1340년(충혜왕 복위 1)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사록(安東司錄)으로 임명되었다. 1342~51년에 원나라에 가 있었던 강릉대군(江陵大君:공민왕)을 4년 동안 시종했다. 1348년 어머니 병환으로 고려에 왔다가 다시 원으로 가서 1351년 즉위하기 위해 돌아오는 공민왕과 함께 고려로 왔는데, 오는 도중 랴오양[遼陽]에서 좌부대언으로 임명되었다. 그뒤 우대언·좌사의 대부로 승진되어 국가기밀에 참여하다가, 친원세력으로 권세가이던 조일신(趙日新)에게 모함을 받았다. 1352년 6월 공민왕을 북경에서 수종했던 공으로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이 되었다. 조일신이 난을 일으키고 주살당한 뒤에 다시 기용되어 대언·판전교·판도판서·전리판서 등을 거쳐 1358년 동지추밀원사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지추밀원사로서 1356년에 기철(奇轍)을 죽였던 공으로 인해 안사공신호와 철권을 받았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 때 왕의 남행을 결정했고, 추밀원사·한림학사·승지·동수국사를 지냈다. 홍건적의 난이 평정된 뒤에는 안우(安祐) 등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고 동경유수로 나갔다. 얼마 뒤 다시 중앙으로 올라가 지도첨의로 임명되고 충근절의찬화공신호를 받고 평리로 승진했다. 그뒤 사퇴할 것을 청하여 서녕군(瑞寧君)으로 봉해졌다. 1363년 흥왕사의 난이 평정된 뒤 정당문학 겸 감찰대부로 임명되었고, 홍건적의 난 때 호종했던 공으로 부시피난공신(扶侍避亂功臣) 1등이 되었다. 그뒤 첨의찬성사·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를 역임했다. 1365년 당시 정권을 잡은 신돈(辛旽)을 반대하다가 파면되었다. 그뒤에도 신돈의 미움을 받아 시골에 내려와 있다가, 결국 신돈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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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산중)
이이(李珥)
採藥忽迷路(채약홀미로) : 약초를 캐다가 문득 길을 잃었는데
千峯秋葉裏(천봉추엽리) :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네.
山僧汲水歸(산승급수귀) : 산승이 물을 길어 돌아가고
林末茶烟起(임말차연기) :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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霜月(상월) - 동짓달
이행(李荇)
晩來微雨洗長天(만래미우세장천) : 저물녘 가랑비 내려 긴 하늘 씻어내고
入夜高風捲暝烟(입야고풍권명연) : 밤들자 높이 부는 바람 어둑한 안개 걷어내네
夢覺曉鍾寒徹骨(몽각효종한철골) : 새벽 종소리에 잠을 깨니 한기가 사무치는데
素娥靑女鬪嬋娟(소아청녀투선연) : 달빛과 서리가 아름다움을 다투네
박은과 함께 해동의 강서파(江西派)라고 불렸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창택어수(滄澤漁叟)·청학도인(靑鶴道人). 아버지는 사간 의무(宜茂)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전적을 역임했고, 〈성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1504년 응교로 있을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되었고,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교리에 등용, 대사간·대사성을 거쳐 대사헌·대제학·공조판서·이조판서·우의정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펴내는 데 참여했고, 1531년 김안로를 논박하여 좌천된 뒤 이듬해 함종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시는 허균 등에 의해 매우 높게 평가되었다. 당시(唐詩)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발한 착상과 참신한 표현을 강조하는 기교적인 시를 써서 새로운 시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표현의 격조가 높아진 반면 폭넓은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은 없었다. 저서로는 〈용재집〉이 있다. 1537년 신원(伸寃)되었고, 중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고, 뒤에 문헌(文獻)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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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산행)
석지영(石之嶸. 조선시대 시인)
斜日不逢人(사일불봉인) : 해지도록 만난 사람 없는데
徹雲遙寺磬(철운요사경) : 구름 뚫고 먼 절의 풍경소리 들리네
山寒秋己盡(산한추기진) : 산 날씨차고 가을이미 저물어가니
黃葉覆樵徑(황엽복초경) : 누런 낙엽들이 산길을 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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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출처: 시-카페 '한시 속으로'/ 약력 및 이미지- 다음백과,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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