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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L'Etranger, 1942)/페스트 (Peste,1947)

Bawoo 2014. 10. 31. 23:07

                                                   이방인(L'Etranger, 1942)

 

이방인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이다.

알제리에 사는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는 모친 장례일(葬禮日)의 이튿날 해수욕장에 가고, 희극 영화를 보고 웃으며 여자친구와 더불어 밤을 지낸다. 다음 일요일에 친구인 레몽과 그의 정부 간의 분쟁에 휩쓸려 해안에서 정부의 복수를 하러 온 오빠를 사살한다. 재판에 회부되어 범행동기를 물을 때 "모두가 태양 탓이다" 라고 대답하고, 사형이 언도된다. 독방에서 형의 집행을 기다리는 뫼르소는 사제(司祭)가 권하는 속죄(贖罪)의 기도도 거절하고 자기는 과거에나 현재에나 행복하다고 느낀다. 모든 기성의 가치와 습관에 무관심하게 되어 인생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그 부조리의 의식을 최후까지 굳게 지켜나간다.

이 작품은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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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자각도 없이 수동적인 권태감에 빠져 살던 평범한 주인공 뫼르소는 단순히 태양빛 때문에 우발 살인을 한 후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인생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인간은 이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고, 자기 운명의 불합리함에 대해 끊임없이 반항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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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이방인!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죽음을 앞두고 마주하는 실존의 체험을 강렬하게 그려낸 고전이다.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다. 주위에 무관심한 청년 뫼르소는 어느 날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 이후 세상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변호사도, 재판관도, 사제도 뫼르소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뫼르소 역시 주위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내려진 사형 선고를 받으며 뫼르소는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떨치고 자신의 죽음과 정면으로 대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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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Peste]

 

페스트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1947).

 

〈이방인 L'Étranger〉(1942)에서 다룬 '부조리'의 주제를 심화한 소설로 반항하는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오랑 시에 페스트가 만연했다는 가정하에 의사 리외의 기록 형식을 취한 이 장편소설은 페스트가 상징한 악과 억압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항을 해야 하며 인간 사이의 연대가 소중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방인〉의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이 반항이 행복이며 서로간의 공감만이 인류를 평화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는 카뮈의 긍정적 사고방식이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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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는 고통과 절망 가운데 피어오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뜨거운 인간애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카뮈의 실존주의 사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카뮈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작가 카뮈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이 작품은 20세기 전후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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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는 카뮈의 소설로는 두 번째 작품이다. 페스트라는 제목은 인생의 모든 종류의 악을 상징하고 있다. 즉 죽음과 절병과 고통, 인생의 근원적인 부조리로 볼 수도 있고, 인간 내부의 악덕과 취약함, 혹은 빈곤, 전쟁, 전체주의 등의 정치악의 상징으로 불 수도 있다.

 성실한 인간  리외를 중심으로 신을 믿는 파눌루 신부에서부터 이상을 믿는 타루에 이르기까지 될 수 있는 한 광범위한 사람들의 입장을 규합하여, '인간'을 위한 강력한 공동전선을 결성해 보이고자 했던 <페스트>는 결국 공산주의와 기독교와의 사이에 보다 인간적인 제 3의 길을 추구하려고 했던 카뮈의 입장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은 의사 리외지만 상황이 벌어지자 우연히 오랑 시에 와서 머물고 있었던 미스테리의 인물 타루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주목을 요하는 인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리외의 또 하나의 분신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 이들 인물들은 상황을 직시하고 사태에 환상이다 낙관적 기대를 걸지 않고 묵묵히 그 부조리와 맞서 대결하는 인간상들이다. 따라서 <페스트>는 <이방인>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죄를 범했건 범하지 않았건 모든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고 그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 즉 인간 조건에 얽매인 세계에서 사람은 결코 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고, 자기라는 내면적 고독에 갖힌다.

 

 알제리의 오랑 식에 갑자기 죽은 쥐가 출현함으로써 페스트의 만연을 예고하는 것에서부터 이 작품은 시작되고 있다. 누구나 페스트가 만연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 의사 리외는 과감히 현실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나서며 그것을 없애고자 노력한다. 시외로 통하는 모든 문이 닫히고,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두절된다. 오랑 시가 거대한 감옥으로 변신한 것이다. 시민들은 불안에 싸이고, 여기저기서 혼란과 이기주의와 자포자기와 허탈이 난무하게 된다. 그러나 와중에 의사 리외를 중심으로 의료자원봉사대가 발대한다. 그리고 그랑 영감과 타루가 그를 돕는다. 그랑 영감은 멀리 지나간 연인의 추억 속에서 사는 호인이고, 장 타루는 사태가 나기 수주일 전에 오랑시에 나타난 인물이다. 이 기록은 대부분이 타루의 수첩을 참고하고 있다.

 역시 리외와 타루는 질병과 싸우는 도중에 회의와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병이 위력이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싸워야만 한다. 다만 '죽기 싫은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그리고 '세계가 죽음으로 규정되는 이상, 힘있는 한까지 죽음과 싸우기 위해서', '끝없는 패배가 싸움을 중단시키는 이유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싸우려는 것이다. 이 질병이 최후의 희생자로 타루가 쓰러진다. 그리고 페스트는 언제 그랬냐 싶게 갑자기 물러간다. 오랑 시의 문이 크게 열리고, 시민들이 환호하고 삶의 기쁨을 만끼하는 속에서 의사 리외는 "페스트 병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수십 년 간 가구나 내복 속에서 잠자다가 다시 쥐들을 쑤셔대고, 어떤 행복한 도시를 겨냥하는 날을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다"고 고백한다.

