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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지드-좁은 문 [Strait Is the Gate, ― 門]/전원교향악/배덕자

Bawoo 2014. 11. 2. 05:13

좁은 문 [Strait Is the Gate, ― 門]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의 소설(1909).

성스럽고 순결한 소녀 알리사와 그의 사촌 제롬의 사랑 이야기로 금욕주의에 대한 회의를 암시하는 작품이다. 자전적인 요소가 짙으며, 뒤에 자신의 아내가 된 마들렌의 영상이 많이 나타나 있다. '가장 적게 말하면서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는 기술'인 고전적인 완서법(緩敍法)을 써서 감정의 은밀한 움직임을 간결하고 꾸밈없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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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와 제롬은 외사촌 간이다. 어린 시절 함께 교회당에 가서 목사님의 ‘좁은 문으로 들어 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라는 설교를 듣고 제롬은 알리사를 위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둘은 점점 자라면서 서로의 사랑을 감지(感知)한다. 한편 알리사의 여동생 줄리에뜨도 제롬을 남모르게 사랑하게 되지만 언니에게 제롬을 양보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 한편 알리사는 성서의 가르침대로 좁은 문을 지나가고자 한다. 그리하여 제롬에 대한 사랑을 단념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한다.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에서 벗어나 하느님 밑에서 영혼이 합일되는 경지로 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 만물을 제롬을 통해서가 아니고는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랑도 제롬을 생각하지 않고는 무의미한 것임을 안다. 알리사는 자기의 정열을 떠나 청결하게 되기 위하여 제롬과 만나는 횟수를 차차 줄이고, 자기 주위에서 제롬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물건을 없애 버리고, 갖은 노력을 다하여 그를 잊으려고 한다. 결국 알리사는 수도원으로 도피하지만 이 싸움은 정신적인 피로를 몰고 와, 마침내는 죽음으로 이끌게 되고 만다.
뒷날 제롬은 알리사의 죽음을 통보 받고 슬퍼하면서 알리사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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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와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제롬과 그의 외사촌 누이 알리사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 <좁은 문>은 저자 ’앙드레 지드’의 경험이 담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앙드레 지드는 자신의 아내인 마들렌의 영상을 알리사라는 인물을 통해서 표출했고, 마들렌은 알리사처럼 지드의 외사촌 누이였다.
또한, 책 속에 담겨진 애절한 편지는 아내 마들렌이 지드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작품에 옮겨 놓았다. 그 때문에 편지에 묻어나는 애절함이 더욱 두드러진 것은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엄마의 불륜으로 괴로워하는 알리사의 눈물을 본 후 인생을 결정짓게 된 제롬은 평생 알리사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과 연민, 감격, 헌신, 미덕이 한데 뒤섞인 묘한 감정에 취한 채 온 힘을 다해 하느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소녀를 공포와 악과 고된 삶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며...... (본문 28page)

제롬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롬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리사와 고모의 대화와 그녀의 일기, 그리고 제롬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알수 있지만, 알리사는 제롬과의 약혼, 제롬과의 만남을 늘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어린시절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알리사의 이런 알 수 없는 마음이였다.)

이 책에서 성경 구절이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그 시절 기독교 사상은 사람들에게 깊이 있게 인식되어 왔고, 그것이 삶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알리사를 통해서 신앙을 품은 인간의 고뇌를 담아내고 있다.
엄마의 불륜으로 받은 상처가 깊게 자리잡은 알리사는 종교에 대한 신앙심과 복종, 그리고 사랑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좁은 문>은 알리사를 통해서 종교의 의미와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신앙에 대한 믿음을 잘 못 해석했던 알리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신앙에 대한 배반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작품이 단순히 제롬과 알리사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이 아니라는 것, 신앙을 가진 인간의 내면과 갈등을 함께 다루었다는 것은 이런 알리사의 내면적인 고통을 통해서 면밀히 드러나고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을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리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길은 좁으니 이를 찾는 사람이 적다." (본문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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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교향악 [La Symphonie pastorale, 田園交響樂]

 

전원 교향악 - 앙드레 지드(김중현)

