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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토예프스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죄와 벌

Bawoo 2014. 11. 5. 00:24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Bratya Karamazovy, ― 家― 兄弟―]

 

 
 

러시아의 작가 F. M. 도스토예프스키가 1881년 죽기 몇 달 전에 완성시킨 그의 최고의 소설.

작가의 다른 많은 소설이 하나의 범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이 소설도 부친살해 사건에서 시작된다. 아버지 표도르는 물욕과 음욕(淫慾)의 상징으로 2번 결혼했는데 첫번째 여자가 도망가자 온순한 고아와 다시 결혼했다. 맏아들 드미트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전형적인 선과 악의 혼합으로 그는 자신의 무절제와 호색을 알고 있으며 때때로 이것들을 뛰어 넘어 높은 종교성과 연민으로 상승하기도 한다. 둘째 아들 이반은 〈죄와 벌〉의 살인자 주인공과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지적이며 뒤틀린 자기 마음의 미로에 갇혀 있다. 셋째 아들 알료샤는 수도원에서 영혼의 삶에 자신을 헌신하고 있으나 그의 혈관엔 카라마조프가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 또한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이다. 넷째 아들 스메르자코프는 사생아로서 논리적이고 계산에 밝으며 또 야수적이어서 나머지 세 형제의 특징을 모아 놓은 듯한 성격이다 스메르자코프가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지만 모든 상황증거는 드미트리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살인의 지적인 배경을 제공한 이반은 살인의 교사자(敎唆者)로서 자신을 연루시킨다. 고해하기 전에 이반은 악마와 토론을 갖는데 악마는 선과 함께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서의 악의 필요성에 대해 길고도 미묘한 주장을 전개한다. 특히 〈대심문관 大審問官〉은 이반이 쓰려고 한 시의 설명으로 이 소설의 핵심적인 장면의 하나다. 여기에서 신을 믿지 않는 스페인의 심문관은 그의 동료를 의심하고 그들로부터 진리를 멀리하려 한다. 그에 대립한 그리스도는 인간의 영혼을 믿으며 비록 그것이 고통과 파멸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자유라는 선물을 인간에게 주려 한다.

이 소설은 인간은 단지 고통과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성취할 수 있으며, 삶은 지성이 아니라 단지 감정과 사랑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작가의 근본적 신념이 표현된 세계문학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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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Prestupleniye I nakazaniye, 罪 ― 罰]

 

인간성에 대한 재성찰, 연극 '죄와 벌'

 

러시아의 작가 F. M.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

1866년 잡지 〈러시아 통보(通報)〉에 발표되었다.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에게 종족의 유지를 사명으로 하는 범인(凡人)과 나폴레옹과 같이 사회의 도덕률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강자(强者)가 있다고 결론 짓고,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하여 물질적 궁핍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자신이 강자임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살해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그때 그는 고통과 자기희생으로 살아가는 창녀 소냐를 알게 되어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감복되며, 자신이 지녀왔던 서구적 합리주의의 허구성을 깨닫는다. 마침내 자수한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고 소냐가 그의 뒤를 따른다. 러시아의 그리스도교적 사랑과

인종(忍從)의 사상을 제시한 이 작품은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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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속으로 ^^*

 

72년초 군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읽은 책 중에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있었는데

이 소설은 나에겐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거의 없고 머리 속에 들은 것이라야 고작 소설 몇 권과 입시 공부했던 암기지식이 전부였으니까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왔던 작가의 체험이 녹아져 쓰여진 이 대작을 읽은 후에는 정말이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작품의 내용을 완벽히 소화를 했었을리도 없지만 이 대작을 다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었고 이후 토스토예프스키의 팬이 되어 정음사에서 나온 전집을 사서 다 독파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부활 한 작품만 더 읽고는 나머지 다른 작품들은 생업을 위한 공부에 매달리느라 못 읽었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부터는 소설과는 거리가 먼 역사서나 경제서등 바로바로 지식이 되는 실용서 위주로 독서 취향이 바뀌어 결국 위 두 작품 외에는 읽어보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지금 60중반의 나이, 토스토예프스키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나이인 지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는다면 20대 초반에 느꼈던 그 감동이 살아날까요?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나도 이미 많은 연륜을 살아온 탓에 세상을 보는 눈이 나름대로 고정화 되어 있어서 20대 초반 세상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과는 다르니까요. 아마 이것 저것 비판을 하며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주어진 삶을 한 세상 살아냈다는 것은 그런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의 감동은 아무래도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나이 때인 젊은 시절에 읽어야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60 중반의 나이에는 어떤 소설을 읽어도 큰 감동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읽은지 꽤 오래 되기도 했군요. 책을 계속 읽고는 있지만 읽는 책이 거의 역사, 경제, 예술 쪽 책이니...ㅎㅎ

아무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내게 '함부로 아는 체 하지 말아라'하는 큰 교훈을 줬었습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입 꼭 다물어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