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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용중의 지혜가 우리에게 있는가

Bawoo 2014. 11. 13. 10:10

정치인이 어촌을 지나다 게 잡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게를 넣어둔 바구니에 뚜껑이 없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어부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게가 도망치려고 기어오르면 밑의 게가 잡아당긴다는 거였다. 뚜껑을 덮지 않아도 게가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뜬금없이 우스갯소리를 꺼내는 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중국의 거대한 자기장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혹여 중국 눈치를 보며 살게 되진 않을까라는 걱정 때문이다.

 오해 말길 바란다. 한·중 FTA에 반대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금 체결된 게 만시지탄이라고 생각한다. 한·중 FTA는 우리의 생존전략이자 성장동력임에 분명하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은 저성장에 허덕이는 우리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의 창출로 신성장동력도 생겨날 수 있다. 게다가 한·중 FTA는 한·미 FTA와 더불어 미·중 간 각축전의 지렛대로 쓸 수 있다. 때로는 미국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고, 때로는 중국과 협력해 미국의 압력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우리 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다. 그만한 지혜와 능력이 우리에게 있느냐라는 의문이다. 생존 전략은 패망의 길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는 법이라서다. 중국의 강력한 자기장에 속절없이 빠져 들어간다면 예전처럼 속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곰곰 생각해 보자. 중국은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2004년 미국을 제쳤으니 11년째다. 그것도 압도적 1위다. 지난해 대(對)중국 수출의존도는 26.1%로 사상 최고였다. 대미국 의존도(11.1%)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무역흑자 의존도는 더 심하다. 지난해 무역흑자 총액은 440억 달러였다. 하지만 대중국 무역흑자는 628억 달러로 이보다 훨씬 많다.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나라와의 무역적자도 메우고, 경제성장도 했다는 얘기다. 한·중 FTA는 이 흐름을 가속화시킨다. 이렇게 되면? 중국이 ‘귀찮은 상전’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다. 우리는 이미 ‘귀찮은 상전’을 경험한 바 있다. 1980~90년대 미국이다. 당시의 미국은 ‘무역 보복’과 ‘개방 압력’으로 기억될 정도다. 무례와 강요가 잇따랐지만 우리는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수출해 번 돈으로 먹고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은 건? ‘선량한 강대국’도 국익을 위해서라면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는 교훈이었다. 말발 뒤에 강한 주먹이 숨어 있다는 것도.

 중국 역시 다르지 않을 게다. 중국을 움직이는 건 자신의 국익이지 세계 이익은 아니다. 하물며 한국의 이익이야…. FTA가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대중 의존도는 커진다. 자연히 중국은 예전의 미국처럼 변할 게다. FTA의 성공과 귀찮은 상전은 동전의 양면이란 의미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무례와 강요를 거절할 수 없게 된다. 중국이 재채기하면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는 우리가 뭘 어쩌겠는가.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둘러싼 미·중의 각축전이 치열해질수록 더욱 그럴 거다. “누구 편이냐”며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날이 올 수 있다. 하긴 그런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중국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가 그렇다. 참여하라는 중국과, 참여하지 말라는 미국의 목소리가 충돌하면서 우리는 진퇴양난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해야 해결책이 나오는 법,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친(親)중 반(反)미나 친미 반중으로 흘러선 안 된다. 혐(嫌)중이나 혐미는 더욱 그렇다. 영악해지는 길밖에 없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우리의 국력이 지금보다 배 이상 커지기 전까지는. 힘이 세면 아무도 집적대지 못한다는

이치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게 가능할지다. 우리에게 용(用)중과 용미의 지혜가 있을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다. 고난도의 게임은 고사하고, 난이도 낮은 게임조차 못 풀고 있기에 하는 걱정이다. 답이 뻔히 보이는 공무원연금과 무상복지의 개혁조차 못하고 있지 않은가. 게처럼 서로 끌어내리기만 한다면 모순과 질곡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 출처: 중앙일보-김영욱 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