때묻지 않은 한 눈 먼 소녀가 자신을 보살펴주는 목사에 대해 존경과 사랑을 품어오다가, 막상 눈을 뜨게 되자 자신에 대해 순수한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목사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음을 알고는 실망한다는 이야기이다. 복음서적인 사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 작품은, 인물들의 의식의 은밀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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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로 땅은 새들이 노래하는 것처럼 아름다운가요? 사람들은 왜 그 이야기를 더 해주지 않는 걸까요?”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 제르트뤼드는 자신을 돌보는 목사에게 간절하게 묻는다. 목사는 그녀에게 위로하듯 대답한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새들의 노래를 잘 듣지 못한단다.” 제르트뤼드는 목사의 인도를 받으며 전원에 나가 보통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전원의 교향악, 대지의 교향곡을 즐겨 듣는다. 환희와 은총에 젖어 든다. 그녀의 영혼에 은혜의 빛이 깃든다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은 이런 소녀의 이야기이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그녀가 목사의 도움으로 말하게 되고 세상과 인생을 알게 된다. 은총을 알게 되고 마침내 인간적인 사랑도 알게 된다. 사랑 때문에 마침내 죄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을 택하고 만다. 수술로 육체의 눈을 뜨게 되었지만, 사랑 때문에 영혼의 눈을 잃게 되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확실히 『전원교향악』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감미로우면서도 삶의 장중한(엄숙하고 위엄 있으며 무거운) 무게가 실려 있는 작품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이유와 가치는 분명하다

눈이 멀었을 때 제르트뤼드는 죄를 몰랐다. 영혼의 희열 속에서 사랑의 충만감을 만끽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계속 눈이 멀었더라면’ 하고 역설적으로 소망할 정도로 이제 눈뜬 그녀는 사랑의 상실감과 죄의식에 시달린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종교, 도덕상 꼭 지킬 조건)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노라” 는 성 바울의 말씀 구절 그대로다. 무엇 때문인가? 눈멀었을 때 그녀는 목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눈뜨고 보니 그녀가 사랑한 것은 목사가 아닌 아들 자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목사를 사랑할 수도, 이미 카톨릭으로 개종해 성직자가 된 자크를 사랑할 수도 없는 제르트뤼드는 무척 괴로워한다. 결국 그녀는 죽어 목사 곁을 떠나고, 아들 자크는 개종하는 것으로 목사 곁을 떠난다. 목사는 마음의 황무지를 절감한다

해피 엔딩이나 권선징악의 이야기 패턴(정해진 방식이나 형태)에 익숙해 있던 중학생 시절, 『전원교향악』을 읽으면서 무척 속상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가여운 영혼 제르트뤼드는 물론이고 목사나 자크의 처지 역시 연민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제르트뤼드를 되살리고 사랑을 이루게 할 수 있는 이야기 줄기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는 느낌, 그렇지만 너무 슬퍼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는 생각, 내가 제르트뤼드나 자크가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 등이 내 생각의 실타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윤리 시간에 타인과의 관계 혹은 윤리에 대한 대목에서 나는 다시 이 작품을 떠올렸다. 목사는 눈먼 소녀 제르트뤼드에게 타인의 행복을 손상시키는 것과 자신의 행복을 훼손시키는 것은 인생의 죄악이라고 가르치려고 했던 사람이다. 제르트뤼드와의 사랑이 아내 아멜리의 행복을 파손시킨다면, 그것은 죄악이 되고 타자(다른 사람) 의 윤리에 어긋난다. 제르트뤼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크가 가톨릭 성직자의 길로 나서 결혼할 수 없는 사이가 되긴 했지만, 그를 사랑하는 것은 곧 목사의 행복을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결국 자기의 행복을 손상시키고 만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중학생 시절 이 작품을 읽고 그토록 속상했던 것은, ‘폐안(閉眼, 닫힌 눈, 곧 눈을 볼 수 없는 눈)’ 과 ‘개안(開眼, 열린 눈)’ 사이의 속절없는 아이러니(역설)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울러 영혼의 눈과 육체의 눈 사이의 아이러니나 사랑과 죄 사이의 아이러니 같은 것 말이다. 언제든 나날의 삶에서 사랑은 멀고 죄는 가깝다. 남의 행복과 사랑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나의 행복과 사랑을 추구할 수 있는 지혜는 유사 이래(역사가 생겨난 뒤부터) 늘 먼 곳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러니까, 오늘도 세상의 수많은 영혼들은 사랑 찾으러 길을 떠나는 게 아닐까? 부디 그들에게 은총이 있기를!