 

 이 이야기의 서술자는 의사 리외인데, 그의 서술과 병행하여 또하나, 타루의 메모식 관찰이 있다. 리외는 처음에는 엄정한 역사가를 자처하려 하지만, 사건이 점차 외적인 것에서 내적인 것으로, 또 개인적인 것에서 집단적인 것으로 진전해 감에 따라, 그의 서술에는 무언의 공감과 애정이 감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타르이 메모는 이와는 현저히 다르다. 사소한 일만을 열거하리고 한 방침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페스트 및 부조리와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페스트에 대한, 보조리에 대한 경계를 잊고 있을때, 타루의 메모는 끊임없이 그것을 각성시킨다.

 이 두 흐름 외에, 거기에는 세 개의 단편들이 있다. 리외가 들은, 늙은 관리 그랑의 생애와 타루의 생애, 그리고 타루가 적어 놓은 천식을 앓는 영감의 생활, 한 사람은 아내의 가출에 의해, 한 사람은 사형 집행을 목격함으로써, 또 한사람은 노년에 이름으로써, 모두 다 '부조리'에 눈 뜬 '부조리인'의 생애다.

 소설 <페스트>는 해피엔드로 끝나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부조리의 세계는 언제 평화를 되찾게 될 지 않 수 없다. 카뮈에 의하면 사회의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인간이 여기에 대항하여 끊임없는 반항을 통해 극복하려 할 뿐이다. 악의 형태는 변화되거나 장정적으로 잠자고 있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세계의 무너지지 않는 악과 여기에 대해 끊임없이 대항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부조리를 이룰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작품에서 일관되게 인간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부조리를 탐구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그의 노력은 그의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 한번 묻게 한다.

 

...

 

타루가 리외를 찾아와 자원의료봉사대를 조직하겠다고 할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이다.

대사들이 참으로 멋지다.

 

"그래도 선생님은 판느루 신부처럼 페스트에도 좋은 점이 있고, 그것은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고 믿고 계시죠.

리외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병이 그렇다는 거죠. 그러나 이 세상의 불행 중에서 진실인 것은 페스트에 있어서도 진실입니다. 하기야 몇몇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테죠. 그러나 그것이 빚어내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서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

...

 

"선생님 자신은 신도 믿지 않으시면서 왜 그렇게까지 헌신적이십니까?"

어둠 속에서 얼굴을 내밀지도 않고 리외는, 이미 대답을 했으며, 만약 자기가 전능의 신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을 단념하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고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판느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지 않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맡겨 버리려고 하지 않으며, 적오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외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

 

"무엇에 대해서 지키는 겁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습니다. 타루, 통 아는 바가 없어요.... 한사코 죽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어떤 여자가 죽으려는 순간에 '싫어!'하고 외치는 것을 나는 들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것에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때는 나도 젊었고, 나의 혐오감은 세계의 질서 그 자체로 향해져 있다고 생각했었죠..."

...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리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항상 그렇다는 거군요. 나도 그걸 알아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됩니다."

"물론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생각해보고 싶어지는군요."

"알아요." 리외가 말했다. " 끊임없는 패배지요."

"그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 드렸나요, 선생님"

대답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가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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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으로^^>

 

1971년 대학 1학년 시절 국민윤리라는 교양 필수 과목이 있었습니다. 철학과 김형석 교수  님일송상 철학자 김형석 교수

<김형석 교수님 당시 모습-검색해보니 1920년생이시라 현재  94세신데 아직 생존해계시네요^^>

담당이셨는데 이 분 아주 조용한  말투로 강의를 하시는데 너무 인격자로 보이셨습니다. 강의 도중에 읽어

보라고 추천한 책이 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게 '까뮈의 이방인''버트런드 럿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그리고 작가명은 까먹은 '바라바'라는 소설입니다.

3작품 다 청계천 6가 헌 책방에서 샀는데 '이방인'은 지금은 없어진 '정음사'판으로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휘문 출판사 판그리고 '바라바'는 유명 출판사가 아니어서 기억이 안 나는군요.ㅠㅠ

까뮈의 소설은 구하기가 쉬웠으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와 '바라바'는 워낙 책이 귀해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이지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었었습니다.^^

이방인은 책 한권에 '페스트' '전락''시지프스의 신화'등 4작품이 다 수록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방인, 페스트는 다 읽었으나 '전락''시지프스의 신화'는 안 읽은 것 같아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방인과 페스트는 확실히 읽었으나 이방인에 대한 느낌은 좀 난해하다는 것, 페스트는 그래도 읽기가 편했었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이 '이방인'을 추천한 이유는 당시 시대상황 -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독재-을 감안한 것 아닌가 싶었는데 세상에 대해서 아직 아는게 전혀 없었던 때라 주인공의 행동도 이해가 안됐고 그런 소설이 인기가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됐었습니다. 만약 지금 읽어본다면 '뭐 이런 미친 놈이 있어'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한 세상 그래도 열심히 살아 온 입장에서 보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