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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돈 풀고 풀어도 … 일본 ‘무기력증’

Bawoo 2014. 11. 12. 09:47

돈 풀고 풀어도 … 일본 ‘무기력증’

[중앙일보] 입력 2014년 11월 12일

일본 양적 완화(QE)의 한계가 다시 확인됐다. 지난달 말 실시된 추가 QE 앞날마저 어둡게 했다.

 일본은행(BOJ)은 “올 10월 시중은행 대출이 2.5%(전년 동기대비) 늘었다”고 11일 발표했다. 전달인 9월 2.4% 증가보다는 조금 높아진 수치다. 하지만 로이터 통신은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무제한 QE에도 대출 증가율이 장기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 증가율은 2010년 -2% 수준을 맴돌다 지난해 4월 2%를 넘어섰다. 마침 무제한 QE가 시작됐다. QE 성공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그러나 이후 18개월 동안 증가율은 2%대를 벗어나질 못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經) 등이 말한 ‘2%대 덫’이다. 대출(신용)은 중앙은행의 각종 정책이 물가·소비·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Transmission Mechanism) 가운데 핵심으로 꼽힌다. ‘QE의 설계자’인 리하르트 베르너 영국 사우스햄프턴대 교수가 최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QE 성공 여부는 대출 흐름에서 가장 먼저 확인된다”며 “일본 시중은행들의 대출이 눈에 띄게 늘지 않으니 다른 전달 경로도 무기력증(Impotency)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바로 외환시장 경로다.

QE는 아주 빠르게 엔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올 9월 무역수지는 7145억 엔(약 6조7600억원) 적자였다. 지난해 6월 이후 15개월 연속 적자다. 로이터는 “엔저가 수출 증가로 이어지면서 기업 투자가 늘어나는 연쇄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고 풀이했다. 다만 경상수지는 흑자다. 올 9월 현재 9630억 엔에 이른다. 제로금리 정책 이후 늘어난 해외 투자 덕분에 이자와 배당 소득 등이 늘어난 덕분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마치 제조업 수출 국가에서 자본 수출 국가로 바뀐 듯하다.

 또 다른 전달 경로인 금리 채널은 1994년 이후 20년째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췄지만 일본인들의 소비는 눈에 띄게 늘지 않았다. 경제는 꾸준하게 마이너스 성장했다.

 베르너 교수는 “일본의 통화정책 전달 채널 4개 가운데 3개가 붕괴된 상태”라며 “현재로선 자산시장 경로만 겨우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무제한 QE 이후 도쿄 주가는 40% 넘게 상승했다. 또 집과 땅 값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늘어난 대출도 기업 설비투자나 가계 소비를 위한 게 아니다”며 “주로 부동산 매입

 자금용”이라고 전했다. 다만 자산 가격이 들썩이면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심리는 커졌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렇다면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가 지난달 말 기습적으로 발표한 추가 QE의 앞날은 어떨까. BOJ는 11일 금융동향 자료에서 “대출 증가율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과거처럼 대출 증가율이 갑자기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으면 된다”고 밝혔다. 스스로 추가 QE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대신 BOJ는 “기업 설비투자가 (주가 상승 등에 힘입어) 앞으로 늘어날지 잘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금리나 신용(대출) 채널 대신 주가와 채권 가격 상승이 기업 투자로 이어지는 자산시장 채널을 기대해본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