                                           <우찬재/ 문학비평가. 서강 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월간 독서평설 / 지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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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덕자(背德者)

 

앙드레 지드(4) >배덕자<에서 이 더러운 느낌은...


서재에 파묻혀 학문에만 몰두하는 주인공 미셸은 과학적 연구와 엄격한 기독교적 교육을 받아온 청년이다. 그는 아내 마르슬리느와 아프리카로 신혼 여행 중 병에 걸려 죽어가다가 아내의 헌신적 간호와 아프리카의 자연 덕분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이후로 그는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쾌락주의자 메날크를 만나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기존의 모든 사회 도덕은 무의미한 것이고, 자유만이 의의를 갖게 되었다.
아내 마르슬리느에 대한 미셸의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자기의 쾌락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아내 마르슬리느가 숨을 거두고 미셸은 속박에서 벗어나지만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새로운 생명에 어찌할 줄을 모른다.

미셸이 추구하고자 한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를 그토록 갈구하였지만, 정작 주어진 자유에 어찌할 줄을 모르는 미셸의 모습은 자유를 갈구하고 도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고자 한 그 인생이 얼마나 허망하고 쓸데 없는지를, 결국 주인공이 추구한 모든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주인공 미셸은 미치광이 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자유를 얻기 위해 덕을 배척한다니!
결국은 자유를 얻어도 얻지 못한 상태에 이르러 자유로움에서 건져지길 바란다는 외침까지 하게 되지 않는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추구하게 되는 가치관중에 표면적인 본능과 자유만을 추구하여 덕을 배척하고자 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결국 얻게되는 결과는 허무, 죽음 단지 그것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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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으로^^> 

 

앙드레 지드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김형석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좁은 문'을 일독 도서로 추선을 하셔서인데 이 책도 청계천 6가 헌 책방에서 샀습니다. 정음사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좁은 문''전원 교향악''배덕자''법왕청의 지하도'가 한권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좁은문'을 추천하신 이유는 김교수님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은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하면 이 분이 추천한 책이 대부분 기독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바라바'순교자'그리고 '좁은문' 모두가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내용들이었으니까요.

71년 당시의 정음사 세계문학전집은 파란색-나뭇잎 색-두꺼운 표지에 시험지로 되어 있었는데 동아.을유문화사보다 늦게 발간된 것인지 책들이 비교적 깨끗했습니다. 헌 책방에서 새 책 느낌이 나는 책들을 살 수 있는 행운을 잡으면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에 속하는데 '앙드레 지드'의 작품이 든 책이 그러했었습니다.

읽은 것은 책을 사서 바로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못 고치고 있는데 책을 사면 바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일단 책꼭이에 꽂아 놓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습니다.ㅎㅎ-아무튼 12월 군대 가기 전에 읽기는 읽었습니다. '법왕청의 지하도'는 빼고 큰 충격과 감동을 받고.ㅎㅎ

 

좁은문, 전원교향악 특히 좁은 문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꽤 컸었습니다.

이성에 대해 신비감을 갖고 있었던 때라 이리도 순수한 사랑을 그것도 근친인 사촌간에 한다는 것이 유교적 인습에 젖어있는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두 남녀 주인공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사랑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성간의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성격이었던 나에게도 두 주인공의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이 너무너무 아름답게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아무튼, 앙드레지드 작품은 위 3작품을 읽은 것이 전부이고 다른 작품은 전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당시에 받은 감동의 여운은 4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읽어 본 문학작품들이 다 감동으로 남아 있기는 합니다.ㅎㅎ-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을 하기도 하곤 합니다. 60이 넘은 나이에 소설 읽기에 재미를 들인 동네 후배 딱 한사람에게 해 준 것이지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